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계속 일하면 안되나요?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논란 속 혼란만 가중

등록 2006.12.01 15:08수정 2006.12.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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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최모씨(67세)는 요즘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식사를 해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쉬는 날에도 좀처럼 잠을 잘 수 없다. 언제 경비직을 그만두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걱정에서다. 이유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제 적용 때문.

경비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시/단속직근로자(이하 감단직)에 대하여 최저임금제 적용을 시행하려는 움직임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감단직이라 함은 업무의 내용이 상시적이지 않고 근로시간 내내 지속적인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비교적 노동의 강도가 낮은 직종을 말한다. 대표적인 감단직은 아파트 경비원, 주차관리원, 아파트 시설(보일러기사 등등)관리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사실상 노동의 강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최저임금제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으며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해 감단직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해야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어 구체적인 논의 끝에 2007년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도 되어있다.

애초 이 법안은 최저임금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당수의 감단직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하고 근로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출발했다. 특히 아파트 경비원은 경우에 따라 현재 최저임금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 제도의 도입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올 해 들어 이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세부적인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은 아파트 경비원들이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경비원 임금은 통상 90만원 수준(외주 용역회사 기준)이고 지방의 경우는 이보다 다소 낮은 70~80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주용역이 아닌 자치관리의 경우는 서울/지방 모두 이보다 약10만원 정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급여도 낮다보니 자연히 근무자연령도 높아져서 평균60대 중후반의 노인층이 대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월급 작고 일이 힘들다보니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60대 이상밖에 없는 것이다. 말은 감단직이지만 노동의 강도는 '장난이 아닌'경우가 허다하다. 감단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온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데 막상 경비원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하고 임금을 계산해 보니 경비원 1인당 급여가 150만원 이상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드러나자 정부는 대책안으로 시행 첫 해는 최저임금의 70%를, 다음 해는 80%를 주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럴 경우 경비원의 월 급여는 약 100만원 수준.

이마저도 관리비 부담을 느낀 아파트측에서는 제일먼저 인원감축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아파트 측에서 경비비 부담을 덜기 위해 인원감축 및 경비시설의 현대화를 시작하면서 대부분 60세 이상인 고령의 경비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경비원의 숫자를 줄이지 않는 곳은 경비원에 대한 연령제한을 두어 40대후반~50대 중반으로 경비인력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

"월급이 낮을 때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60대를 채용했지만 월100만원을 준다고 하니 40대가 줄을 서더라"는 것이 아파트와 용역업체의 설명이다. 아파트 입주민 측에서도 이왕 관리비를 많이 부담할 것이라면 보다 활동성이 있는 젊은 인력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벌써부터 전국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실시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보다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큰 지방의 경우는 사태가 더 심각하다.

부산지역의 A 아파트는 80여 명의 경비원을 20여명 안팎으로 줄이기로 하고 최근 경비원 60여 명을 해고했다. B아파트의 경우 40명의 경비원을 15명으로 줄이면서 그나마 연령제한을 60세 미만으로 두는 바람에 기존에 있던 경비원 전원이 내년 1월1일부터 실직자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광주,강원도 어느 곳 할 것 없이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파트 경비원들은 일손이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런 일들이 결코 남의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있지 않다.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60대 이상의 고령경비원들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생계형 근무자이기 때문이다. 즉, 경비원 일을 해서 다만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60세 이상의 경우는 공공근로사업도 참여할 수 없고(현재 공공근로 참여자의 연령 상한선은 60세이다) 그나마도 마땅히 일할 곳이 없다.

기껏해야 길거리의 파지나 고철을 주워다 파는게 고작이지만, 물량이 많은 아파트단지의 경우는 고철과 파지수거를 전문 대행업체가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나마 그렇게 노동해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많아봐야 하루 1만원 수준.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는'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다수 고령 경비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65세 미만의 경우는 실업급여를 탈 수 있지만 그것도 최대 6개월간만 받을 수 있는 것이어서 장기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불안한 것은 경비용역업체들도 마찬가지. 상당수가 영세하게 운영되는 용역업체들의 경우는 이 번 제도 시행이 영업정지처분이나 다름없이 여겨지고 있다. 아파트 측에서 경비원을 대대적으로 줄이거나 기계경비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50인 미만의 경비원을 파견하고 있는 영세 경비업체는 줄도산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되면 저희들 더 이상 사업 못하는 겁니다. 그건 사업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지금도 경쟁이 심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어렵게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30% 감액을 한다고 해도 무립니다. 40~50%정도는 돼야 지금 현재 급여 수준이랑 비슷할 겁니다."(출처 -한국노동연구원 2006년 5월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률 연구 중)


"월급이 올라가면 혹시 일자리 잃게 되는 건 아닌가요?"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2006년 5월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률 연구 중)


"우리가 언제 월급 올려달라고 했나요? 그냥 일이나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각 아파트 현장에서 만난 경비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단직 근로자의 권익신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출발한 이 제도가 오히려 현재 감단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독약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단체에서는 제도의 시행을 연기하거나 감액률을 현재의 70%가 아닌 50%부터 시작해 줄 것을 요청해 놓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전체 경비원 중 약 30~50% 정도의 감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그나마도 연령제한 등으로 해서 고령의 경비원들은 일할 기회가 심각한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행 아파트 경비체계에 대한 수정은 필요하다.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경비원들의 급여가 수년간 평균물가상승률을 따라 인상되기는 커녕 수년째 그대로인 곳도 있을 정도다. 감단직이라고는 하지만 주간에는 택배보관, 아파트 주변 청소, 각종 잡일에 인력동원, 입주민과의 마찰, 야간에는 정기적인 순찰, 취객 상대, 극심한 피로 등 노동 강도는 높지만 근로여건이나 보수는 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점 등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힌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접근방법은 상당한 문제가 있어보인다. 애초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감단직에 대한 최저임금적용이 현재계획대로 30%감액을 받아 시행되더라도 세대당 부담액이 520원 수준으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관련당사자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거나 "적어도 현재 경비비 부담액의 50% 이상은 인상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인상은 필요하되, 지금처럼 최저임금의 70% 수준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50% 수준에서 점진적인 상승을 유도하여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고령 경비원들에게도 나름대로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동시에,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령경비원들의 실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특히, 이들 경비직에 종사하는 고령근무자들의 상당수가 생계형임을 감안한다면, 일회적인 지원책 보다 지속적으로 근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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