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삶의 현장서 길어올린 '희망'

최민식 사진전 '사람만이 희망이다'...오는 21일까지

등록 2004.11.04 02:30수정 2004.11.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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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 땅의 민중 누구에게나 뜻 깊은 기록이어야 한다.(중략)
나에게는 사진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사진이다.
나는 거기서 생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최민식


어깨에 무거운 물지게를 짊어진 소년, 양은 냄비를 빡빡 씻는 소녀, 길섶에서 새우잠을 자는 남루한 차림의 노인,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민주화'를 외치는 민초들….


물지게는 삶의 무게인 듯 무겁기만 하고, '삶의 얼룩'이 밴 냄비는 힘주어 닦아도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잠깐 눈을 붙였지만 꿈속에서만큼은 제대로 '쉼'을 얻고 싶다. 또 '말'만으로는 뜻이 통하지 않아 굳게 쥔 주먹을 하늘로 높이 쳐들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곧 오리라 믿는다.

그가 담아낸 사진 속 사람들의 삶은 이렇듯 스산하고 고달프다. 사진 안에 담긴 사람들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하다. 이따금씩 함박웃음도 지어 보고 시원스레 웃음도 터뜨려 보지만 이들의 생활 속으로 또 다시 고단함이 슬금슬금 스며들어 온다.

최민식 사진전 '사람만이 희망이다'
최민식 사진전 '사람만이 희망이다'일민미술관 홈페이지
지난달 6일부터 일민미술관(서울 종로구 세종로 소재)에서 열리고 있는 '최민식 사진전'을 찾은 건 3일 오후. '우리나라 제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불리는 최민식(76)씨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사진전에 대한 기대감은 적잖이 컸다. 특히 그가 '민중'에 대한 관심을 사진을 통해 어떻게 표출했는지 몹시 궁금했던 터였다.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일민미술관 1, 2층에 전시된 최씨의 사진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그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참으로 정직하고 진솔하게, 질펀한 삶의 현장 속 사람들을 담아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최씨가 스산한 생활 풍경을 사진 속에 박아두고 있지만, 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이번 사진전의 주제를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붙여 놓았듯, 최씨는 코흘리개 어린 소년과 헝클어진 머리의 소녀, 아이를 업은 할머니, 새우등을 한 할아버지에 이르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그 희망은 '함께 어우러짐' 즉, 연대에서 나온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내 친구가 있고, 딸이 있고, 손자가 있고, 동료가 있기에 스산한 삶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써 웅변하고 있는 것 같다.


설사 그들의 삶이 지금은 그늘져 보이더라도 머잖아 환해질 거라는 믿음을 작가는 놓지 않는다. 바로 이 믿음 때문에, 그는 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사람'에게 향해 있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을 터이다.

최씨의 사진들을 관람한 뒤 가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우리가 평생을 두고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대상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이와 더불어 꼭꼭 숨어 있는 듯 보였던 '희망이 존재하는 곳'도 알게 됐다.

물론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네게' 있다는 것. 그리고 '희망과 다름없는 네'가 있기에 '내가' 힘겨운 삶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최씨의 사진들은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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