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국부론> 표지(생각의 나무 출간)조성웅
음식과 국부라는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콘셉트를 한 자리에 결합시킨 <음식국부론>(생각의 나무)이 지난 11일 출간됐다. 그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웰빙만을 강조하던 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구조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식탁을 바라보자는 취지 아래 써내려간 이 책의 저자 우석훈은 아주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 인터뷰는 28일 우석훈 선생과 <음식국부론>을 놓고 얘기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책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서 선생님 약력을 보면 조금 독특합니다. 전에는 정부 정책 입안과 관련한 좋은 부서, 요즘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공직자셨는데 어째서 갑자기 환경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셨나요?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 더 알려져 있었지요. 기후변화협약의 실무기구에 할도라는 아일랜드 의장이 선출되면서 개혁 성향의 개혁그룹으로 분과 의장까지 맡고 선출직 이사까지 되는 등 외국에서는 꽤 알려져 있었어요. 외국에서는 언젠가 서브스타(SBSTA)라고 하는 기후변화협약 실무기구의 의장까지 하게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만두게 되면서 아쉬웠던 건 서브스타 개혁의 끝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인수위원회 구성을 보면서 정말 절망했기 때문이었어요. 욕먹으면서도 지난 선거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인수위원회 면면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5년이 펼쳐질지 눈에 선하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안에서 누군가는 버티면서 싸워서 좀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리는 동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두려웠어요. 나중에 부안사태 같은 거 보면서, 그냥 있었으면 마음고생 많이 했을 것 같더군요. 전문가보다는 좋은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미셀 푸코나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았지요. 이론이라는 게 결국은 현장에서 나오는 거고, 좋은 이론을 만드는 사람이 좋은 학자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행복하지요.”
-환경생태 운동을 하시는 분도 많고 음식을 환경과 생태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분들도 많지만 정작 전체적인 어떤 조감도를 가지고 체계를 세워서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분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생님의 책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떤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 내용에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는데 간단하게 문제점이 무엇이고 무엇이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인지 말씀해주세요.
“마지막까지 고민한 건 회사들이나 제품의 실명을 밝힐까 말까하는 생각이었는데, 그냥 독자 여러분들이 행간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 뺐어요. 처음에는 C사, P사, J사, D사의 어떤 제품 이런 식으로 문제가 있는 걸 다 썼는데, 나중에 그걸 빼고 나니까 밋밋해져 버리더군요. 몸에 좋으냐 건강에 좋으냐를 떠나서 먹어서는 안 되는 걸 파는 게 너무 많아요. 장기적 효과로는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이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지금은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생산 및 공급 체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야말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냥 맡겨 놓고, 정부는 그냥 믿어주세요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일례로 90년대 중반에 폐기물 처리하는 토목공학 박사들 만나면 식사할 때 절대로 호박은 안 먹는 거예요. 원래 호박이 중금속 오염된 데서 잘 자라요. 흡수력이 높아서 그렇지요. 그래서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복원할 때 호박을 심거든요. 그럼 이 호박은 다 회수해서 폐기해야 하는데, 그걸 그냥 시중에 유통시켜 버렸어요. 지금은 괜찮으냐? 괜찮지 않고,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위험해진 상태예요.
어떤 음식이 위험한지 어느 회사의 음식이 위험한지 일일이 알려주고 싶었는데, 출간 과정에서 실명들은 다 뺐어요. 소송을 피하려다 보니, 책이 꼭 예언서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음식국부론 행간을 잘 읽어보면 어떤 회사의 어떤 음식이 위험한지 알 수는 있어요.”
-제가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는 그냥 말랑말랑한 요즘의 웰빙서류로 착각했었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이 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음식의 문제를 다룬 게 아닌가 여겨지더군요. 평소에 선생님이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궁금하고 어떤 문제의식으로 음식에 관해서 이런 책을 써내시게 됐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시장이 우리나라에서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상황 이예요. 모든 건 시장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기업에 맡기고, 그게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얘기들이 미국의 예를 들어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체계적인 학교급식 체계를 만든 게 바로 미국이지요. 1940년, 한창 전쟁 중에 미국이 대대적으로 학교급식 체계를 정비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려고 모병을 해보니까 전부 발육부진에 체격미달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1929년 세계를 휩쓴 대공황 시절에 이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거든요. 최소한 가난한 아이들이나 집에서 제대로 신경 쓸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된 먹을거리는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그 시장의 이념 이예요. ‘효율성’을 보완하는 ‘형평성’은 기본적인 보건과 교육에 해당돼요. 그리고 이건 미국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런데 이걸 개인이 알아서 해라? 그건 시장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녜요.
그냥 야만스러운 사회일 뿐이죠. 1인당 국민소득 만 불이면, 이제 이 정도 먹는 문제는 해결될 시기거든요. 음식 스캔들의 역사가 우리나라가 깊죠? 이건 하나하나 스캔들로 만들어서 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 이예요. 은행 몇 개 망하면 큰일 난다고 거의 백 조원 가까이 쏟아 부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친환경유기농으로 급식하는 데에 몇 백억도 아깝다고 하는 상황 이예요. 노령화된다고 난리치잖아요? 이런 작은 문제들이 모여서 그런 거시경제적인 크고 대처할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국가? 최소한 국민들이 편히 먹고 살라고 만들어낸 것이 근대국가 아닙니까? 지금의 우리나라 정부는 사회계약론의 기본 정신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이 진화를 해야 하는 거지요. 음식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너무 관대해요. 까다롭게 굴어야 합니다. 핸드폰 소비자는 우리나라가 가장 까다롭지요? 그래서 핸드폰 산업이 망했나요? 사진도 찍게 해 달라, MP3도 틀게 해 달라, 거기다가 컴퓨터 기능도 해야겠다……. 이래서 결국 세계 최고의 핸드폰을 만들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소비자들이 더 까다롭고, 도대체 어떤 걸 넣었고, 어디에서 만든 건지 알아야겠다고 할수록 우리나라 식품이 안전해지고, 튼튼해질 겁니다.”
- 현장에서 활동하시니까 음식과 관련해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고통 받는 분들을 겪어보셨을 듯합니다. 선생님이 음식 문제가 정말 심각하구나 하고 느끼셨던 대표적인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려주신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