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제네레이션 청년백수(김병석 분). 두 남녀 청춘들이 점차 꿈을 상실해가면서 신용불량자로 내몰려가는 상황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린 영화가 <마이 제너레이션> 다.
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Everyone has the right to work, to free choice of employment, to just and favourable conditions of work and to protection against unemployment.)
오는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世界人權宣言日]입니다. 위의 글은 세계인권선언문 제 23조 1항의 글입니다. 오늘 우리는 백수(실업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백수들은 세계인권선언문에 명시된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요?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졸자 10명중 4명이 백수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젊은이 두 명중 한 명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실업대책은 미봉책으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실업자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실업의 고통으로 하루하루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음에도 실업대책을 총괄하고 있는 정부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자리창출이 최우선 국정과제'라던 올해 초 노 대통령의 신년사는 이제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허공 속의 외침으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실업 관련 정부의 두 위원회(국무총리산하 '일자리 만들기 추진위원회', 대통령직속 '청년실업해소특위')는 요란했던 출범소식과는 달리 개점휴업상태에 있습니다.
국회도 사정이 같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여야 정치권이 경제를 위한다고 구성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국회 내 일자리특위는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 등을 놓고 공청회 한번 개최하지 않는 등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예산만 따먹는 천덕꾸러기 신세인 것입니다.
얼마나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위선에 사로잡혀 있는지, 실업자들을 기만하는지 실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들 문패만 걸려 있는 정부와 국회 내 각종 위원회들은 실제 실업자들의 어려움과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업자대표나 단체는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실업대책을 세우면서,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면서, 실업자들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하면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겁니까?
실업문제가 이슈화되면 그 때 그 때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런 위원회들은 당장 해체되어야 합니다. 정부담당자는 파면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실업자의 이름으로 이들을 고발합니다.
허울뿐인 대한민국 실업대책
실업으로 고통 받고, 실업의 위험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수많은 실업자, 청년백수들과는 달리 천하 태평한 세월을 보내는 대한민국 공복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실업률은 2004년 10월 현재 3.3%입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에서 더 나아가 '청백전'(청년백수전성시대)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청년실업률은 7.2% 이구요. 전체실업률로만 보자면 대한민국은 실업문제에 관한 한 완전고용상태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만 명 이상의 구직단념자, 일하는 시간이 하루 3시간도 안 되는 82만4000명의 '준 실업자', 실업과 취업을 넘나드는 비정규직 근로빈곤층, 솥단지를 내다버릴 정도로 파산상태에 놓인 영세자영업자들과 그 가족들, IMF이후 최대라는 노숙실업자들, 언제 해고될지 모를 상태에 놓인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실업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의 통계자료들을 발표하는 그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터무니없는 통계자료를 들이대며 실업대책을 논하는 그들을 고발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대한민국 실업자 통계
지난 10월 28일 노동부는 내년부터 2010년까지 2050억원을 들여 2만4천 평 부지에 연건평 1만평 규모의 종합직업체험관(가칭 '잡 월드 Job World')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직업에 관한 상담, 직업탐색, 적성검사 등등을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직업박물관>도 건립한다고 합니다.
한데, 주로 초-중-고등학생들,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될 거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히는 노릇입니다. 노동부 담당자들 눈은 허깨비를 쓰고 있나 봅니다. 대한민국 수도서울에조차 하마 못해 '열 평짜리 청년실업자쉼터' 같은 것도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고용안정센터가 있다지만 가보신 분들은 아시지요? 그곳이 얼마나 불편한 곳이라는 것을…….
실제 청년백수들은 갈 곳이 없어서 PC방을 전전하고 있는데, 자그마치 2050억을 들여 직업박물관을 짓겠답니다. 예산은 청년실업 명목으로 타서 정작 청소년들 하루견학코스 전시시설을 짓겠답니다. 그나마 지방 청소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청년실업을 빙자해서 그 효용성이 의심되는 전시건물을 수천억의 예산을 들여서 건설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추진 중인 노동부 책임자를 고발합니다.
