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찾아 떠났던 고창 문수사 길

아직 그 가을은 요사채 창문에 걸린 곶감에 남아 있을 터입니다.

등록 2003.11.15 00:03수정 2003.11.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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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어도 떠날 수 없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일이 붙들고, 돈이 붙들고, 건강하지 못한 몸이 붙들어 꿈쩍하지 못하고 보내는 가을이다.

사실 요즘 나는 어떤 일에 메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계절이 가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아침, 일을 마친 뒤 시내 버스를 타고 화순 너릿재를 넘어가는 길에 만난 은행나무 잎의 노란 색감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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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물게 자란 늙은 단풍나무에 여린 저 잎들이 태양보다 붉게 빛난다. ⓒ 전고필


갑작스런 가을 색감에 움찔하고 놀란 나의 머릿속에는 그 샛노란 빛이 가시질 않고 따라왔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그 은행잎을 잊지 못했다. 그 다음날은 생애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이른 아침 목포까지 내려가 한바탕 일을 치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을 불렀다.

"가을 구경했니?" 다짜고짜 묻는 형을 보며 동생은 "뭐, 도서관에만 있었지" "예라! 형하고 가을 찾으러 가자."

말없이 같이 길을 나서는 듬직한 동생과 함께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길이 반듯하여 고창에 당도하기까지는 3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군청에 들러 문수사 가는 길을 확인하고 다시 영광 가는 길을 따라 고수면 소재지를 찾았다. 금새 도착한 고수면에서 다시 샛길을 따라 문수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몇 해전 겨울 "전 선생, 고창 문수사 가봤어? 단풍이 정말 예쁜 곳인데!"라고 한 어느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 은행잎을 보던 날부터 며칠째 내 귀에 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 말의 유혹에서 몇 해 동안 자유롭지 못했던 터라 내친 김에 오늘 그 예쁜 단풍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차는 약간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문수사로 들어가는 길섶에 들어섰다. 길게 누운 단풍나무가 마치 진입 금지를 알리는 차단기처럼 보인다. 단풍이 들지 않은 이 나무를 보니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나무에 비해 계절을 견딜 만하니 아직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도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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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몸서리 치는 몸통으로 가을을 이고 있는지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지 ⓒ 전고필

쿨럭 거리는 차를 두고 길을 나서니 발걸음이 한결 사뿐하다. 나무들은 몇 해 동안 손때를 타지 않은 것인지 원시림 같아 보인다. 채 몇 걸음도 가지 않아 단풍나무 한 두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조그마한 잎새를 달고 있다. 백양사 어디메쯤에서 보았으면 금세 '애기단풍'이라고 말할 것이다. 곧 단풍의 잎새를 따라 비춰지는 태양의 색감에 눈부심이 느껴졌다.

지혜를 밝히는 문수보살의 도량 문수사로 가는 길섶은 점차 단풍나무 천지로 변했고, 햇볕과 같은 색으로 변하고 있는 단풍은 몸 둘 바를 모르게 붉어지고 있다. 가을이 이렇게 다가오도록 무엇을 했는가 싶지만 해가 뉘엿거리기 전에 이 풍경을 다 볼 욕심에 한눈 팔 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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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 불을 끌것인지 ⓒ 전고필


저 엷디 엷은 단풍잎이 어쩜 저리도 환하게 웃고 있을까 싶어진다. 햇살의 방위에 따라 색감이 변해지는 것 또한 오묘하다. 자연 속에 싱그러운 모습을 한 단풍 앞에 서자 나는 이 가을과 세월이 망막함을 느낀다.

계절의 순환처럼 사람의 생애도 변해 가지만 나를 붙들고 있는 일들은 결코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가을 단풍나무 아래서 문수보살에게 지혜를 빌리고 싶다. 망막해진 가을이 아니라 꽉 찬 가을이고 싶었다. 도대체 그런 가을은 언제쯤 가능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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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마음을 바로 다져주었던 문수사 오르는 길 ⓒ 전고필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햇살은 저 고개 너머 뉘엿거리고 선방 창문에 걸린 곶감이 붉게 타오른다. 불전에 오를 저 곶감에 가을 햇살이 다 들어 있을 법하다. 곶감 하나를 입에 물면 이 가을을 모두 다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이 인다.

그 곶감의 유혹 뿌리치고 불전 앞에 서니 덤덤하고 큼직한 활주가 바치고 있는 대웅전의 모습이 부자유스럽게 느껴진다. 공포의 화려함으로 보아 팔작 지붕이려니 하고 고개 들어 보니 맞배지붕이다.

대웅전 뒤로 가니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당나라에 유학을 갔던 자장율사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같은 지형의 이 땅을 보고 굴에 들어가 이레 동안 기도를 올리니 땅 속에서 문수보살이 현신하는 꿈을 꾸었다 한다. 꿈을 쫓아 땅을 파 보니 문수보살상이 나와 그곳에 문수전을 지었고, 절 이름도 문수사라 했다는 것이다.

아직 바다로 가라앉지 못한 햇볕이 단풍나무의 숲을 뚫고 불전으로 파고든다. 가을 청량산 문수사에는 불이 난 듯 하다. 그 불 끄지 않고 뚫어져라 보고 있는 스님의 법력이 하늘 같아 보인다.

가을산을 물들여 가는 단풍과 노을의 향연을 뒤에 둔 채 한바탕 소풍을 마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어둑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단풍잎 몇 개가 이마를 스친다.

다시 지혜롭게 세상을 살라는 문수보살의 계시인지. 이제 이 가을이 다가도 하나도 안타깝지 않을 것이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아직 가을을 느끼지 못한 분들은 고창 청량산 문수사에 꼭 가 보길 권한다. 그 단풍에 취해 신선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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