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맞춘 세액결정보고서 수차례 만들었다"

당시 썬앤문 담당 조사사무관 법정에서 증언

등록 2003.12.24 16:06수정 2003.12.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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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앤문 그룹의 감세 청탁 의혹사건과 관련 당시 썬앤문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서 최초 혐의 세액은 180억원이었으나 그 후 추징세액이 최종 23억1천만원으로 줄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짜맞춘 감액 보고서 안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당시 조사를 맡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3과 내에서도 내부적으로 직원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23일 썬앤문에서 감세 청탁을 대가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홍모 전과장(당시 서울청 조사4국 3과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사무관(당시 조사8계장)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김씨는 증언에서 "지난 2002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여 동안 벌인 썬앤문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최초 혐의세액은 180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러나 홍 과장에게 이를 보고하자 세금이 너무 많다고 해서 당초 180억원 추징세액 결정보고서 외에 112억원, 80억원, 73억원짜리 3개 안을 더 만들어 담당조사반장과 함께 보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이 금액도 너무 많다며 다시 안을 만들어 보라고 해서 조사반원들이 모두 모여 추징세액을 71억원으로 결정했다"며 "당시 현장 조사를 맡았던 반장은 (우리가) 과세증빙 자료를 확보해놓고 있어 과세할 수 있는 실질 과세액이 71억원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이어 "이 보고서안에 대해서도 홍 과장이 '청장 지시'라면서 세액을 더 줄이라고 했다"며 "당시 조사국장에게서도 그런 암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내가 다시 만들어 간 것이 62억원, 51억원, 42억원짜리 보고서안이었다. 그러나 홍 과장은 이 안도 채택하지 않았다"며 "현금수입업종을 더 이상 얼마를 하라(낮추라)는 거냐"고 했더니 "홍 과장이 '청장이 25억원 이하로 하라'고 했다며 보고서 귀퉁이에 23억∼25억원을 적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조사반장은 최소한 51억원을 고집했고, 홍과장은 '그러려면 당신이 청장한테 직접 보고하라'고 하는 등 6급 반장이 과장에게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겨 (중간에서) 난감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김씨는 "결국 조사반장이 못하겠다고 해서 조사반원인 김모씨가 23억원짜리 보고서안을 만들게 됐다"며 "이렇게 짜맞춘 보고서를 홍 과장이 국장실에 들고 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조사반 직원들이 모두 허탈해 바람을 쐬러 나간 적이 있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김씨는 그러나 이날 증언에서 "썬앤문 세무조사에 들어간 뒤 국세청장이 관심 많은 업체이니 무리하지 말고 친절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 구체적인 말을 홍 과장에게서 들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며 "다만 홍 과장에게 청장 지시라는 말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나중에 조사4국장에게서도 그런 암시(청장 지시)를 받았다는 게 사실이냐는 기자의 확인 질문에는 "잘 모른다. (법정에서) 내가 그런 말을 했었냐"며 대답을 회피했다.

김씨는 또 증언에서 "통상적으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국세청장에게서 직접 업무지시를 받는다"며 "세무조사를 마친 뒤 조사계장이 과장한테 결재를 받아 국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국장은 서울청장이 아닌 국세청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씨의 증언대로 라면 썬앤문 세무조사 과정에서 담당 조사국장이 아닌 조사과장이 청장의 지시를 직접 받았다는 점과 업무보고 선상에서 실질적인 보고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과장이 세액조정 업무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현재 구속 수감중인 홍모 전과장은 검찰에서 "썬앤문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된 직후인 작년 4월초 손 전 청장이 '국회의원들과 외부 인사들에게서 썬앤문의 특별세무조사를 걱정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 "썬앤문을 조사할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국세청장의 직속국이나 다름없으며 조사과장에게는 추징세액 결정 권한이 전혀 없다"고 감세에 개입한 사실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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