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투표 경력 쓰게 만들면 어떨까

[5·31 그 후 ⑭] 대학생 좌담 - 지방선거 결과, 우린 할 말 많다

등록 2006.06.05 14:45수정 2006.06.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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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매번 선거 때마다 젊은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율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들의 참여 없이는 지방정치의 변화도 없을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첫 투표를 행사한 대학생, 선거마다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학생, 생일 때문에 만19세의 벽을 넘지 못한 대학생들은 아직 할 말이 많은가보다.

신하나(회계학·06학번), 이경옥(프랑스지역학·06학번), 윤예지(국어국문학·05학번), 정혜진(광고홍보학·04학번), 최인수(정치외교학·00학번)씨. 부산 경성대 재학생 5명이 이번 선거를 지켜보고 갖가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질문 ① 참여소감] "박근혜씨가 후보로 나왔나?"

- 직접 지방선거에 참여해보니 어떤 느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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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나 학생 ⓒ 김수원

경옥 "이제 막 유권자가 되어 치른 첫 선거라 무척 설렜다. 식구들이 함께 투표소에 갔는데 어느 당을 찍을 거냐고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분위기가 너무 한쪽으로 쏠려있던 터라 한나라당은 찍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내년 대선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야 하니 다른 당은 찍지 말라고 하시더라. 지방자치 일꾼을 뽑는 선거가 차기 정권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하나 "생일이 두 달 늦어 투표를 못 했다. 정말 아쉬웠다. 같은 대학생인데 누구는 참여할 수 있고 누구는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유권자 연령을 만18세까지 낮춰야 한다. 선관위가 예비유권자에게는 너무 관심이 없다는 기분도 들었다."

혜진 "이번 투표가 무척 복잡하다고 우려하던데 막상 해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 복잡한 절차가 귀찮아서 투표는 안하고 월드컵에만 관심 있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 투표소에서 정말 젊은 사람들 얼굴 보기 어려웠다."

예지 "한나라당 후보들은 너무 박근혜 대표를 '애용'하더라. 박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펼침막에 도배한 후보들이 많았다. '박 대표가 후보로 나오나' 싶을 정도였다."

인수 "열린우리당을 심판하려고 한나라당을 찍는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럼 다음 선거에는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할 차례인가?"

[질문 ② 결과 평가] "등록금 토론, 부모님들이 들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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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옥 학생 ⓒ 김수원

-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나?

경옥 "한나라당이 압승할 거라는 추측이 많았다. 언론이 오히려 압승을 부추긴 경향도 있다. 언론이 족집게도 아니고 설마 결과가 그 정도일까 의아했는데 나중에 황당했다. 우리나라에는 당이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인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정당에만 파묻혔으니 무소속으로 나온 사람만 바보가 된 꼴이다. 지방선거가 지역문제와 동떨어진 완전 중앙선거판이었다."

인수 "정말 비정상적인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결과다. 집권당 심판의 개념이었다면 대안적인 성격으로 표가 분산되어야 하는데 반사이익으로 한 당에 싹쓸이된 것은 정말 어이없다. 지방선거가 후보를 선택하는 자리지, 무슨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을 해코지하는 자리인가? 정말 이민 가고 싶을 정도로 암울하다."

혜진 "대학생들이 주최한 부산시장 후보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학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후보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질문도 했는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이야기가 더욱 설득력 있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 실제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부모님들이 참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들의 해법을 부모님이 직접 들었다면 한나라당만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수 "등록금 문제는 시장의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교육부가 맡고 있는 대학교육 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이 제시한 '등록금 50% 인하 공약'은 정말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예지 "시정을 감시해야 할 시의원들이 모두 같은 당이니 견제 역할을 하기는 글렀다. 구청도 마찬가지다. 극소수 타 정당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경쟁할 필요도 없으니 공약이행도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4년 뒤에 그 사람 또 나오면 이행했는지 안했는지 누가 꼼꼼히 따져서 찍겠나? 지방자치단체가 '탐관오리 양성소'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번에 도입한다는 주민소환제에 희망을 가질 수밖에."

하나 "주민소환제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옛날처럼 '암행어사 출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기발한 생각에 모두들 마패를 가진 것처럼 손뼉을 친다.)

[질문 ③ 투표참여 방안] "우린 투표권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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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학생 ⓒ 김수원

-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올릴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경옥 "수능 친 수험생들을 상대로 수험표 할인행사를 하듯이 업체들이 '투표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투표확인증을 끊어주는 건 어떨까?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참여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혜진 "투표소가 너무 동네 구석에 있는 곳도 있더라. 아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야외투표소를 설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눈에 띄는 이벤트도 벌인다면 무심했던 사람들도 발길을 돌릴 것이다."

하나 "투표시간도 좀 늘렸으면 좋겠다. 선거날 쉬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고 한다. 그날 일하는 사람들은 퇴근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적어도 저녁 9시까지는 늘려야 한다."

인수 "이력서에 그동안 투표를 얼마나 했는지 쓰게 만들자. 각 개인의 투표정보를 관리하는 곳도 필요하다. 개인정보문제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다른 정보는 다 쓰면서 투표는 왜 개인정보냐?"

혜진 "젊은 유권자들이 후보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선거운동은 후보자들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외치고 마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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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지 학생 ⓒ 김수원

예지 "방안은 아니지만 투표도 안하고 정치인 욕하는 사람이 있던데, 투표부터 하고 당당히 이야기하자. 유권자 노릇부터 해야 욕할 자격도 있는 것이다. 세금만 낸다고 다가 아니다."

인수 "그동안 우리에게 자신의 정치성향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만한 기회나 환경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자라오면서 투표권이 왜 소중한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선관위 홍보물의 일시적인 학습만으로는 정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인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과연 정치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투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정치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가 나이가 찼다고 선거권을 무책임하게 툭 던져준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자기 유권자가 되니 어떻게 할지 몰라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고 언론에 휘둘린 게 아닐까?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 '감성정치'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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