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나물이 뚝배기를 만났을 때

등록 2006.02.08 09:37수정 2006.02.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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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랜만에 나물을 넉넉히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물을 넉넉히 만들었습니다. ⓒ 임미옥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춥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봄이 한 발짝 다가오긴 했나 봅니다. 요즘 입덧하는 사람처럼 입맛이 뚝 떨어졌었습니다. 김장김치도 슬슬 질리기 시작하고 겨울야채는 하우스재배라 그런지 샐러드나 쌈으로 먹어도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겨우내 고기보다 야채가 더 비싸 조금씩 먹어서 그런가, 어째 비타민이 많이 부족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고기도 생선도 반갑지 않은 요즘, 그래서인지 입맛이 그 전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7일)은 들어오면서 콩나물, 고비, 시금치 등 나물거리를 사 가지고 와 조물조물 무치고 볶아 넉넉히 삼색 나물을 만들었습니다. 이곳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고사리보다 고비가 흔하거든요(우리나라처럼 고사리를 말려두고 쓰는 게 아니고 생 고사리만 쓰기 때문인지 가끔 슈퍼마켓 판매대에 고사리가 보여도 비싼 편입니다).

바닥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른 뚝배기에 밥을 넣은 뒤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솔솔 풍기며 만든 삼색 나물을 올리고 계란도 한 개 부쳐 얹고 고추장도 조금 넣었습니다. 고기구울 때 찍어먹는 양념간장도 조금 넣고요. 김도 한 조각 부서 넣었지요.

그것을 가스 불 위에 높고 뜨겁게 볶아내니 음식점에서 사먹는 돌솥비빔밥 그대로 입니다.

a 이렇게 뚝배기에 볶아 먹으면 돌솥 비빔밥이 되지요.

이렇게 뚝배기에 볶아 먹으면 돌솥 비빔밥이 되지요. ⓒ 임미옥

"이야~ 나물, 오랜만이네. 맛있다 맛있어."


아이들도 입맛이 도는 듯 잘 먹었습니다. 이곳 일본에서는 설날은 아무 의미가 없는 평일과 다름 없기도 하지만 모든 행사를 양력에 맞추어 사는 저희 가정에서 나물은 제사나 명절음식이라기보다 그냥 어쩌다 먹고 싶을 때 해먹는 음식일 뿐입니다.

야채섭취 부족이다 싶을 때 한 번씩 휘둘러 해먹는 이 삼색 나물을 팩에 넣어 이곳 일본인 이웃에게 주어도 참 좋아합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나무루'라고 해서 나물세트가 팔리고 있기도 합니다만 한국인이 조리한 것하고는 조금 다른 맛입니다. 달달하니 조미료 맛이 강하고 너무 푹 죽어 있는 나물무침이지요.


"고레와~ 오이시이! 카라다니 요사소우데스네~(이거 맛있네! 건강에 좋은 음식 같아요~)"

나물을 조금씩 덜어 담아 이웃에게 주었더니 아주 반색을 합니다. 이처럼 삼색나물은 일본인들에게 인기 많은 한국 음식 중 한가지입니다. 맵지도 않고 참기름 냄새가 고소해서 누구에게나 무난한 음식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닌 한국식 나물 몇 가지로 잃은 입맛을 찾은 오늘 저녁 우리집 식탁에선 고소한 참기름 냄새처럼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답니다.

이렇게 각각 다른 색깔의 나물과 밥이 어우러져 맛있는 비빔밥이 만들어지듯, 우리네 삶도 다른 이들과 어우러져 더욱 좋은 맛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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