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제6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박현욱의 장편소설 <새는>

등록 2003.10.10 19:01수정 2003.10.1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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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현욱 <새는>

박현욱 <새는> ⓒ 문학동네

“박현욱의 신작 장편소설 ‘새는’의 구성은, 잊어버리고 있던 개인용 편집 테이프를 다시 찾아서 듣는 과정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때 녹음한 테이프인 것 같다. 되감기 버튼을 눌러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1973년부터 1978년 사이에 발표된 송창식의 노래 열 곡과 산울림의 노래 한 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를 들은 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전원을 끄는 것으로 마감된다. 왜 이런 테이프를 만들었던 것일까. 단순히 송창식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물건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송창식의 노래를 그러한 식으로 배열하고 산울림의 노래를 끝부분에 삽입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낼 수 없는 삶의 차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절절했던 심정과 뼈저린 경험이 노래들을 배치하라고 요동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김동식/문학평론가)

박현욱의 신작 장편소설 <새는>의 각 장은 마치 잊고 지냈던 테이프를 꺼내 듣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다. 송창식과 산울림의 노래를 따라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로 떠나가 보자.


1980년대 지방의 어느 중소도시의 고등학교에 은호라는 학생이 있다. 은호는 생계를 저버리고 일년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와 시장 골목 한끝에서 야채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다. 공부도 반에서 밑바닥을 헤매고 잘하는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학생인 은호는 어느 날 체육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동갑내기 은수라는 여학생에게 매혹되어 버린다.

“땀방울이 맺혀 있는 이마는 매혹적이었고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서늘했다. 콧날은 또렷했고 입술에는 자연스럽고 싱그러운 웃음이 머물러 있었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 얼굴로 가져가는 동작은 우아한 동선을 그렸다. 살짝 젖은 앞 머리칼에서 부서지던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짱하니 반짝였다.”

이렇게 남몰래 은호의 짝사랑은 시작된다. 은호는 은수에게 다가기 위해 그 시절 유행하던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다. 가난했던 은호는 기타와 학원비 마련을 위해 새벽에 신문배달을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기타 연습에 할애하는 열성을 보인다. 학원에서 만난 현주의 등장으로 은호, 은수, 현주의 사랑의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은호는 멋진 기타 연주로 친구들과 선생님에 인정을 받자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 어떤 믿음을 가지기 시작한다.

2학년이 된 은호는 은수가 문예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문예반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또다시 무작정 은호의 책읽기가 시작된다.

“나는 순전히 은수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잘난 체하기 위해서 카뮈를 읽었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고 토마스 하디를 읽었으며 최인훈과 이청준을 읽었다. 그렇게 자꾸 읽다보니 무슨 얘기인지 알 만한 책들도 제법 생겼다. <이방인>의 경우처럼 해설을 외우다시피 하면 실제로는 무슨 말인지 몰라도 괜히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법이다. 나는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왔으며 가을이 왔다.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축제에서 은호는 독서토론회와 음악제에서 멋진 모습으로 연주를 하고 발표를 해 친구들과 타 학교 여학생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은호는 풍만한 자신감으로 은수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방법으로 은호의 사랑은 유보된다.

“은호야, 우리 이제 고3이야. 그런 건 대입시험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거야.”


은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은호는 기타, 책에 이어 이제 공부로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은호는 현주의 도움을 받아가며 바닥을 기던 성적을 조금씩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기초 수학의 정석부터 실력 수학의 정석까지 차근차근 해온 그의 공부는 전교 오십 등 이내로 진입하는 경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은호는 합격한다. 이제 잠시 유보됐던 그의 사랑이 확인받을 수 있는 그 끝이 온 것이다.

“은호야, 미안해, 라는 은수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게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은수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마치 새 책의 종이에 손가락을 베었을 때처럼 뒤늦게 아픔이 배어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었는데 나는 전혀 예상을 못 했던 것처럼 당황했다.”

은호의 짝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여기에 은호의 짝사랑만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은호를 남몰래 좋아한 현주의 사랑도 숨겨져 있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신문배달을 하던 은호를 처음 봤던 그 날부터 현주의 사랑은 시작된다.

“뒤늦게 다시 생각해보면 그날 새벽 그 아이 주변에 희미한 빛이 머물러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언제부터 그 아이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사이에 마음속에 그 아이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르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니 처음 보았던 그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자꾸 그렇게 여겨지는데, 우습지요?”

은호와 은수, 현주는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비밀은 책 속에 있다. 작가의 말처럼 “그 시절의 평범한 풍경”속으로 들어가 보면 갤러그, 프로야구, 죠다쉬 청바지 등 그 시절의 빛바랜 이미지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는>은 우리의 청소년 시절에 대한 언어적 박물관이다. 그 속에는, 우리가 청소년기에 겪은 문화, 풍속, 에피소드와 사건, 사랑의 상처와 기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세 번 웃다가 두 번 찡해졌다가 다시 세 번 웃게 하는 묘한 리듬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단지 그 무렵의 문화 컨텐츠나 풍속도, 혹은 그 당시에 있음직했던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그려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때에만 가질 수 있었던 순정하고도 애틋하고 발랄한 정서까지 되살려낸다.”(이만교, 소설가)

새는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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