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놓고 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아줌마만 봐!> 2월생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유예하며

등록 2002.03.01 01:39수정 2002.03.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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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큰 아이 학교 들어가나요?"
최근 몇 달간 주위 사람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딸은 96년생으로 일곱 살이다. 하지만 생일이 2월이어서 취학 대상이기 때문에 올해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글쎄요, 아직 결정을 못 했어요. 현재로선 반반이네요."
인사차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도 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대답을 미루다 보니 어느덧 1월말이 되어 취학통지서가 날아왔다.

요즘처럼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특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엄마 아빠의 심정은 설렘과 두려움이 겹쳐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역시 아이의 취학통지서와 함께, 2월초로 예정 된 취학통지서를 받아놓고 보니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딸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에게 일곱 살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행동이 좀 느려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체력이 약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걱정들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난 해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나는 교사의 폭행, 급식과 촌지 문제 등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심심찮게 불거져 나왔던 한 해 이기도 했다. 나와 같이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엄마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보도를 접하는 것 그 자체가 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걸 보노라면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20여 년전과 비교해 크게 바뀌지 않은 지금의 교육제도가 무척 화가 난다. 그리고 다른 좋은 대안은 없을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엔 요즘 새롭게 시작되는 초등 대안학교에 대해 틈틈이 알아보았다. 또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작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친다는 북한산 자락의 어느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사를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은 집에서 가까운 일반 초등학교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의 경우와 같이 겨우 1주일 차이로 입학을 해야 하는 경우에 아이 개개인의 특성이나 상황이 고려되지 않고 취학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솔직히 아이의 입학을 일부러 늦추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보니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일단 입학을 1년 유예한다면 어떤 경우에 가능한 지를 알아보기 위해 교육부와 해당 지역 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담당자들은 초등학교 입학유예에 대해 별 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나이가 되었으면 당연히 취학을 시켜야 한다는 원칙적인 얘기와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시에는 유예할 수 있다는 설명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사교육비를 1년간 다시 부담하면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아이 둘을 동시에 사설 유아교육기관에 보내는 것이 맞벌이도 아닌 평범한 봉급쟁이의 형편으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당분간 교육현실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유예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곱 살이면서도 2월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굳이 학교에 입학시켜 아이를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무엇보다 앞섰던 거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걸맞지 않는 받아쓰기 시험에 매일 10점 20점을 받아도 주눅들지 않는 아이. 급식이나 도시락 점심을 좀 늦게 먹더라도 선생님께 혼날까봐 눈치 안 보고 걱정 안 해도 되는 아이. 엄마가 학교 활동에 적극 나서지 않아도 씩씩하게 등교할 수 있는 아이. 아이에게 학교를 '즐겁고 신나는, 그래서 정말 가고 싶은 놀이터이자 공부방'같은 곳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누구나 이런 바람들이 있듯이 나 또한 첫 아이의 취학문제를 고민하면서 절실하게 바라마지 않았다. 어쩌면 현실과 이런 바람과의 괴리가 아이의 취학유예를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제도교육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의 아이들.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앞으로 12년 이상을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시험성적만으로 등수를 매기는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찌드는, 교육 정책의 부재로 이리저리 휘둘려 입시에만 매달리는, 또래들로부터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비인간적인 교육현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은 것이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의 첫 아이의 취학유예 문제를 쓰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이말 저말을 나열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놓고 학교에 가고, 씩씩하고 아름답게 커갈 수 있는 교육환경이 갖추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진실로 위해주는 참 교육 세상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 이덕희-아이 둘을 키우는 서른중반의 전업주부로 세상을 날기 위한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덕희-아이 둘을 키우는 서른중반의 전업주부로 세상을 날기 위한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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