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녀 "'박빠'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색남 "이 여자와 다시 오고 싶다"

[어색한 남녀의 제주도 자전거 여행⑧] 여행의 끝, 관계의 역전

등록 2006.12.07 09:46수정 2006.12.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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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해안도로에 선 박상규.
애월 해안도로에 선 박상규.김남희
[이 여자 김남희] "나는 '박빠'가 될지도 모른다"

뿌듯하다. 유전자 탓을 하며(처녀시절 자전거를 타다가 개천으로 추락해 이마에 6바늘을 꿰맨 사고를 마지막으로 나의 엄마는 자전거와 결연하게 이별했다.) 자전거와 소원하게만 지내던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을, 그것도 비바람 부는 겨울에, 제주의 일주도로를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자전거타기에서도 남과 나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는 그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할 뿐이다. 자전거 타는 일에 있어서 나는 어제의 나에 비해 진보했고, 그 진보의 폭은 경이롭기만 하다.


@BRI@첫날은 거의 포기할 뻔했다. 오른다리를 들어 반대편 페달 쪽으로 올려놓는 일의 어려움은 마지막날까지도 한결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면 바람은 언제나 맞바람 같았고, 끝나지 않는 오르막에 비해 내리막은 늘 턱 없이 짧았다.

220km를 달리는 동안 겨우(!) 세 번 넘어졌고, 두 쌍의 라이더들을 만났다. 일주일간 식당에서 사먹은 밥은 네 끼뿐이었고, 몸무게는 오히려 2킬로그램쯤 늘어났다. 그 사이 나는 희미하게나마 기어의 원리를 이해했고, 라이더들의 공포와 해방감을 살짝 맛봤다. 배낭 속에 넣어간 책은 한 줄도 못 읽었다.

그리고 또 뭐가 남았을까? 몸을 쓰는 일의 고단한 행복을 체험했고,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남았다.

그렇다고 해도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발칙한 꿈은 꾸지 않을 것 같다. 통장의 잔액을 탈탈 털어 미니벨로를 사겠다고 덤벼드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자출사(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에 가입하겠다는 결의를 잠시 품기도 했지만, 출근할 곳이 없다는 현실적 장애로 곧 꿈을 접었다.

나는 다시 시속 4km의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땅에 두 발을 딛고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내가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돌리고 있는 한 세계와 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나는 그저 세계를 스쳐 지나갈 뿐,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뜨겁게 조우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저 바람을 즐기고, 자동차보다 느린 속도로 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땅에 대한 내 몸의 예민한 반응을 느낄 뿐이다. 자전거 위에서 밀도 깊은 만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간에. 자전거 위에 앉은 나는 관찰자일 뿐,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그래도 내년 가을, 다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제주의 숲을 돌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묻는다면, 바람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머리카락을 날리고, 손가락을 얼리고, 자전거의 바퀴를 밀어내는 제주의 바람. 그 안에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육지것'이 어찌 제주 바람의 그물코를 잡아낼 수 있을까.

발레리라는 조금 이상한 이름의 시인이 말했다. '바람이 분다. 다시 살아봐야겠다'고. 제주의 바람은 무거운 일상의 그림자를 지워버리고, 길 위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재를 이전시킨다. 그리고 잠시 맛본 그 체험으로 다시 돌아온 일상의 위대함을 긍정하게 만든다.


이 남자가 내게 남긴 것

다시 제주에 돌아오는 날, 그때도 이 남자가 동행해 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남자를 통해 내가 배운 건 아픈 현실마저 기꺼이 끌어안는 긍정의 힘이니까. 나는 조금씩 세상을 가볍게 건너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선은 글쓰기가 가벼워졌다. 서울로 돌아가면, 어쩌면 나는 '박빠'가 될 지도 모르겠다.

<어색남에 대한 다섯 자 질문>

1. 미웠던 순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하면 거짓으로 느껴질까. 진짜 단 한 번도 미운 순간은 없었다. 매사에 양보하고, 배려하고, 낙관적이기만 한, 게다가 나름의 유머감각까지 갖춘 이 남자를 어찌 미워하겠는가!

2. 당부 한 마디!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 낙관적 태도와 성실함으로 세상의 모든 세파를 씩씩하게 헤쳐 가며 살아가기를

3. 고마웠던 일?
나 때문에 한 번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언제나 시속 8킬로미터로 내 뒤에서 달려야만 했던 이 남자. 또 나조차 믿지 못했던 나를 믿어주고, 끝까지 격려해준 그 믿음

4. 여행의 유산?
긍정의 힘. 내 몸에 대한 긍정, 자전거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긍정

제주도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제주도 테디베어 박물관에서.김남희
[이 남자 박상규] "이 여자와 다시 오고 싶다"

예상대로였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다시 모슬포에 도착했을 때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나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심정적으로 아늑한 편안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 느낌마저도 220km 제주 일주를 마친 결과인지 확실하지 않다.