'백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하다
한편, 요즘 접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백수(실업자) 희화화'가 매일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KBS 일일시트콤 <달래네 집>에 등장하는 백수삼촌(김기현)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는 언제나 365일 촌스런 운동복을 입고 지냅니다. 공짜를 대단히 밝히고, 나이든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타 쓰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이 그의 일과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실업자(백수)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위로는커녕 마냥 부끄러운 존재이고 하릴없는 존재로 묘사하는 드라마가 공영방송 KBS에서 매일처럼 방영됩니다.
방송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언제부터인가 '백수'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라이터를 켜라', '위대한 유산', '똥개' 예에서 보듯이 백수가 주인공인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한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스테레오타입 백수'는 지나치게 백수라는 존재를 희화화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매개로 하여, 서바이벌게임을 진행했던 프로그램 '꿈의 피라미드'(KBS)는 프로그램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엄존하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청년백수 개개인의 취업전쟁으로 바라보는 접근방식도 문제였지만, 취업희망자들이 주인공이라기보다 '협찬사'의 홍보가 주된 프로그램 제작목적처럼 생각되곤 했던 제작시스템, '취업'이라는 명목 하에 수시로 진행되었었던 '폭력적인 트레이닝'과정이나 별 연관도 없는 '수영복 입고 문제 맞추기' 같은 눈요기 제작방식에 대해서 늘 홈페이지 상에서조차 논란을 빚곤 했습니다.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노동부는 이례적으로 꿈의 피라미드 프로그램에 공로상을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청년실업'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담당자들의 '청년실업'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식이었습니다.
실업으로 고통 받은 대한민국 실업자(백수)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는커녕, 희화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그들을 고발합니다.
'눈높이를 낮추라'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그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늘 청년실업이나 실업문제를 다루지만, 어이없게도 결론은 늘 마찬가지가 되고 마는 현상이 있습니다. '눈높이를 낮춰라' 같은 판에 박힌 결론이 그렇습니다. 국가가, 사회가,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문제인 청년실업문제를 청년실업자 개개인의 문제로 회피해 버립니다. 더 이상 눈높이를 낮출 수도 없는 청년백수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눈감기 일쑤입니다.
대졸자들의 눈높이가 낮아지면서 고졸자들이 일자리를 잃어간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나봅니다. 눈높이를 낮출 대로 낮추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그들 앞에 닥치는 생계유지곤란, 희망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볼륨을 낮추고 맙니다.
그렇게 자칭 청년실업 전문가들이 청년실업자들이 눈높이를 낮추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목소리 높이는 동안, 청년실업률은 높아졌다는 현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공시설이 존재하고 있고, 새로 지어지고 있거나 지을 계획(노동부의 Job World V프로젝트)이며, 청년실업해소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쓰이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청년백수들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직업상담은커녕 취업전쟁(?)에서 잠시 쉬어갈 쉼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엄연한 현실과 부재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극히 일부의 화려한 취업 성공담에 열광합니다. 대다수 청년백수들이 부딪히는 현실과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해결, 정책과제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극히 소수의 해외취업 사례를 보도하고, '면접성공을 위한 성형수술', '이색면접현장' 같은 자극적인 소재만을 뒤쫓습니다.
대한민국의 청년실업 전문가들이 '눈높이를 낮추라'고 윽박지르고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 동안, 유럽을 비롯한 해외 각국은 정부 각 부처, 지자체, 기업, 학교, 사회 등의 제 분야에서 뉴딜 프로그램(영국), 'JUMP'(독일) 같은,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윽박지르면서, 국가사회문제인 실업문제를 청년실업자 개개인의 문제인양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데 앞장서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언필칭 실업문제 전문가들, 그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토론회, 그리고 이를 방송 중계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들을 고발합니다.
홍사덕 백수(실업자)비하망언을 다시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문 제 22조)
대한민국 백수(실업자)들의 인권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요즘 촛불시위에 나오는 많은 젊은이들, 30, 40대가 모두 다 단단한 직장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