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지독한 엄마를 봤나"

우리 모녀의 세상사는 법

등록 2003.05.18 23:02수정 2003.05.1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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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은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몇번이나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 있는 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가던 딸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겠다고 나서더군요.

시누이가 나선 운동 길을 따라가려 하는 것인데, 시부모님은 불안하니 제가 따라나서라고 하시더군요. 시누이도 이제 인라인 초보이니 아일 챙겨주긴 힘들 것이었습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오늘 읽어야 할 400페이지 짜리 책 한권을 들고 나섰습니다. 딸아이에게 엄마는 가서 책을 읽을 것이라고 말해 두었지요.

처음엔 자전거를 타다가 인라인을 바꿔 탄 딸아이는 제 엄마가 같이 타줬음 했습니다. 아직 서투른지라 걸음 옮기고 힘주는 걸 가르쳐 주어야 해서 한바퀴만 돌기로 했죠.

어느 정도 연습 후 앞으로 달려나간 제 엄마를 쫓아오던 아이는 그만 넘어지고 서럽게 울더군요. 절대로 못 일어나고 움직일 수도 없다고 무섭다면서요.

그러는 아이에게 넘어지지 않고서 인라인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라며, 혼자 일어서 오라고 하고선 앉아 쉬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를 내버려 둔 채 책을 읽다가 보니, 아이는 난간을 잡고 겨우겨우 걸어 내게 오더군요. 그렇게 와서 한번 안긴 후 아이는 용기를 얻었는 지 혼자 다시 연습을 하러 나갔습니다. 아마도 기어서든, 난간을 잡고서든 다시 엄마에게 올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겠지요.

그렇게 아이는 스스로 인라인을 신고 벗으면서, 자전거타기와 인라인 타기를 번갈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책을 읽고 있었지요.

근데 무슨 소리가 들려 보니 혼자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불쌍히 여긴 어느 아저씨가 자신을 따라오라며 아이에게 말을 걸더군요. 그러면서 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사실 그 눈초리가 낯선 건 아닙니다. 자주 보는 눈빛에 가끔은 한 마디씩 듣기도 일쑤이니까요. 무슨 엄마란 사람이 어린 애를 혼자 놔두고 책을 읽느냐는.

가끔 주말에 공원같은 곳에 나서면 엄마들은 그저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하거나, 쉴새 없이 아이를 챙깁니다. 잠시 타는 거나 봐주고 내 할 일 하는 나같은 엄마를 한심히 여깁니다.

게다가 애가 넘어져 울거나 다쳐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거나 떼를 쓰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는 저를 경악스런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제가 무조건 아이를 방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몇가지 가르치고, 수시로 아이의 상황을 체크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아이에게 스스로 해야한다고, 엄마가 무조건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죠.

아이는 저와 다니면 거의 떼를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할 수 없을 때에만 도와달라고 부탁하죠.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의외로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제 아이는 어려서부터 혼자 잘 놉니다. 대신 제 근처에서 머무르려고 합니다. 엄마의 할 일을 존중해 줄 것을 저는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가르쳤습니다. 각자의 할 일을 하지만, 늘 가까이에 있는 엄마. 그게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도 아이는 혼자 씩씩하게 자전거와 인라인을 타면서 한바퀴를 돌고 올 때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조금씩 연습을 통해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혼자의 갈 길을 가게 내버려 두면서도 언제나 가까이 있어 마음의 힘이 되는 엄마, 그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엄마도 사람입니다.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따라나서는 일요일 오후의 산책은 정말 별로일 겁니다. 집에서처럼 집중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가며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건 휴일의 여유가 될 수 있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모녀가 되길 바랍니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헌신하고, 언제나 챙기고 보살피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나는 지독하고 이상한 엄마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이와 마주볼 수 있는 엄마가 되자, 내 아이를 챙기는 헌신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을 당연히 여기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나는 자주 '저런 지독한' 혹은 '제 생각만 하는 엄마를 봤나' 하는 눈초리를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자신을 존중할 때 아이도 존중할 수 있다는 것, 아이에게 키워주는 독립심과 강인함이 내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닥칠 세상의 어려움과 싸우는 데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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