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과 허리에 대한 집착은 이런 기형적인 외모를 낳았다.
17∼18세기에 코르셋을 사용한 서유럽의 가는 허리유행 역시 일종의 남성중심 페티시즘으로 파악된다. 즉 당시에는 가는 허리가 대단한 유행이었는데 이 유행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좀 더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한 그 시대의 대세였다. 그 당시의 여성들은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매었고, 그 결과 15∼18인치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허리사이즈가 만들어지게 된다.
단순히 유행이 아니냐는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상류층으로 갈수록, 그리고 무도회장일수록 가는 허리가 선호되었다는 사실은 이 유행이 남성의 선호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게 한다(왜냐면 현대 조사에 의하면 페티시즘은 고학력, 유복한 가정으로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티시즘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냐로 한정함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마도 글의 첫머리에 든 엘비스 프레슬리의 예를 변태라고 비난하셨다면 혹시나 자신이 여성에게 가는허리와 날씬함을 과도하게 요구하지는 않나 생각해 보라.
페티시스트가 변태라면 50kg에 집착하는 당신 역시 그렇다
페티시즘이 허용되는 단계는 그 사회의 도덕적 개방성(도덕론자는 이를 성적 문란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알다시피 일본과 같은 성적 개방국가의 경우는 그 개방의 정도가 유교적 전통의식과 결합하는 바람에 지극히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다.
예를 들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고교생의 속옷을 페티시스트하기 위해서 캔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아직은 성적 표현에서 제한이 가해지는 국가에서는 페티시스트들이 변태와 같은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페티시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에 보면 주인공으로 나오는 형사가 특히 부츠를 신고서 성관계를 갖는 경우에 묘한 흥분감을 갖는 인물로 분한다.
또 50kg이라는 여성의 체중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마치 50kg가 넘는 여자들은 비정상이고 뭔가가 노력이 부족한 여성으로 비추어지는 예가 허다하다(실제로 우리나라 평균 여자 고교생의 신체 크기는 160cm에 50kg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170cm가 넘는 여성들도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기어코 체중을 50kg 아래로 줄이려고 숱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페티시즘이 비난받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페티시즘을 개인적인 문제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위에 든 전족과 가는 허리에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집단적인 페티시즘도 존재하는 것이다.
'집단'이라는 방화벽 내에서 개인적인 취향의 페티시즘을 공격한다는 것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에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