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슈에즈만은 벨기에 사람으로 자연과 환경에 관한 주제로 잘 알려진 작가다. 멸종 위기에 처한 고릴라, 코끼리, 북해 바다표범에 대한 모험소설로 유명하다.
<잘 가라 내 동생>에서는 종교와 자연의 일치감으로 죽음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잘 풀어내었다.
밝아오는 아침해와 환한 웃음소리로 죽음과 대비되며 작품은 시작된다. 아홉 살 생일을 보내고 열 살 생일을 맞은 벤야민은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어? 내가 죽었네!' 라며 다소 가볍기까지 한 화두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하다.
밝은 색을 좋아하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던, 그래서 빌려온 책을 미처 반납하지 못한 채 벤야민은 죽음은 맞는다. 철들 기회도 없이 닥친 죽음에 대한 의문을 벤야민은 눈과 귀와 입을 통해 호기심으로 설명한다. 아홉 살 짧은 삶이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다소 야무진 발언을 한다. 죽은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온 영혼은 전지적이다.
도서관에서 책 냄새를 맡던 코와 뽀뽀를 하던 입과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던 귀와 엄마 얼굴을 바라보던 눈과의 이별에 가슴 아파한다.
벤야민이 죽은 다음날 에스터 누나는 새벽 숲 속 하이킹에서 만난 나이팅게일 새의 울음을 통해 동생의 죽음과 무관한 세상을 인식한다.
왜! 햇빛은 꺼지지 않고 새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지 동생이 죽었는데, 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 건지 절규하는 누나를 통해 죽음은 타인을 이루는 지극히 사적인 작은 사건임을 나타낸다.
동생은 죽었지만 슬픔을 이길 틈도 없이 누나는 봄 소풍을 가야한다. 벤야민은 누나 옆자리에 앉아 같이 떠난다. 생명의 나머지와 같은 조개 껍데기에서 누나는 동생의 부재를 확인한다. 벤야민은 죽음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연이 되어 바다를 날아보고 친구들, 선생님, 가족과 작별을 한다. 죽은 벤야민은 살아서 세상을 향해 이야기한다.
벤야민은 죽음을 통해 연결된 현재를 지니지만 우리는 벤야민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벤야민을 기억하고 느낌으로 안다. 죽음은 도서관 서랍 속의 번호로 기억되기도 한다. 벤야민은 흥분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달콤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웅을 꿈꾸던 벤야민은 장례식장에서 세계의 중심이 된 것 같다. 벤야민을 향해 일치감을 보이는 가족들 사이에서 적어도….
벤야민이 아끼던 작은 자동차와 누나가 날린 연줄을 묶었던 실크 스카프와 갈색 비로드 곰 인형을 가지고 떠난다. 완전한 결별이 없는 처절함이 묻어난다.
울음을 참고 있는 부모님에게 속삭인다.
"울고 싶으면 울어요."
시를 낭송하는 외삼촌과 죽기 전에 벤야민이 고른 시보레 새차를 타고 병원에 온 할아버지는 엄청난 속력으로 무덤을 향해 달린다. 벤야민의 외침은 생생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더 빨리 달려요' 단호한 벤야민의 음성은 들린다. 너무 가벼워 숨바꼭질하듯 벤야민이 사방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피엔체 할머니와 교통사고로 끔직한 죽음의 길에 들어선 또 다른 어린아이를 통해 죽은 이들과 현세에 남아있는 여러 형태의 상황을 보여준다.
저승에서 첫 번째 친구는 여든 하나의 피엔체 할머니다. 할머니는 생후 두 달된 딸의 죽음의 비애를 생전에 경험한 분이다. 유산을 남기지 않아 쉽게 잊혀질 할머니는 살아 생전에도 쉬운 인생이 아니었다며 죽음에 다소 긍정적이다.
죽은 살덩이를 넣는 냉장실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벤야민에게 '춥긴 하지만 너는 벌써 죽었으니까 얼어죽을 걱정은 없잖니?' 하는 피엔체 할머니를 통해 죽음에도 안식이 있음을 알려준다.
또 다른 친구는 쿠르트이다. 갑작스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부모는 묘지에서 벤야민의 누나 에스터의 도움을 받아 7년만에 비로소 세상 속으로 들어온다.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소개된다. 자신들의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영원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도우미가 된다
누나는 벤야민의 죽음 1주기에 연을 놓으면서 '잘 가라 내 동생'을 말한다.
죽음의 세상에서 1년을 살았던 벤야민은 열한 살이 되어 투명한 형태로 비로소 죽음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셈이다.
죽음을 극복하고 나면 고통은 견딜만하고 그 다음에는 함께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만 기억할거라고 열 한 살의 생일에 연날리기를 통해 벤야민을 보낸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역설한다. 나름대로 살아가지만 문득 아들의 부재를 실감하는 이별의 언저리에서 사랑의 영원함을 인식하게 한다
작가의 종교관과 자연에의 결합이 죽음이라는 엄청난 주제를 연 날리듯이 훨훨 날려보냈다. 작품 곳곳에는 '인간들아 기억하라, 한 낱 먼지이며 재인 것을......' 라는 다소 관념적인 사색을 요구하는 말들이 조각퍼즐처럼 숨어있다.
죽은 이들은 저녁마다 특별한 생각을 부어넣으려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찾아가는 일을 하지. 죽음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완전하게 보존되고, 날마다 사람들은 죽기 마련이야. 기억해 주는 이가 없으면 투명인간처럼 빨리 옅어지기도 해. 죽음의 백과사전처럼 장황하지만 질서가 있다. 죽음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묵상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죽은 사람끼리는 연결통로가 없고 오직 산 자를 통해서만 존재감을 느낀다는 규칙은 신비롭다. 촛불이 불타오르고 하얀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가족들 그 속에서 번지는 천상의 목소리가 화합된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이젠 정말 공기처럼 사라질 거야. 그야말로 영원한 휴식이지.'
벤야민의 독백처럼 이미 공기가 되어 떠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잘 가라, 내 동생
빌리 슈에즈만 지음, 김서정 옮김, 민은경 그림,
크레용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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