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할까

베트남 전에 관한 마틴루터 킹의 연설문

등록 2003.10.18 22:22수정 2003.10.19 09:35
0
원고료로 응원
요즘 이라크 파병문제에 대한 몇 대학 강연을 다니면서, 마틴루터 킹 자서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그의 연설문을 발췌해 읽고, '미국' 대신에 '한국'을, '베트남' 대신에 '이라크'를 넣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었습니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저 같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파병에 반대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너무나 약해서, 이 결정이 가져 올 결과를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이 후유증은 30년 이상, 우리 세대가 죽을 때까지 떠안고 가야 할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저를 미치게 만듭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역사로부터 왜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래는 마틴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중 일부입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수행해왔던 시민권 투쟁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는 명백하고도 알기 쉬운 연관성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의 시민권 투쟁은 화려한 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빈곤퇴치프로그램은 흑인과 백인을 불문하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것 같았습니다. 실험적인 시도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으며, 새로운 시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파병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전쟁의 광기로 빠져든 우리 사회가 무익한 정치적 유희를 끝내듯이 빈곤퇴치프로그램의 막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사건이 사악한 흡혈귀처럼 사람들과 기술과 돈을 빨아들이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나 행동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쟁을 가난한 사람들의 적으로 보고 전쟁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는 것 이상의 영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전쟁에 대해 한층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과 형제와 남편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족이 베트남에 파병되는 비율은 다른 계층에 비해 대단히 높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무력하게 만든 흑인청년들을 뽑아서 수천 마일 떨어진 동남아시아로 보내고는, 그들에게 남서부 조지아 주나 동부 할렘 지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자유를 수호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이전에는 같은 학교에서 함께 앉아 공부해본 적도 없는 흑인청년들과 백인청년들이 나라를 위해서 함께 목숨을 바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비참하고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시카고에서는 같은 거리에서 함께 살아본 적도 없는 청년들이 야만적인 결속을 이루어 가난한 마을의 오두막들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야만적인 조종에 놀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운명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베트남 전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영혼이 완전히 타락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부분적인 원인을 '베트남 전쟁'에서 찾아야 합니다. 전 세계인의 희망을 파괴하고서는 미국의 영혼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저항과 반대를 통해서 조국의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복으로서의 소명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 성직자입니다. 성직자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전쟁에 반대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크게 당황하게 됩니다.

그들은 복음이 만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복음은 공산주의자와 자본주의자, 남의 자식과 나의 자식, 흑인과 백인, 그리고 혁명가와 보수주의자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직자의 사명은 원수를 너무나 사랑하여, 원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신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나는 주님의 충복으로서 배트콩이나 카스트로, 혹은 모택동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가요? 그들을 죽음으로 위협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바쳐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자녀로서 도리를 다하며 인류를 사랑하는 사명은 인종이나 국가, 신조에 구애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통받고 천대받으며 살고 있는 힘없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이들을 위해 연설을 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주님에 대한 충정이 국수주의보다 훨씬 깊고 폭이 넓으며 국가적인 목적과 주장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은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영혼의 질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후입니다.
고 케네디 대통령은 5년 전에 '평화혁명을 막으면 필연적으로 폭력혁명이 야기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의도한 일이든 우연한 일이든 우리나라는 해외투자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평화혁명을 막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혁명에서 정의의 편에 서려면, 미국은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혁을 달성해야만 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우리 사회를 사물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기계와 컴퓨터, 이윤추구 동기와 사유재산권을 사람보다 더 중시하는 가치관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와 극단적인 물질주의, 군국주의 이 세 쌍둥이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참된 가치관의 변혁이 일어나면 이제까지의 수많은 국가정책들이 공정하고 정당한 것이었는가하는 의문이 일 것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역할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끊임없는 폭행과 강도의 표적이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여리고 성 전체를 변모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참된 동정이란 거지에게 동정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거지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참된 가치관의 변혁이 일어나면 우리는 세계질서에 관여하여 미국이 전개하는 전쟁에 대해서 "이런 분쟁 해결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네이팜판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일, 수많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남편을 빼앗는 일, 인도적인 국민들에게 증오심을 불어넣는 일, 사람들을 추악한 유혈의 전쟁에 보내어 신체적 정신적 불구로 만드는 일은, 사랑과 정의, 그리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일입니다. 해마다 사회진보 프로그램에 지출하는 자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군사비에 지출하는 것은 영적인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극적인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고집을 버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서 불구의 손으로 현상유지를 완강하게 고집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참된 가치관의 변혁을 위해서는 애국심을 넘어서 인류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각국은 자국의 소중한 것들의 보존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류애를 길러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의 우유부단한 태도에서 벗어나서 실천적인 행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평화와 개발도상국들의 정의를 대변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권세는 있으나 동정심이 없고, 무력은 있으나 도덕성이 없으며, 세력은 있느나 통찰력은 없는 자들이 겪어야 할 운명인 길고 어둡고 수치스러운 시간들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자, 이제 행동을 시작합시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숭고한 투쟁에 나섭시다. 비록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주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애타게 기다리는 형제들에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너무나 힘든 투쟁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미국의 무력 때문에 완전한 존재실현을 방해받는 형제들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말할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들의 정의에 대한 열정과 열망에 대하여 깊은 동경과 연대감을 표시할 것입니까? 어느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결국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인류역사상 결정적인 시점인 바로 지금 선택을 해야 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3. 3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입틀막' 카이스트 졸업생 "석유에 관대한 대통령, 과학자에게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