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TV 속처럼 평화롭기만 할까

[미디어비평] KBS '세상은 넓다'와 MBC '요리보고 세계보고'

등록 2005.01.26 14:11수정 2005.01.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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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다’와 ‘요리보고 세계보고’는 둘 다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이 두 프로그램은 많은 차이가 있다. ‘세상은 넓다’가 ‘여행’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면 ‘요리보고 세계보고’는 제목 그대로 ‘요리’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의 여행이야기 '세상은 넓다'

KBS 1TV '세상은 넓다'(이하 세상)는 1995년 처음 만들어져 1999년 개편 이후 지금까지 방송되어 온 장수 프로그램이다. 일반 시민들이 여행을 하면서 직접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의 구성 방식이다.

프리랜서 피디가 많지만 숲 해설가, 부동산 컨설턴트, 교사 등 전문 방송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여행을 그들이 직접 찍은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해외여행이 활발해지고 캠코더가 보급된 것이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인 것이다.

KBS TV <세상은 넓다>
KBS TV <세상은 넓다>KBS
문화방송의 ‘와 e 멋진 세상’에서 보여주는 해외 토픽감의 진기한 모습도, ‘VJ특공대’가 보여주는 속도감 있는 화면도 없지만 ‘세상’은 시민들이 직접 말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 인상 깊었던 장소’ 등을 들을 수 있어 나름의 소소한 재미가 있다.

매끈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성우의 내레이션도 좋겠지만 친구나 부모님 등 내 주변의 친숙한 누군가가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아마추어적인 내레이션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다. 간간히 역사적인 지식도 들을 수 있고 평범한 외국인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좋다.

진행자는 이용식씨와 최원정 아나운서다. 이용식씨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마다 그날 방영될 나라와 관련된 음식, 복장, 물건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아나운서는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행자들이 자주 반말을 하는 것은 눈에 거슬린다. 또 화면을 보고 나서 시민들과 진행자들이 이야기할 때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대본을 미리 맞춰보는 연습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세상’은 한국방송 1채널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5시 45분부터 13-4분 정도 방송한다. 고정적인 시청자층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기는 힘들다. 방송 시간도 짧아 마음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으면 보기가 힘들다.


시간대를 바꾸고 5편을 모아 방송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바꾸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제목도 좀 더 프로그램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막연히 ‘세상은 넓다’라는 말은 전혀 프로그램이 성격을 나타내주지 못하고 있다.

음식 속에서 문화 찾는 '요리보고 세계보고'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5시 20분 MBC TV에서 방송되는 ‘요리보고 세계보고’(이하 요리보고)는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말레이시아 한 시골 마을의 전통 음식을 소개하면서 그 음식의 조리법이 기후와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고 라마단 시기 이슬람 국가의 식당을 보여주면서 라마단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음식 속에서 문화를 찾겠다는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루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유럽 유명 휴양지의 고급 레스토랑들을 소개할 때는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비싼 음식들이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때에 ‘요리보고’는 본래 의도를 잃고 세계 유명 레스토랑 탐방기가 되어버린다.

MBC TV <요리보고 세계보고>
MBC TV <요리보고 세계보고>MBC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맞는 소재를 고르고 음식과 문화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이 곁들여진다면 요리를 매개로 한 좋은 교양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과 ‘요리보고’가 보여주는 세계는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평화롭고 살기 좋고 즐거운 곳이다. 이들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세계의 전쟁도 내전도 기아도 에이즈도 먼 곳의 이야기가 된다. 이들 프로그램이 보여준 티베트의 평온함, 베들레헴의 조용한 수도원과 페루 티티카카 호수 풍경은 이들 나라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잊게 한다.

또 평생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해외의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나와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닌 언젠가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

빈부격차가 점점 커져가는 시기에 저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이들 프로그램이 우리 삶의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삐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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