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조사단 설왕설래, "국민 바보 만들기인가"

파병 문제, "한미관계가 아닌 국제 관계 문제로 바라보아야"

등록 2003.10.09 15:31수정 2003.10.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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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이라크 현지 조사단 활동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보고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안전'하며, 이라크인들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같이 참여했던 한 교수가 보고서 내용을 정면 반박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말았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 미군의 브리핑만을 전제로 삼은 점 등을 내세우며 조금 비약하자면 관광단(?)인지 조사단(?)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의 엄중함을 느낀 정부에서는 즉각적으로 2차 조사단을 구성해 파견할 수도 있다며 사태를 수습하려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파병을 전제로 한 조사단 활동의 결과는 파병할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파병할 조건을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의혹만을 증폭시키면서 이러다가 파병 수순을 밟는 것 아닌가 하는 더한 의구심만을 키운 셈이 됐다.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잠시 냉철한 이성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는 이라크 조사단 활동에 대해 회자되는 것의 핵심은 '안전한가, 위험한가'일 뿐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말대로 2차 조사단이 가서 하는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결과를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 활동 또한 '안전한가 위험한가'하는 결론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조사단 활동에 대한 설왕설래는 '파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교묘하게 '안전한가 위험한가'라는 논쟁으로 만들고 있다. 자칫하면 이미 파병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파병을 기정사실화 한다는 의혹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어 이런 오해가 오해가 아니라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10월 8일 교도 통신은 워싱턴발 기사라는 전제로 "한국이 미국 정부에 대해 이라크에 전투 부대를 파병하겠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전달해 왔다고 7일(현지 시간) 워싱턴의 한-미 관계자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파병론자들의 언론 플레이로 볼 수도 있다. 허나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정부 각료들조차 파병 조기 결정론을 내세우며 잔뜩 파병 불가피성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난 이후 바로 조사단을 구성하여 파견하였다는 것도 이런 오해를 키우고 있다.

물론 현지 조사단의 활동이 파병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이라크의 현실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니까. 어쨌든 오해이든 아니든 안전한가 위험한가의 논쟁은 파병 결정에 참고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전투병을 파병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이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라크 전후 처리가 미국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더라면 유엔까지 무시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과연 국제 사회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리 있을까? 뭔가 일이 뒤틀리고, 끊임없는 전비 증가에, 자꾸 미군 사망자가 늘어나니까 어쩔 수 없이 국제 사회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결국 현재 조사단 활동과 관련하여 안전과 위험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들은 일종의 개그일 뿐이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매우 위험하고 한국군의 인명 피해는 일정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은 전투병 파병 요청에서 벌써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감언이설로 속이려든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만큼이나 아둔한 짓이다.

이라크 현지 조사단의 활동을 두고 설왕설래하면서 흐려진 파병 문제의 논점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이라크 전쟁이 명분이 있는 전쟁이었는지 아니면 힘의 논리로 한 나라를 침범한 침략 전쟁이었는지부터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가야 할 것이다. 명분 있는 전쟁이었다면 그에 맞게 고려를 하면 될 것이고 침략 전쟁이었다면 또 그에 맞게 대응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국의 주장처럼 이라크에서는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9.11 테러와도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을 무시한 침략 전쟁이었음을 확인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대다수 국가들의 시각이다. 오죽했으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미국이 유엔에 낸 수정 결의안마저 거부당했겠는가?

그렇다면 침략 전쟁에 부화뇌동하는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이 옳은가? 더구나 한반도는 전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침략 전쟁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곧 한반도 전쟁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코지하는 것도 비상식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문제에 있어서도 자기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은 뻔하다.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결정도 힘센 나라에 의해서 내려지게 된다. 타인이나 타국의 문제는 아부로 통할지 모르지만 자기 문제는 아부가 절대 통하지 않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혹자는 파병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단'을 구성해, 한시가 급한 식수와 의약품,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상하수도, 병원, 학교, 전기 시설, 도로 등을 재건하는 데 힘을 쏟는다면, 한국은 이라크인들에게도 환영을 받으면서도 한미 관계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타당한 주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여기서도 한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미국이 주장하는 다국적군에 포함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단순히 '정부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면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문제 빗겨나기'에 더 가깝다. 결국 현실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의도와는 다르게 문제의 핵심을 감추는 것으로 될 수도 있다.

이라크 전투병 파병 요청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응축되어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한미 관계의 문제이며 또 하나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 문제이다. 미국이 직접적으로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한미 관계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 문제는 이라크 전을 둘러싸고 국제 관계가 심각한 분열 상태에 놓였고 따라서 어떤 편에 설 것인지 강요 아닌 강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이다.

한미 관계의 문제는 미국이 한국에 끼치는 절대적 영향으로 곧바로 국익 문제로 비화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역할 문제는 독자적인 역할이 아닌 오로지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결정 받는 역할로 규정을 받고 있다. 즉,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국제 관계에서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두 문제를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국제 관계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이라크전의 결과는 힘의 논리가 전적으로 먹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힘의 우위만을 믿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다 자가당착에 빠져 자기 함정에 걸려든 것도 큰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국제 사회의 반전 평화 연대의 움직임이 더욱 힘을 발휘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게도 국제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국제 관계는 한국에게 국제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그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병 문제는 단순히 한미 관계 문제만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한국은 국제관계 속에서 그 위상을 정립하고 그에 맞게 한미 관계도 발전적으로 인식시켜 나가야 한다. 부연하면 한미 관계 속에서 국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국제 관계 속에서 한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의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미국이 요청하는 다국적군에 포함되겠다는 것은 한국 스스로 국제 미아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그것이 의료병이든 공병이든 전투병이든 미국이 요청하는 다국적군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은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이라는 위기가 오히려 국제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절호의 기회로 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국제 사회에 참여할 한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시험대일지 모른다.

그럼 파병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대안은 복잡한 국제 관계를 이유로 보이콧하는 방식이다. 심각한 국제 사회의 분열로 야기된 흐름에서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 방식이다. 입장이 난처할 때는 조용하게 빠져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미국에게는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점을 추궁하면서 한국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등이 취하는 방식이다. 미국으로서는 꼽지만 다른 대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인도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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