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이승연이 위안부 누드를 찍겠다고 기자회견을 할 때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저 여자가 지금 뭘 하겠다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저 여자가 자신이 여자인지 알고나 있는지? 여자로서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엄두가 나는지? 이 시대 여성의 불평등에 대해 습관적인 무감각을 가지고 있는 뭇남성들도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치를 떨고 있는데, 하물며 한국의 톱스타라는 저 '여자'가, 지금 제 정신인지?
변명
이승연은 기자회견을 통해 아주 당당하게, 너무나 떳떳하게 자기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녀의 변명은 세가지로 요약 된다.
첫째, 돈을 안받았다.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계약금을 받지 않았다. 이런 의미있는 일에 얼마를 받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용납을 못한다.'고 밝혔다.
둘째, 역사적인 사건을 되짚어보고 대중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에 대한 재조명, 일반인이 찍는 것 보다는 연예인이 파장이 더 크니까'라고 말했다.
셋째, 누드가 아니다. 그녀는 '누드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 누드라고 보면 누드라고 볼 수 있다. 주제 의식이 있다. 아이들 조차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걸 찍으려고 노력했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모순
그러나 그녀의 변명을 듣고나면 정말 이승연이 후안무치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 투성이기 때문이다.
첫째, 계약금을 안받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입으로, '물론 상업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다. 계약금을 안받았으나 미래를 보았다. 향후 사업에서 결실이 있다면 추후로 상의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믿는다. 또한 수익은 환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건 쉽게 말해 선불이 아니라 후불이라는 말이다. 러닝 게런티든지 아니면 인터넷 사업권이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뒤에 수익을 보장 받을 것으로 믿는다는 말인데 이게 역사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누드 자원봉사란 말인가? 돈이 문제가 아니다. 고통받은 할머니들은 일본으로부터 금전적 배상보다는 정신적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돈을 받든 안받았든, 할머니들에게 돈을 주든 안주든 간에 할머니들을 소재로 어떤 짓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둘째, 대중에게 위안부 문제를 상기시키고 싶었다는 그녀의 목적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승연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해서 전국이 들끓는 것이 아니라 이승연 때문에 할머니들이 경악하고 오열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승연이 옷을 훌렁 벗어던질 정도의 숭고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해서 할머니들을 돕겠다면 프로젝트 전에 피해 당사자들과 단 한번의 상의라도 거쳐야 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투자사와 이승연은 관련단체와의 상의,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 여론수렴 등은 완전생략해버렸다. 몰래 촬영하고 깜짝 기자회견하는 누드 마케팅과 역사의식 고취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프로젝트 기획자들은 이승연 누드 파장이 가져올 역사문제 해결 보다는 누드 매출에 더 눈독을 들이지 않았을까?
셋째, 누드가 아니라고 하는데 보도 자료에는 '더이상의 누드는 없다'고 나왔고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상을 찍었다고 했는데 상반신 노출에, 일본 군복을 풀어헤치고 쓰러있는 모습, 스포츠 서울 보도에 따르면 미공개 사진에는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도 담겨있다고 한다.
단지 알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노예 흉내를 내는 한 예쁘장한 연예인이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포함해서 위안부 모습를 재연하고 그 사진을 첨단 배급 시스템으로 한국, 일본, 동남아, 미국에 뿌린다고 생각해보자. 이건 역사에 대한 반복적 강간이다. 사진을 보면서 손장난 하는 남성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상상속에 두번 강간당하는 참혹한 고통이 이승연이 말하는 주제 의식인가?
양심
나치 전쟁범죄 관련 다큐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쇼아> 의 감독, 클로드 란츠만은 인터뷰만으로 그들의 범죄를 증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범죄가 알려지길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더욱 더 큰 범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승연이 정말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해도 위안부 누드집 발행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그것은 클로드 란츠만의 말처럼 살아있는 역사의 피해자,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커다란 범죄이다.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넣는 짓이다.
강간당한 여성을 돕기 위해 강간당하는 장면을 생생히 누드 촬영해서 팔아먹고 그 수익의 일부를 강간당한 여성에게 돌려준다고 해보자. 과연 피해 여성이 기뻐하고 감사하게 생각할까? 유명 연예인이 아우슈비츠에서 누드사진을 찍고 팔아먹은 뒤에 유태인 학살을 기억하자고 외치면 유태인들이 고맙다고 말할까? 가치판단의 뒤틀림, 윤리감각의 결여가 가져온 결과이다.
속살
무엇이 이승연으로 하여금 찢어진 일본 군복을 입고 속살을 내비치게 했는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성노예 흉내를 내며 누드 사진을 찍게 만들었는가? 이번 위안부 누드 프로젝트는 이 시대 이 땅의 천민 자본주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건이다.
자본에는 역사의식도 희생자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없다. 자본의 창의력에는 무엇이 돈을 만들어내느냐에 대한 말초적 상상력만 동원될 뿐인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시장의 수준이 이 정도이다. 통제 불능의 막가는 돈벌이가 대중문화 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일본의 가판대에서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가 걸려있고 어떤 일본인 남성이 호기심에 가득차서 그걸 집어드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생존하신 위안부 희생자 할머니들 뿐만아니라 그 역사의 후손인 우리들의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승연과 투자사는 당장 프로젝트의 진행을 중단하고 할머니들과 국민앞에 사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사이판에 가면
이지상
수평선 해거름 지는 사이판에 가면
자살절벽 있다지 봉숭아 물든 조선처녀들
꽃잎처럼 몸 던진 자살절벽 있다지
눈부신 햇살번지는 사이판에 가면
신혼부부 있다지 밀월여행을 즐기는 아담과 이브
밤이오면 무르익는 사랑노래 있다지
잡초 크게 웃자란 절벽에선 지금도
처녀들 신음소리 바람에 실려오고
한국인 위령탑엔 갈곳 없는 고혼들
떠돌고 있다지 맴돌고 있다지
낭만의 섬 낙원의 섬 사이판에 가면
전설 같은 정신대 조선처녀들 남긴 아리랑
아라리오 부르는 원주민들 있다지
아라리오 기억하는 원주민들 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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