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무덤같은 'HOLY LAND'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의 본모습

등록 2003.05.18 21:02수정 2003.05.1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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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열린 국제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 참가한 후 팔레스타인으로 향했습니다. 17일, 팔레스타인에서 보내는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평화운동가들은 왜 팔레스타인으로 가야 하는가?'

a 오른쪽 위에 보이는 요새와 같이 생긴 곳이 유대인 정착촌. 전체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이 방벽이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요새와 같이 생긴 곳이 유대인 정착촌. 전체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이 방벽이다 ⓒ 은국

이스라엘 수도 텔 아비브에서 에루살렘을 거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베틀레헴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에서 베틀레헴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이스라엘 군의 검문소(check point)를 거쳐야만 했다. 스페인 활동가 4명과 터키 활동가와 네덜란드 활동가 각 1명, 그리고 최정민씨(평화인권연대)와 나는 알리바이를 짰다. 우리는 옷과 가방에 붙이고 있던 'stop the occupation' 'yes peace!' 'no war!'가 써져있는 배지를 모두 뗐다.

검문과 통금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검문소에서는 몇시간씩 차량을 붙들어 놓을 때도 있고 때로는 아예 출입을 금지할 때가 있다. 그것에는 어떠한 기준이 필요없다. 오직 이스라엘 당국이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마치, 전쟁을 앞두고 있던 이라크 당국처럼. 다행히도 검문소에서는 우리를 붙잡지 않았다.

죽어있는 '성스러운 땅'

베틀레헴은 웨스트 뱅크(west bank)에 위치해있다. 아직까지 웨스트 뱅크에 외국인이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또 다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 지구 (gaza strip)는 현재 외국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가자 지구에서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는 일이 발생하고 있고 외국인 평화활동가들이 죽기도 했다. 이스라엘 당국에서 외국인의 출입을 봉쇄하는 것은 가자 지구에서 곧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깔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진압이 따르리라는 것도.
베틀레헴은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이 곳은 'HOLY L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황폐해진 죽은 자들의 도시였다. 2000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베틀레헴 침공과 봉쇄 이후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a 길거리에 붙어 있는 죽은 자들의 사진 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사진 속의 이 아이는 1년전 이스라엘 군이 실수로 죽인 크리스틴이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죽은 자들의 사진 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사진 속의 이 아이는 1년전 이스라엘 군이 실수로 죽인 크리스틴이다 ⓒ 은국

도시의 건물들에는 이스라엘 군에 희생된 사망자들의 포스터가 가득 붙어있었다. 그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하마스 무장 게릴라들의 사진도 있었다. 죽은 자들의 사진으로 도배된 베틀레헴은 마치 커다란 무덤을 연상시켰다.

사진뿐만 아니라, 길가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죽은 팔레스타인을 추모하는 보잘 것 없는 무덤이 놓여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채 지워지지 않은 상흔들이 가득했다. 이스라엘 군의 포격으로 부서진 건물들과 총탄 자국이 가득한 벽. 이 곳에서 총소리가 사라진 것은 불과 2달 전부터라고 한다.

'중동유일의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의 '본모습'


죽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존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정착민들은 총으로 무장하고 정착촌을 둘러싸는 방벽을 세워올렸다. 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의 거주 지역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그와 반비례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영토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a 묘비도 없이 길가에 만들어진 무덤

묘비도 없이 길가에 만들어진 무덤 ⓒ 은국

우리를 안내해준 이스라엘 평화 활동가 죠르지는 '시오니즘은 곧 인종차별주의'라고 못박았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더이상 삶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종속과 차별, 그리고 폭격과 점령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우리들을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죠르지는 무너진 건물과 총탄자국, 죽어나간 사람들의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바로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실상'이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제발 이 곳의 현실을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와서 이 폐허가 된 도시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물건을 보이콧하는 운동을 해달라고 하는 죠르지의 부탁에는, 강대국의 폭력에 가려진 '난민들'의 현실을 어떻게든 알리려는 안타까움이 배어나왔다.


베틀레헴에서 하루를 지내고 내 머리 속에는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나라도 없고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도 없이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나와 팔레스타인 사람은 무엇이 다르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무엇이 다르지?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차별과 억압은 현실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땅' 베틀레헴에서 곱씹게 되는 것은 끝모를 환멸과 분노일 뿐이었다.

5월 16일 베틀레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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