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란...

노인복지현장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등록 2004.03.25 18:24수정 2004.03.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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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인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참 질기다. 이 욕망은 현재 각종 매스컴과 대중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도 또아리를 틀고 앉아 혀를 낼름거린다. 작게는 가족과 친구 관계 속에 존재하며 크게는 직장과 조직 사회 그리고 국가 간에도 권력의 욕망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나이듦의 미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러한 욕망의 끈을 놓을 줄 아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노인복지 현장에 있다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욕망의 빛깔을 담백하게 만드는 기술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한산한 복지관 토요일 오후, 한 아버님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현관 문 앞 안내 데스크를 손으로 "탁탁" 치며 종이를 들이밀었다. 틀니 때문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의 손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 쪽지를 받아 펼쳐보니 복지관 프로그램 별로 반장을 뽑는다는 유인물이었다.
"나 이것 시켜줘!"
다짜고짜 떼를 쓰는 아버님에게 반장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당신이 왕년에 사무관이었다며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한 마디 한 뒤 쑥스러운지 빙긋 웃으셨다. 그러면서도 "이것 취급하는 부서 알려줘!"라며 끝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다.

복지관에서 반장을 뽑는 이유는 90가지가 넘는 프로그램을 담당 사회복지사 혼자 관리하기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와는 달리 이 작은 자리에 권력의 욕망을 덧입히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인생의 끝자락까지 따라 붙는 인간의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학계 처음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시도한 심리학자 에이브러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욕망을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생물학적 욕구(Physiological) 그 위로 안전에 대한 욕구(safety), 그 다음은 사회적 욕구(social), 자긍심에 대한 욕구(Esteem) 그리고 마지막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Self-Actualisation).

최상의 욕구인 자아 실현을 바로 하려면 나머지 4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매슬로우는 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망은 기초적인 4단계를 올바르게 발전시키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나이가 들어서도 반장이라는 것에 연연해하는 어르신들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학급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치맛바람을 휘두르며 검은 돈을 뿌리는 학부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채우려 아귀다툼 벌이는 정치인들의 행동은 모두 기초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것에서 따른다.

밥을 먹다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을 줄 아는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도 조절하지 못해 더 많이 채우려는 탐욕의 덫에 걸린 현재의 야당 정치인들은 불안감에 떨며 이리저리 안전 지대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돼 자긍심을 애써 움켜쥐려 하지만 결국 빈손인 그들의 모습을 대할 때면 볼수록 입맛이 씁쓸하다. 이런 고립의 불안이 자발적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마음마저 액면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일 테다.

치매 주간보호 어르신들과 뉴스나 신문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생각나무교실' 시간에 탄핵과 촛불시위에 관련된 뉴스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72세의 나이에 경증 치매를 잃고 있는 어르신 왈 "국민이 뽑은 대통령 지네 마음대로 해놓곤, 왜 난리들이여. 다 욕심이지 욕심!" 하신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아버님의 말씀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우리 모두 놀랐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어떤 가치 판단을 기대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우리가 가진 편견의 어리석음을 확인했다.

수많은 편견이 권력이라는 욕망과 합쳐질 때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요즘,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 것인지, 또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인생 선배인 어르신들은 우리들에게 몸으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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