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헝가리를 떠나고 싶니?

[부다페스트 빼고 헝가리 말하기-8]변화하는 헝가리 사회

등록 2005.09.17 10:57수정 2005.09.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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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캐나다 현지인 집에서 지낼 때, 매주 그 집을 청소해주러 오는 ‘클리닝 레이디(cleaning lady)'가 있었다. 클리닝 레이디는 청소용품들을 갖고 다니면서 전문적으로 청소를 해주고 돈을 받는 직업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내가 만난 클리닝 레이디는 헝가리에서 온 젊은 여성이었다. 헝가리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캐나다로 왔다는 그녀는 헝가리에서 교사로 살 때보다 캐나다에서 클리닝 레이디로 사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헝가리를 비롯해 동유럽에서 온 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헝가리를 떠나고 싶어 했던 그들

내 친구 리아만 하더라도 기회만 되면 헝가리를 떠나 캐나다나 스위스 같은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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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리아. ⓒ 김수진

좋은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리아는 헝가리 의회에서 일하고 싶어 했고, 실제로 인턴으로 잠시 일하기도 했으나 이후 그녀는 스위스로 떠났다. 그녀는 정치계에서 일하고 싶다던 꿈과는 달리 스위스에서 보조 간호사(일종의 간병인)로 일했다.

데띠 경우도 독어 교사 자격증을 따 둔 상태에서도 정말 헝가리에서 교사를 해야 할 지 많이 망설이고 있었다. 데띠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여름철이면 벌러톤 호수 근처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독일어를 잘하던 데띠는 학생 때, 독일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그곳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교사가 되어 받는 월급보다는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받는 월급이 더 낫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데띠의 친구 엘리카는 ‘오페어(Aupair-현지인 집에서 지내면서 아이들을 돌봐주거나 간단한 집안일을 도와주며 언어를 배우는 유학생)’ 프로그램으로 뉴욕에 다녀온 뒤 늘 뉴욕을 그리워하며 또다시 뉴욕으로 갔다가 헝가리로 돌아오곤 했다. 헝가리에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늘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헝가리로 오고 싶어 했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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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위해 홀로 루마니아에서 헝가리로 돈을 벌러 온 루마니아 아주머니. ⓒ 김수진

이렇게 헝가리 젊은 여성들이 헝가리를 떠나는 꿈을 꾸고 있던 순간, 반대로 헝가리로 오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데띠랑 리아랑 벌러톤 호수 노천카페를 갔다가 데띠가 아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외모가 좀 다르게 생긴 것 같아 물어봤더니 헝가리인이 아니라 루마니아인이라고 했다.

그 분은 데띠가 일하는 리조트에서 몇 년 전 청소부로 근무하셨다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루마니아에 있고 아주머니 혼자 헝가리에 와서 2-3년 동안 일을 하며 돈을 모아 루마니아로 돌아가셨는데, 최근 다시 돈을 벌러 헝가리로 왔다고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지만 헝가리에서 돈을 벌면 루마니아에서 버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아주머니 혼자 몇 년 만 고생하면 다른 가족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헝가리에는 루마니아를 비롯해 다른 가난한 동유럽 국가에서 돈을 벌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마치 중국 동포들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돈을 벌러 오는 것처럼….

지금 그들은…

헝가리를 떠나고 싶어 했던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리아는 지금 스위스에 있다. 그녀는 몇 개월 동안 스위스에서 간호 보조사로 일하는 동안, 헝가리인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됐다. 이후 그녀는 스위스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만료돼 다시 헝가리로 돌아왔고, 헝가리에서 독일에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며 지내다가 지금은 다시 잠시 동안 남자친구가 있는 스위스에 가 있다.

교사가 되는 걸 망설였던 데띠는 별로 다른 길이 없다며 지금은 독일어 선생님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다. 사실 그녀는 교사가 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거지 굳이 헝가리를 떠나서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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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독일어 선생님이 된 데띠와 커리어우먼이 된 엘리카. ⓒ 김수진

현재 헝가리의 모습에 대해 리아와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 헝가리 의회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그 꿈을 포기한 건가? 왜 헝가리 의회에서 일할 수 없는 건가?
"헝가리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일이 참 흥미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후 내가 의회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회 일자리 관련한 정보는 주로 내부에 국한되어 있어, 의회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면 정보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주로 정치인들의 자녀나 친척들이 의회에서 일할 기회를 쉽게 얻는다."

- 아직도 많은 헝가리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길 원하나?
"더 이상 아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언어도 배울 수 있어 오스트리아나 독일, 영국 등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변했다. 최근 외국 회사들이 비용과 임금이 저렴한 헝가리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만큼 헝가리에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기다보니 좋은 일자리를 구할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월급은 몇 년 전보다 높아진 반면, 상대적으로 아직 생활비는 적게 드는 편이라 외국보다는 헝가리에서 돈을 모으기가 더 쉽다. 그러니깐 이젠 더 이상 헝가리를 떠나 외국으로 가는 게 그다지 매력적인 일이 아니다.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 있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말이다."

- 뉴욕을 너무나 동경하던 엘리카는 뉴욕으로 다시 떠났나?
"아니다. 그녀는 지금 부다페스트에 있는 스페인계 회사에서 꽤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녀는 때를 잘 만났다. 2개 국어를 하고, 뉴욕과 독일에서 일한 경험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 아직도 많은 루마니아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헝가리로 오나?
"그렇다. 아직 루마니아 경제가 좋지 않고,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월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직도 루마니아나 다른 헝가리 주변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헝가리로 온다. 하지만 최근 들어 루마니아 역시 외국 회사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미 일부 큰 회사들이 헝가리에서 루마니아로 옮겨 갔다. 왜냐면, 헝가리보다는 루마니아가 더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에 있던 회사들이 비용이 적게 들고 임금이 싼 헝가리로 왔듯이 헝가리에 있던 회사들도 루마니아처럼 더 비용이 저렴한 곳을 찾아 떠나면 결국 헝가리도 나중에는 오스트리아나 독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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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젊은이들. ⓒ 김수진

10년 전 헝가리와 5년 전 헝가리, 1년 전 헝가리의 모습은 다르다. 헝가리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헝가리에도 변화와 함께 불안정한 요소들이 존재하겠지만 또한 헝가리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 헝가리를 떠나고 싶어 했던 그녀들이 지금 열심히 헝가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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