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집 아저씨 박씨가 지역운동에 나선 이유

40대에 지역운동 시작한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박강태씨

등록 2004.01.13 14:27수정 2004.01.13 14: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고가'에서 만난 박강태씨.

'고가'에서 만난 박강태씨. ⓒ 한정원

안양 시내 제페 사거리(구 본백화점)에서 안양9동 병목안 방향으로 2백m 가량 접어들면 왼편으로 단아한 '고가(古家)'라는 한식당이 눈에 띈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이곳은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박강태(39) 부대표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원래 쌀장사를 했습니다.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쌀을 많이 파는 사람이었죠."

그는 서울 양재동 미곡상의 점원으로 출발해 판매법인의 본부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한 유통 분야의 베테랑이다. 대형급식업체, 백화점 등이 주거래처였다. 일명 '까대기'라는 80kg 쌀가마니 나르기를 하면서 장사와 영업을 배웠다.

97년 12월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고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안양에 문을 연 대형 쇼핑센터의 양곡 코너 운영을 시작했다.

"쌀 장사가 마진은 적고, 원가 비중이 크거든요. 그 바닥 용어로 '양띄기사업'이라고 하죠. 많은 자본을 갖고 박리다매해야 돈을 벌 수 있어요."

그 시기 닥친 IMF로 경기가 얼어 붙어 현실의 무게를 더욱 버겁게 했다. 우연한 기회에 육류유통업을 접하면서 양곡 유통과 겸업을 하게 된다. 그 뒤 육류 유통의 비중을 높여오다가, 2001년도 프렌차이즈회사를 창업해 2002년 본격적으로 식당체인사업에 뛰어들었다.


'고가(古家)'는 체인사업본부에서 낸 제1호점이다.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쉽지 않은 경제 활동으로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먹고 사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을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서울 안암동 토박이로 용문고, 한성대를 졸업하고 98년 12월 안양으로 이사왔다. 나이 40을 앞두고 20대와 30대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정말 행복한가? 무엇을 가치로 사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난해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안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욱 새로워졌다. 20대에는 사회변혁운동, 30대에는 자본주의 유통구조의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그는 이제 40대를 준비하며 '지역운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잡았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안티서이면(cafe.daum.net/antiseoimyun)' 까페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역사성이 결여된 서이면사무소 복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서이면사무소의 복원과 관련한 사실들을 알리고, 무엇이 문제이고 잘못되었는지 많은 시민들의 생각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시민들이 시정에 대한 관심과 자치활동에 대한 필요를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안양시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안양시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