▲경의중앙선의 응봉역 인근 구간. 응봉역에서 서빙고역까지의 구간은 대다수가 한강·간선도로와 접해 있어 지하화의 편익이 크지 않은 대표적인 구간이다. 서울특별시의 제안서에는 주거지가 가깝지 않은 지역까지 모두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박장식
특히 서울시가 지하화가 필요하다며 제시한 구간 중에는 거주지와 산·하천으로 이격되어 있어 소음 피해가 크다고 보기 어려운 곳(경원선 월계동 구간), 철도 선로와 병주하는 강변 도로가 자연스럽게 방음벽 역할을 하는 곳(경의중앙선 한남동 구간) 이 포함되어 있다. 비싼 예산을 들여 지하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는 구간이다.
이렇듯 무분별한 철도 지하화 요구는 혐오 시설의 유치를 거부하며 집단 행동을 하는, 이른바 '님비 현상'보다 악질에 가까운 현상이다. 역은 그 자리에 있길 원하고, 편리한 이동을 하길 원하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세권 개발 호재는 누리고 싶으면서, 내가 그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아쉬운 점을 가장 비싼 예산을 써서 해결하겠다는 점은 이기주의다. 지하화는 지역의 교통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비수도권·비광역시 지역은 언제나 인프라가 부족하다. 대도시에서는 언제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철도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고속도로나 철도 등의 인프라 부족으로 지역 밖과 교류하는 것마저도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도 많다. 국내에 '철도가 없는 시·군·구'는 여전히 50여 곳이 넘는다.
그들을 위한 예산을 따로 빼놓는다 쳐도 문제는 여전하다. 지하화 공사 기간 동안 불편을 겪는 것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지하화 하는 구간을 거쳐 또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애꿎은 다른 시민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미 추진된 지하화의 사례를 들어볼까. 영동선 강릉역의 지하화를 위해 2014년부터 3년 동안 강릉역이 문을 닫았고, 이 기간 도심에서 20km 가까이 떨어진 정동진역이 강릉의 관문 역할을 해야 했다. '경의선숲길'로 이름이 난 경의중앙선의 수색-용산 구간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공사 여파로 열차 자체가 다니지 못했다.
지하화 공사는 아무리 신경을 써서 한들 철도 이용에서 운행 횟수 축소·운행 중단 등 유·무형의 손해를 보고, 사고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2007년에는 지하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경의선 가좌역에서 지반 침하 사고도 났었다.
멀쩡히 전철을, KTX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역세권' 거주민을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그리고 '30분 일찍 일어나 대체 교통수단을 타고 불편한 출근'을 할 이유는 없다.
꼭 필요한 구간만, 짧게, 시민 불편 없이 해야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철도 지하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단 모든 철도를 지하화하고 봅시다"라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최소한도 내에서 꼭 필요한 만큼의 구간만을 지하화하는 것이 지역 균형 개발의 측면에서도 옳은 일이다.
꼭 필요한 구간이라면 지하화해야 한다. 철도가 심각할 정도의 지역 단절을 유발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 심각한 교통 정체 등 유·무형의 피해 비용이 발생하는 서울 가산동 수출의 다리 일대와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하화 공사로 인해 불편을 겪을 시민들을 위한 대안이 필연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전광역시가 내놓은 대안은 현실성이 있다. 도심 철도를 무리하게 지하화하는 대신, 철로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데크화'를 제안했다. 기존 도시 기반 시설을 훼손하지 않고, 상부에 공원이나 건물 등을 올릴 수 있다. 예산·현실성, 그리고 철도 안전이라는 명분에서도 적합한 대안인 셈이다.
결국 지하화 공사를 하기 전에 세 가지 평가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 지하화가 아닌, 데크화·방음터널 설치 등 다른 대안이 없는가 ▲ 불가피한 구간이라면, 편익에 비해 지나치게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가 ▲ 공사 구간에서 초래될 열차 운행 지장에 따른 '다른 지역 시민'의 불편을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의 조건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2월에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제안서의 1차 대상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인프라 과잉 확보' 대신 꼭 필요한 구간을 짧게, '무작정 지하화' 대신 다른 대안을 포함해 추진하는 지자체에게 손을 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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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스멀스멀... '철도 지하화', 혈세 써서 지역 불균형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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