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는 이사, 아들은 학장, 딸·조카·며느리는 교수

[특별기획-사립학교법 개정 3] 족벌운영, 공익이사제로 혁신해야

등록 2004.07.12 12:16수정 2004.07.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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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비리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사립학교법이 오히려 비리를 방조하거나 혹은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습니다. 최근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는 결의대회를 갖고 올해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사장에게 실형 선고된 특별한 재판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의 발자취' 일부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의 발자취' 일부디미고 홈페이지
지난 6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구속 중인 한국디지털미디어고(학교법인 한솔학원) 전 이사장 이민상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사립학교법 위반, 배임 수재,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초중등교육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하였다.

디지털미디어고 문제는 2003년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이미경 의원의 비리 의혹 제기로 시작되었다. 곧바로 진행된 교육부의 감사 결과, 교원 채용시 금품 수수, 이중통장을 이용한 교원 보수 횡령, 각종 학교비 유용 및 전용 등이 확인되어 검찰에 고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특이한 점은 2000년 학교 설립 당시, 전체 이사 7명 중 3명(전 이사장 포함)이 친인척으로서 이사회의 3분의 1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사립학교법을 이미 위반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2001년 6월에는 임기 만료와 사임 등의 사유로 이사가 3명(전이사장 포함)만 남아 의사정족수 자체가 미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충원하지 않은 채 학교를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이사회는 허수아비였고, 이사장 혼자 독단적으로 학교를 운영해온 셈이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공익이사제, 노무현 정부는 외면


지난 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국회 교육위원회에 '비리재단은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이 전체 이사의 3분의 1을 추천'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립학교법개정안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교육부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의 유재수 사무국장은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사립학교 비리와 학내 분규는 이사회, 교직원 등을 이사장의 친인척으로 채우는 족벌체제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미 문제가 발생한 사립학교만 이사 추천 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립학교 이사회의 구성을 다양화, 공개화하여 사전에 비리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사립학교의 '공익이사제' 도입은 교육·시민단체 차원에서 이번에 처음 나온 요구가 아니라 이미 과거에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던 계획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교육개혁안이 발표될 때 제시되어 교육부가 98년 12월 국회에 제출하여 교육상임위에 상정되었으나 8개월 뒤인 1999년 8월 수정 삭제된 바 있다.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유재수 사무국장은 김영삼 정부 때도 추진했던 공익이사제를 노무현 정부가 외면하는 것에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족벌운영, 비리사학뿐 아니라 보편적 현상

인권학원의 구부패재단이 복귀하여 교사 19명을 파면하자 한 전교조 조합원의 아들이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인권학원의 구부패재단이 복귀하여 교사 19명을 파면하자 한 전교조 조합원의 아들이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동해대, 동덕여대, 김포대, 세종대 등 대학법인은 물론 청부살인사건으로 재판이 진행중인 Y학원, 교비 불법전용의 D학원, 교사 부당 파면사건의 Y여고 등 중등학교 법인에 이르기까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사립학교들에서 친인척 중심 운영과 대물림은 쉽게 확인되고 있다. 족벌운영이 일부 비리사학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16대 국회 교육위원이었던 설훈 민주당 전 의원이 2002년 10월 127개 4년제 사립대와 132개 전문대학 등 총 259개 사학법인에서 제출받은 '이사장·설립자의 친인척 근무 현황'을 분석하여 발표한 보도자료는 사립대 족벌운영의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친인척이 있다고 밝힌 4년제 대학 70곳과 전문대 74곳의 평균 친인척 관계자수는 4년제 대학이 4.1명, 전문대는 4.7명 꼴이다. 이들은 주로 이사장, 이사, 총학장, 사무처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어 사립학교의 법인, 학사, 인사, 회계 등 의사결정과 집행 등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실상 사립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다.

