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바른 규정. 정식의 규정'을 뜻한다. 정규라는 뜻에서 보듯이 정당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문화일보>의 윤창중 논설위원은 인수위와 청와대 그리고 장차 조각내용까지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정·관·재계를 막론하고 능력위주의 사회보다는 학벌위주의 사회로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갈수록 학벌이 부모의 경제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와 비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더욱 문제시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을 윤 논설위원은 김대중 정부의 인사부터 학력과 경력을 파괴한 아마추어적인 인사라고 평하면서 심지어는 그러한 인사를 사회의 하향평준화로 몰고간다는 비약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윤 논설위원은 이전의 한완상 전 교육부장관이 시도했던 이력서의 학력기재사항을 하지 말 것을 의무화한 정책이 그 각료들로 인해 포기되어지고 끝내 그로 말미암아 한 장관이 실각되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정부의 각료의 현황을 볼 때도 학벌이 무시되지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학력에 의한 계급 매겨지기가 끝나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새로운 인사정책에 의한 인사를 비평함은, 그리고 더욱이 그것을 비정규군이라고 혹평하는 것은 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단지 아마추어리즘이나 이념에 의한 집단화라고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여타 족벌신문의 행태와 비슷하다.
즉 윤 논설위원의 이번 비판을 노 당선자의 인사원칙이었던 다면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나 측근 위주의 인사를 가지고 비판함이 옳을 듯 한데 그러지 않고 학벌을 끌어들여서 비판함은 그 비판의 방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나라는 현저히 학벌위주의 사회가 되고 있고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세습과 더불어 고착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사회적 충격, 즉 학벌과 사회적 관례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능력과 그 사람이 걸어온 길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일깨워졌다. 이 것을 가지고 '외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로 인한 비판보다는 윤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사회의 건전성은 기득권이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느낌이 사회구성원 전원에게 주어질 때 높아질 수 있다. 즉 학벌이 아닌 능력에 의한 인사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참신함과 나아가서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성공을 꿈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상위 5%만의 사회가 아니다. 또한 상위 5%가 성취 지위가 아닌 귀속 지위로 만들어진다면 더더욱 사회구성원들과의 이질감이 심화될 것이고 이는 끝내 계급화 되어 사회의 건전성을 크게 해칠 것이다. 모든 사회의 계층이 수평화되고 능력이라는 이름으로만 계층 지워질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화일보 2월19일자 시론 전문
<시론>`비정규군` 시대
얼마전 거실에서 대학 2학년생이 되는 큰아이와 고3이 되는 작은아이가 자기들끼리 환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이런 얘기를 하려다가 입을 닫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공부 잘해야 한다. 그래야…”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공부만 하라는 얘기가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면 “놀아라. 그래야 성공한다”고 할 것인가.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유명 여배우임에도 고졸학력을 깨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고 나이 70을 넘긴 노인들도 대학에 들어가 신문에 나는 나라, 그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학력 사회임을 보여준다.
사실 학력이나 경력은 우리만 지독한 것이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는 모두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정치적인 바람에 의해 뽑힌다 해도 정부는 최고의 인력으로 구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입지전적인 성공을 했다 해서 참모 진영까지 입지전적 인생 역정의 유무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참모들이 일류의 경쟁력, 국내를 넘어 세계의 다른 나라의 권부에서 일하는 참모들의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실패에 이른다. 반드시 국정 운영에 구멍이 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대통령의 참모와 구멍가게나 마찬가지인 야당의 총재나 대통령 후보의 참모가 다른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와 행정부를 최고의 인맥으로 짰다면 나라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된지 얼마 안돼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가서 “교문을 나서면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잊어버려라”고 했다. 실제로 청와대나 권부, 행정부에서 학력·경력 파괴는 무섭게 이뤄졌다. 그러면서 국제 경쟁력을 외쳤다. 정부의 일류 인재 기피 풍조로 사회가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데 국제 경쟁력이 높아질리가 없다. 이런 파괴로 DJ 정부가 성공했다면 노 정권은 이를 답습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는데도 이보다 더 강한 파괴력의 실험을 한다면 위험한 발상이다.
DJ는 자신의 ‘준비된 박식함’을 과신했다. 자신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참모진의 지혜가 더 이상 필요없다고 보았다. 참모들의 질적 하향화가 결과적으로 국정을 병들게 했다.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의 인사는 김 대통령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외곬’으로 살아왔지만 이번에 단 한차례의 도전으로 대통령까지 된 것을 보면 그 성공 미화가 틀리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정부 구성도 자신의 당초 의지대로 밀어붙이면, 정부가 달라지고 나라가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에 이어 청와대 비서진 구성을 보면 소위 일류의 기준은 전혀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 깊은 산골에서 산이슬을 먹고 살던 사람을 골라오는 것처럼 모두가 외곬 인생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인생 역정’,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이념’이 인사 정책의 가장 큰 잣대이다.
그러다 보니 노 당선자가 모아놓은 인맥은 한명 한명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입지전적 인물의 화신이고 이념적으로는 의식화된 투사다. 이것은 DJ정권의 인사정책을 뛰어넘는 대담한 실험이다.
총리를 고건씨로 앉힌 것은 지금와서 보면 그 다음의 혁명적인 인사를 준비하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고 전략이었다. ‘정규군(regulars)’의 상징을 방패삼아 ‘비정규군(irregulars)’의 대약진을 계획한 것 같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은 비정규군의 진출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런 정도의 인력으로 국가 경쟁력을 갖춘 정권을 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흐름이면 조각(組閣)때도 비슷할 것 같다. 이미 지구촌은 노 정권이 지금 정부를 구성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인생 역정이나 ‘정정당당’같은 자존심이나 이념의 차원에는 관심도 없고 다 지난 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정정당당만을 외치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세간에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윤창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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