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중국 여행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음식과 화장실이다. 물론 필자는 중국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샹차이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냄새만 맡아도 인상을 찡그리기 일쑤였다. 음식얘기, 특히 샹차이 얘기는 앞에서도 구구절절이 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화장실 얘기 좀 해야겠다.
중국에는 공공화장실이 별로 없다. 그리고 우리처럼 무료인 곳은 더더구나 찾아보기 힘들다. 문표(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웬만한 관광지에서도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다시 돈을 내야 된다. 물론 우리 돈으로 따지면 오십원에서 백원 정도이지만 혹시나 물을 갈아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들락날락 하면서 쓰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큰 것과 작은 것에 따라 돈도 달리 낸다는 것이다. 또 돈을 내고 사용하는 셈 치고는 좀 지저분한 게 사실이다.
하다못해 백화점 화장실에서도 돈을 받는 것을 보고 필자는 두 손 들고 말았다. 친구가 급히 큰 일을 치르고 싶어 백화점에서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찾았다. 웬 할머니 한 분이 화장실 앞에 탁자를 놓고 지키며 돈을 받았다. 친구는 손짓 발짓으로 큰 일을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돈을 주었더니 그 할머니는 인심쓴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루마리 화장지 두 칸을 떡하니 내밀더란다. 도대체 두 칸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래도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용케도 친구는 두 칸으로 잘 해결하고 나왔다고 했다.
남자들 같으면 그저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법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좀 꺼려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자들은 가능한한 아침에 호텔에서 해결하고 저녁에 다시 호텔로 돌아갈 때까지 꾹 참았다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돌진하곤 했다.
태산에서 필자와 동료들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경악한 이유는 돈을 많이 받아서도 아니요, 지저분해서도 아니었다. 남녀 화장실을 착각해서 들어갔기 때문도 아니었다. 태산 정상부에 있는 화장실은 공짜였다. 그리고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필자가 놀란 이유는 화장실의 특이한 구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볼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자세 때문이었다.
태산의 화장실은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큰 일을 볼 수 있는 곳이 한 다섯 군데쯤 있었고 작은 일은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우리네의 자그마한 휴게실의 화장실처럼 일렬로 쭉 늘어서서 볼일을 보는 그런 구조였다. 물론 이건 남자 화장실의 경우다. 아쉽게도 여자 화장실에는 들어가보지를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작은 일을 볼 수 있는 공간만 빼면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여기까지는 우리네 화장실과 뭐 별 다를 게 없다. 문제는 큰 일을 보는 공간에 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앞은 뻥 뚤려있고 앉은키 정도 높이의 칸막이로 옆칸과 구별될 뿐이었다. 말하자면 거의 개방되어 있는 공간에서 큰 일을 보아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덜 외설적이고 덜 엽기적으로 설명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실 그대로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누군가 화장실을 들어서게 되면 보고 싶지 않아도 큰 일을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된똥을 누는지 물똥을 누는지, 똥이 먼저 나오는지 오줌이 먼저 나오는지 등등...
필자가 화장실을 들어갔을 때 세 사람이 큰 일을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정면을 향해서 그러니까 필자와 눈이 마주치는 자세로 볼일을 보고 있었고 한 사람은 필자에게 엉덩이를 보여주는 자세로 볼일을 보고 있었다. 한 번 상상해 보시라. 그 웃지 못할 광경을.
정면을 보고 있는 사람 사이에 뒤돌아 앉아 엉덩이를 내놓고 있는 사람이 끼여 있었는데 정면을 보고 앉은 사람 둘이 키득키득 웃으며 서로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중국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엉덩이를 내보이고 있었던 사람은 일본사람이었다.
뒤따라 들어온 가이드에게 중국사람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창피하게 남들에게 엉덩이를 내놓고 볼일을 본다고 비웃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으론 뒤돌아 앉아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이드도 어떻게 엉덩이를 내놓고 볼일을 볼 수 있느냐고 참 신기한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필자와 동료들은 흔적을 남기고 가겠다는 처음의 포부는 다 잊어버리고 쭈뼛쭈뼛 행여나 볼일 보는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소변을 보는둥 마는둥 하고 후닥닥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작 큰일 보는 사람들은 민망하지 않은 것 같은데 괜히 내가 민망해서 소변을 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뒤통수가 따가와 혼줄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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