자료에 의하면 대학의 법인과 학교 근무자를 합쳤을 때 4년제 사립대의 부부 관계인 자는 전체 친·인척의 8.3%, 자녀는 전체의 39.0%이며, 전문대는 13.7%와 32.7%로 부부와 자식을 모두 합치면 전체 친인척의 절반에 가까운 47.3%와 46.4%에 달한다. 즉 사립대의 이사 또는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친·인척 가운데 둘 중 한 명은 이사장 또는 설립자의 부부이거나 자녀인 것이다.

사학재단의 56.6%가 족벌체제 세습

대전 D전문대 친인척 근무 현황

성명

현직

이사장과의 관계

이 ㅇㅇ 이사장 본인
정 ㅇㅇ 이사
이 ㅇㅇ 학장 자(아들)
구 ㅇㅇ 교수 처 조카사위
이 ㅇㅇ 교수
이 ㅇㅇ 교수 조카
이 ㅇㅇ 교수 6촌
이 ㅇㅇ 총무과 6촌
이 ㅇㅇ 교수 조카사위
이 ㅇㅇ 교수 사위
이 ㅇㅇ 교수 조카
이 ㅇㅇ 교수 조카딸
이 ㅇㅇ 교수 조카딸
임 ㅇㅇ 교수 며느리
정 ㅇㅇ 교학처 처 조카
조 ㅇㅇ 교수 며느리

ⓒ (2002.10.4)
사립대의 높은 친인척 비율은 사립대학의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사립대의 대물림 현황을 살펴보면, 건국대, 고려대, 경기대, 경희대, 동덕여대, 동아대, 명지대, 세종대, 울산대, 한양대, 상명대, 한림대 등 23개 사립대가 전 이사장 또는 설립자의 자녀 등 후손이 이사장 및 총학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민주당 소속 교육위원이 공동으로 펴낸 자료집에 따르면, 자료를 제출한 818개 초중등 사학재단 중 대물림이 이루어진 경우가 463개로 56.6%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모재단의 경우는 집안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이사장을 역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립학교의 세습 현상은 공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자산이 사유화되어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전문성,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유지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사립학교 발전에 부정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대물림이 이루어진 동덕여대, 덕성여대, 건국대, 경기대, 세종대, 한성대 등은 회계 비리 또는 친인척간 갈등에 의한 분규 등이 발생했거나 진행중이다.

재벌의 세습 및 탈법 재산 상속에 관한 지탄 여론이 높은 가운데 교육기관인 사립학교에서 세금 한푼 없는 '대물림'은 충격적일 수 있다.

증권회사 이사회보다 덜 공익적인 사립학교 이사회

인사권, 재정권, 법규제정권 등 모든 권한이 이사회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사립학교법의 현실에서 이사회의 구성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친인척에 의한 폐쇄적인 사학 운영은 민주적 절차성, 다양성, 교육의 전문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져 공교육기관으로서 존립 가치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사학재단 이사회 구성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못 미치는 전근대적 체제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친인척 이사 비율의 경우 일반 공익법인이 관계법률에서 5분의1 이하로 제한하는 데 반해 사립학교는 3분의 1이다. 증권회사의 경우 증권거래법 '제54조의5'에서 사외이사를 2분의 1을 두도록 의무화하고, 일정 규모에 이르는 일반 사기업체의 경우 이를 권장사항으로 하고 있다.

일단 제도로 비교해 보았을 때 자기 자본 투자 없이 국가 지원금과 등록금에 의존해 재정을 충당하는 공교육기관인 사립학교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체나 공익법인보다 운영주체 구성의 다양성,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사학재단, 자신이 만든 윤리강령 지켜야

사립학교 법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한국사립학교법인연합회의 '사학윤리강령'(사단법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제20회 사학 연수회 자료집 속표지, 199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유물 같이 다루어져서는 아니 된다."

현재 우리나라 사립학교의 교육분담률은 중고등학교의 경우 약 40%, 대학은 약 87%이다. 학교 재정의 거의 대부분은 학생 등록금과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지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사립학교가 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족벌운영'과 '세습'으로 지탄받는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 그러나 사립재단연합회는 공익이사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사립재단 스스로 공정성과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부와 국회가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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