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문화 때문에 여자가 아프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책 낸 한의사 이유명호

등록 2004.05.19 16:39수정 2004.05.1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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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타임스 김희수
[최희영 기자] 건강에 관한 관심은 1년 365일 뜨겁다. 아픈 사람도 많고 낫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40대 남성사망률 1위라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자만 아픈가. 여자도 아프다. 왜 아픈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웅진닷컴 刊)을 낸 한의사 이유명호(50)씨는 “여자의 몸을 평가절하하는 사회 풍토 때문에 여자가 더 아프다”고 말한다. 그의 입담에 귀를 쫑긋 세워보자.


건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게 뭔가?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아는 것일 터. 이유명호씨는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모르고, 몸을 학대하고, 몸을 부끄러워한다”고 진단한다. 그게 여자들 탓인가? 물론, 아니다.

“털 밀어라, 살 빼라, 무릎을 오므려라, 조신해라, 정숙해라, 월경은 불결하고, 질은 더럽다. 세상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여자의 몸을 부정적으로 각인시키는 것은 남성 권력적 사회죠.”

그의 말처럼 남성 권력은 몸을 통제한다. ‘고분고분한’ 여성을 만들어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생리대 광고는 줄기차게 “깨끗해요”를 외치고, 질 세정제는 ‘악취’를 유독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외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자궁’이라고!

여성에겐 오장육부가 아닌 육장육부

“여성에게는 자궁이라는 ‘당당한’ 신체 기관이 있어요. 여성은 오장육부가 아니라, ‘육장육부’를 가진 존재예요. 복부 깊숙한 곳에 생식기와 자궁을 내장하고, ‘다목적 지방(뱃살)’으로 그것을 소중하게 감싸고 있는 여성의 몸은 ‘최고급형’이에요(웃음).”


그렇듯 그는 남성 중심의 의료 관행을 집어던지고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의학 정보를 책에 담았다. 여성을 못 살게 구는 거짓 의학 상식이 참 많은 까닭이다. 그게 뭘까.

“유치원에서 성교육 어떻게 해요. 달리기 1등한 정자가 난자로 ‘침입해’ 아이가 생긴다고 하죠. 아니죠. 똑똑하고, 튼튼하고, 건강한 정자를 난자가 골라내는 거예요. 아이는, 정자와 난자의 ‘합작품’인 거예요. 여성을 쓸모 없는 것처럼 만드는 ‘폐경’이란 용어도 없어져야 해요. 여성의 임무를 완수한 거잖아요. 그래서 ‘완경’이죠. 인생 끝장난 게 아니에요. 이제부터 ‘명랑한’ 삶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여자만 건강해지면 그만인가. 그는 “여자'만' 건강해지자고 책을 쓴 건 아니”라고 말한다.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가부장 문화 때문에 여자가 아파요. 그런데 남자도 아파요. 오히려 남자가 가부장 문화의 최대 피해자죠. 사망률이 괜히 높나요. 가부장 문화가 남자들에게 가정을 혼자 책임지라고 과도하게 강요한 결과죠. 서로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서로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죠. 앞으로 엄마들은 ‘독립남자’ ‘독립여자’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가부장문화의 피해를 대물림해서는 안 돼요.”

여성 신체 소중함 일깨워

우먼타임스
그래서 그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동참해 왔다. 그뿐인가. 여성정치인경호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정치 세력화를 이끌었고, 여성장애인연합 이사로 일하면서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티미스코리아대회 등에서 보여주는 그의 파격적인(?) 무대 매너에 반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여성 운동을 하는 동료, 후배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제가 공공의 ‘젖짱’이거든요(폭소). 체구는 작은데 가슴이 커서(미소). 학창 시절부터 콤플렉스였어요. 늘 웅크리고 다녔죠. 왜 그랬는지 몰라. 당당한 건데!”

자신에게 당당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것, 그것이 그가 사람들에게 최고의 ‘언니’이자, ‘아줌마’로 인정받는 이유인가 보다. 그는 “여성 운동을 하는 삶이 너무 기쁘다”고 말한다. 그냥 기쁜 정도가 아니다. 그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고은광순씨를 만나면서 여성 운동을 하게 됐어요. 왜 ‘구원’이냐고요? 여성 운동 안 했다면, ‘배부른 돼지’처럼 살았을 테니까요. 의사가 전문 직업인일 뿐인데 아닌 척 살았겠죠. 대단한 지식인인 양 잘난 척하면서 살았겠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며 자기만을 위해 살았겠죠. ‘명품족’이 됐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는 이번에 낸 책을 여성 단체에 기증해 참된 정보를 공유하고, 여성민우회 등을 통해 ‘여성의 몸 제대로 알기’ 강연도 펼칠 예정이다. 여성 운동의 삶은 계속된다. 언제까지 할 건가. ‘양성평등의 임계점’에 닿을 때까지 하겠다며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다. 한의원의 문을 열고 나와, 여성이 신음하는 세상 또한 진단하고 처방하고 있는 한의사의 웃음에서 신록이 우거진 ‘숲의 냄새’가 났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이유명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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