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티시즘'을 아시나요?

위선 속에 감춰진 페티시즘의 진실

등록 2006.08.22 11:54수정 2006.08.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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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페티시즘'이란 용어를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페티시즘이란 "일반적인 성적 흥분이 느껴지는 곳이나 물체 이외에서 성적 만족감이나 흥분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원래 페티시즘은 최초로 카를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최초로 사용한 용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상품노동의 생산물인 돈, 자본, 상품을 마치 주객이 전도되어 인간이 이를 숭배하게 된다는 뜻으로 페티시즘이라는 용어가 통용되었다.


이러한 최초의 의미는 이후 '물건에 대한 집착'이라는 의미로 의미가 변형되면서 성도착증증세 중 '물품 음란증'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한다.

흔히 장난스럽게 '변태'라고 불리는 성 도착 증세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성애와 피핑(관음증), 노출증(타인에게 자신의 성기를 강제로 보여주고자 싶은 욕구), 시간(시체에 대한 이상적 성도착증세), 사디즘(타인 학대), 마조히즘(학대에 대한 즐김), 접촉 도착증(만진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도착증세), 그리고 페티시즘이 있다.

이중 페티시즘은 사실 그 도착 강도가 그나마 사회적 물의를 가장 적게 빚는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도착증세는 몰래카메라와 같은 대 사회적 피해를 줄 수 있지만, 페티시즘은 개인적 취향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성적 집착의 대상이 다른 도착증과는 달리 '무생물'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 역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말이 너무 어려웠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흰 팬티 페티시즘'이 있었다. 그의 아내였던 프리실라가 최근 <내셔널 이그재미너>지에 밝힌 사실이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히게 된 동기는 프리실라 자신이 흰 란제리 등을 입고 찍었던 사진 중 일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진이 나한테 있다면 다 태워 버렸을 것"이라는 프리실라는 특히 그 사진이 딸인 리사 마리에게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이다. 부부간 침실에서의 일이므로 딸에게는 더욱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프리실라는 "엘비스는 작고 하얀 팬티를 입은 여성을 좋아했다. 그런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다는 구체적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보면서 즐긴다"고 말했다.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그 같은 취향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침실에서 갖가지 특히 흰 란제리를 입고 사진을 찍어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



위와 같이 팬티와 같은 물체에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것도 일종의 페티시즘이다. 너무 특정한 사람의 예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첫 장면에도 역시 비슷한 광경이 등장한다. 형사가 검은 부츠를 신은 여자와의 성교를 상상하는 부분 역시 페티시즘의 일종으로 보아야 하겠다. 2004년 일어난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에서 피해자의 손가락에 매니큐어가 조잡하게 발라져 있었던 사실은 아마도 가해자가 페티시스트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페티시즘의 세 가지

페티시즘은 크게 '시각적 만족'과 '착용적 만족', 그리고 '청각적 만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각적 만족은 사실상 일반인들이 페티시즘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은 해당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스타킹 팬티와 같은 속옷 류가 차지하고 신체의 특정 부위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적인 만족과 시각적으로 즉각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구두나 정장에서 그러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성교 도중 남자가 여자에게 "오늘 밤은 이런 속옷을 입어봐"라고 속삭이는 장면이다. 물론 허구지만 그러한 장면이 대표적 페티시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빈도수는 남성에게서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는 남성의 성적 기관이 여성보다 시각과 후각에 더 민감하게 발달해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착용적 만족은 약간 민망하지만 자신이 이를 직접 착용해 보는 경우다. 설마 하겠지만 실제로 성적 개념이 명확히 잡히지 않은 10∼12세 사이의 남자아이에게서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어머니나 누나의 속옷을 직접 입음으로써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특이한 형태의 페티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각적 만족은 흔히 060으로 말해지는 음란 폰팅이나 랜덤 다이얼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즉 아무 전화번호를 누르고, 특히 어린 여자아이나 여성이 전화를 받으면 신체적 특징 또는 성기에 대한 말이나 음란한 말을 마구 떠드는 가끔 신문 토픽란에 실리던 기사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성 도착증세인 페티시즘은 변태적 성욕구의 변형인가?

이 질문에는 다소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역사적 사례에 있다. 중국의 송나라 때에는 전족이라는 전 여성에게 유행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은 4∼5세 때 여성의 발을 단단한 천으로 동여매어서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발가락은 5개가 붙은, 말하자면 기형적인 모양이 되었지만 그 크기에는 아주 작은 아기 발이 만들어지게 된다.

송나라에서는 이 발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정숙한' 여성으로 보았는데, 이는 문헌상의 기록일 뿐 현대의 어휘로 이를 대체하자면 섹시함을 의미한다. 즉 송나라 전체의 몇 억의 남성들이 작은 여성의 발에 일종의 페티시즘이 있었던 셈이 된다.

코르셋과 허리에 대한 집착은 이런 기형적인 외모를 낳았다.
코르셋과 허리에 대한 집착은 이런 기형적인 외모를 낳았다.
17∼18세기에 코르셋을 사용한 서유럽의 가는 허리유행 역시 일종의 남성중심 페티시즘으로 파악된다. 즉 당시에는 가는 허리가 대단한 유행이었는데 이 유행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좀 더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한 그 시대의 대세였다. 그 당시의 여성들은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매었고, 그 결과 15∼18인치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허리사이즈가 만들어지게 된다.

단순히 유행이 아니냐는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상류층으로 갈수록, 그리고 무도회장일수록 가는 허리가 선호되었다는 사실은 이 유행이 남성의 선호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게 한다(왜냐면 현대 조사에 의하면 페티시즘은 고학력, 유복한 가정으로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티시즘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냐로 한정함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마도 글의 첫머리에 든 엘비스 프레슬리의 예를 변태라고 비난하셨다면 혹시나 자신이 여성에게 가는허리와 날씬함을 과도하게 요구하지는 않나 생각해 보라.

페티시스트가 변태라면 50kg에 집착하는 당신 역시 그렇다

페티시즘이 허용되는 단계는 그 사회의 도덕적 개방성(도덕론자는 이를 성적 문란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알다시피 일본과 같은 성적 개방국가의 경우는 그 개방의 정도가 유교적 전통의식과 결합하는 바람에 지극히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다.

예를 들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고교생의 속옷을 페티시스트하기 위해서 캔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아직은 성적 표현에서 제한이 가해지는 국가에서는 페티시스트들이 변태와 같은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페티시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에 보면 주인공으로 나오는 형사가 특히 부츠를 신고서 성관계를 갖는 경우에 묘한 흥분감을 갖는 인물로 분한다.

또 50kg이라는 여성의 체중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마치 50kg가 넘는 여자들은 비정상이고 뭔가가 노력이 부족한 여성으로 비추어지는 예가 허다하다(실제로 우리나라 평균 여자 고교생의 신체 크기는 160cm에 50kg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170cm가 넘는 여성들도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기어코 체중을 50kg 아래로 줄이려고 숱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페티시즘이 비난받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페티시즘을 개인적인 문제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위에 든 전족과 가는 허리에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집단적인 페티시즘도 존재하는 것이다.

'집단'이라는 방화벽 내에서 개인적인 취향의 페티시즘을 공격한다는 것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에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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