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 배수원 |
한 자동차 정비 광고에서 탤런트 이미연이 이렇게 말한다. '운전은 한다, 그러나 차는 모른다' 아무도 없는 차도 한 복판에 세워진 차 위에 앉아 바보스런 얼굴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참 자랑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 기억이 난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한심스러운 이 광고를 남자들이 보면 어떻게 말을 할까? '그러길래 왜 끌고 나왔나?'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는지...
아침마다 부엌에 나가보면 간밤에 남편이 먹고 난 흔적들이 널부러져 있다. 보통 새벽 2-3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 남편은 혼자 야참을 챙겨먹는 경우가 많다. 어제는 신라면에 요구르트로 입가심을 한 후 사과를 하나 깎아 먹었나 보다.
싱크대 위에 라면봉지와 사과껍질이 그대로 있고 요구르트 병이 놓여 있다. 쟁반에는 라면국물이 남아 있는 냄비와 먹다 남은 김치가 접시에 말라붙어 있다. 거기까진 그래도 참을 만했다. 더 열받는 건 김치를 꺼내먹었는지 커다란 김치통이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피같이 귀한 김치에서 약간 쉰내가 나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일어나고 좁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려면 일단 치우지 않고는 다음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한마디하고 싶지만 비몽사몽간에 무슨 대화가 가능할까 싶어 내가 치우고 만다. 그러나 속은 편치 않다.
정비 광고에서 이미연은 자신이 '차맹'인 걸 스스로도 한심스런 얼굴로 말하고 있다, 고쳐달라고.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부엌맹'인 걸 너무나 당당히 몸으로 말하고 있다. '먹는 것은 안다, 그러나 치우는 것은 모른다'고. 그리고 마누라보고 치우라고 한다.
나는 이런 남편을 '바퀴벌레 밥 주는 남자'로 부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0년이 넘은 단독주택이라 구석구석에서 바퀴벌레들이 많이 나온다. 한 번은 간이 부은 바퀴벌레 한 놈이 부엌 싱크대 위를 종단하는 걸 발견했다. 잽싸게 잡으려고 했는데 휴지를 찾는 사이 어느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놓쳐버리고 말았다. 바퀴벌레란 놈 한 마리를 보면 식구들이 수십 마리가 있다고 하던데...
그 놈을 놓친 걸 내내 아쉬워하며 부엌에 바퀴벌레 먹이를 두지 않는 걸로 놈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그 다음부터 싱크대 위에 먹을 것을 두지 않기, 설거지는 바로 바로 하기, 먹다 남은 음식은 꼭 뚜껑을 덮어두거나 냉장고에 넣기 등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 |
▲ 어느 날 우리집 부엌의 모습 ⓒ 홍혜경 |
그런데 나의 치열한 바퀴벌레와의 전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나 모르게 바퀴벌레에게 먹이를 주고 키우고 있는 남자가 있으니 바로 남편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바퀴벌레 밥 주는 남자'라고 부른다.
오늘도 일어나는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어제도 바퀴벌레에게 밥 줬데?" 하지만 일단 증거가 없어진 다음이라 말하는 나도 듣는 남편도 농담처럼 주고받고 남편은 출근을 한다. 나도 이러면 안 되는데…, 결혼한 지 10년이 다 돼 가니 나도 참 많이 말랑말랑해졌나 보다.
하지만 나의 말랑말랑함도 남편이 바퀴벌레에게 밥만 주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선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어찌 그리도 부엌에서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의 기본을 모르는지. 예를 들자면 남편은 튀김닭을 한 마리 사와서 먹고 나면 포장지와 닭뼈, 먹다 남은 양배추 샐러드와 무를 같이 비닐 봉지로 싸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면 갑자기 쓰레기통이 가득 찬다.
이런 경우 닭 뼈와 먹다 남은 양배추 샐러드나 무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종이 포장지는 접어서 재활용품으로 내놓고 비닐봉지도 접어 따로 모아두면 따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 없다.
이 외에도 남편이 분리수거의 기본을 무시하는 경우는 많다. 요구르트 병이나 음료수 캔 속에 담배꽁초를 잔뜩 집어넣고 쓰레기통에 버리기, 음식물 쓰레기통에 휴지나 담배꽁초 집어넣기는 기본이고, 음식점에서 하던 버릇인지 밥 먹은 빈 그릇에 휴지를 담아놓기도 있다.
그리고 야참으로 라면을 자주 먹는 남편이 어떤 날은 부엌을 치운다고 라면 냄비를 담은 설거지통에 둘째 아이 우유병을 같이 담가둔 경우도 있었다. 가뜩이나 라면 국물은 기름기가 많아 다른 설거지 거리와 섞이면 세제도 물도 두 배가 드는데, 하물며 따로 깨끗이 씻어야 하는 아이 우유병마저... 이럴 때면 나는 거의 기절하고 싶어진다.
이런 남편을 보면서 나의 결론은 하나다. 남자들도 쓰레기 분리 수거의 기본부터 배워야하고 쓰레기 분리 수거가 왜 환경을 보호하는 지름길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TV에서 오염한 물이나 흙을 떠다가 실험실에서 분석하며 심각하게 환경오염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남자들이다.
하지만 정작 남편을 생각해 보건대 남자들이 생활 속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들을 얼마나 철저히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 대한 나의 말랑말랑한 태도의 정체는 남편에게도 변화하기 위해서는 나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아줌마가 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아줌마가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부엌에서 하는 나의 작은 실천들이 내 아이들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앞으로 부엌에서 일어나는 남편과의 작은 다툼들이 '네가 남자이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 것을 벗어나 같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큰 바람은 이 마음이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홍혜경은 30살 이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