제주에서의 7박 8일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 즐거웠기에 잡고 싶었던 순간이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기에 마냥 머물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꼭 들르자고 다짐했던 곳이 있었다. 김영갑 갤러리, 비자림, 용눈이오름, 비양도. 이중 비양도의 공기를 마셔보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한림항에서 보이는 작은 비양도를 바라보며 나중을 약속했다. 제주의 바람에 몸을 맡긴 파도가 비양도를 지우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약속은 머지않아 실행될 거라 믿는다.

7박 8일은 제주의 아름다움과 상처에 대해, 묵직한 바람에 관해, 그리고 제주 해녀의 물질이 눈물겹게 보였던 이유에 대해 말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게다가 난 제주의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내게 왜 그토록 부드러운 고봉밥을 푹푹 퍼 주었는지 묻지도 못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도 난 다시 제주에 와야만 한다.

제주도 여행으로 '자전거 혁명'을 꿈꾸다

"삶의 질이란 둑방에서 낚시하는 겁니다. 호화보트를 타고 알래스카로 원정낚시 가는 게 아닙니다. 삶의 질이란 우리의 아들딸과 손자들이 조그만 공을 갖고 마당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겁니다. 메이저리그 야구경기를 구단주 특석에서 보는 게 아닙니다. 삶의 질은 존재하는 것이며 행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체로키족의 수장의 국정연설을 기억한다. 자전거를 타고 220km를 달리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를 가진 내가 걷기 시작하고, 아파트 베란다에 처박힌 자전거를 꺼내 달리기 시작할 때 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또 나는 믿는다. 도시의 모든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겨나고, 자동차 대리점이나 카센터보다 자전거포가 더 많아지고,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일이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상. 그 일상의 혁명은 나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 김남희
그리고 다시 용눈이오름에 올라야 하고 자동차 보다 바람이 더 자유롭게 오고가던 중산간도로에 서야만 한다.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 애월 해안도로에도 다시 서고 싶다. 그곳에서 내가 거쳐 온 바다를 돌아보며 지나간 시간을 곱씹고 싶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허'가 새겨진 번호판을 단 차를 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차에 몸을 실었다면 제주를 깎아내고 다듬은 바람 대신 히터의 열기만을 느꼈을 것이다. 내 근육과 뼈가 만들어 내는 힘으로 달리는 자전거에 몸을 실었기에, 제주를 향한 '육지 것'의 작은 애정은 피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

몸의 기억은 머리의 기억보다 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이 추억하는 과거는 대개 머리가 간직하는 그것보다 절실하거나 애절하다. 내가 몸이 기억하는 과거를 사랑하고, 머리보다 몸이 정직한 사람을 신뢰하는 건 그 때문이다. 몸과 몸이 부대꼈을 때 비로소 진실한 관계가 시작된다. 내 몸이 제주도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훗날 다시 제주도를 찾는 다면 어느 해안가에 오래도록 앉아 묵직한 바람을 맞으며 해녀의 물질을 바라볼 작정이다. 파도에 맞서지 않는 그들의 물질에서 용눈이오름은 왜 그토록 부드러운지, 바람이 된 김영갑은 왜 제주도에 영혼을 묻었는지, 그리고 나는 왜 그 모든 것 앞에서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 지는지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7박 8일 동안 함께 제주도 바람을 맞았던 이 여자 김남희가 그 때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제주도는 내게 다시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오고 싶은 사람을 남겼다.

우리의 여행은 끝났다. 우리는 다시 제주도에 올 수 있을까?
우리의 여행은 끝났다. 우리는 다시 제주도에 올 수 있을까?김남희

이 여자가 내게 남긴 것

이 여자 김남희, 제주도처럼 한 가지 다짐을 내게 남겼다.

지난 10월 10일. 김남희와 서울 삼청동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때 나는 김남희에게 김치만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서 김치만두 100개를 만들었다. 엄마와 누나가 먼저 맛을 봤다. 엄마와 누나는 말했다.

"상규야, 맛이 불쾌하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불쾌하다니. 그런 김치만두를 김남희에게 줄 수 없었다. 물론 그 만두를 그냥 줬어도 김남희는 내 처지를 고려해 "정말 맛있다"는 거짓말을 연발하며, 진짜 맛있는 척 먹었을 것이다. 그녀의 연기가 보기 싫어 김치만두는 없던 것이 됐다.

여행을 끝마칠 즈음 다시 김치만두를 만들고 싶어졌다. 7박 8일 동안 내 썰렁한 농담에 호탕하게 웃어주고, 따뜻하게 나를 안아준 그녀에게 나는 꼭 김치만두를 만들어 줄 생각이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김남희가 다시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색녀에 대한 다섯 자 질문>

1. 미웠던 순간?
여행 첫날, 김남희는 많이 힘들어했다. 민박집에서도 거의 끙끙 앓다시피 했다. 이 여자의 어깨와 등을, 그리고 다리와 발을 마사지 해줬다. 내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마사지를 끝마칠 즈음 김남희가 짧게 말했다. "너처럼 원칙 없는 마사지는 처음이다." 이 순간 조금 얄미웠다. (그녀는 태국에서 마사지 자격증을 딴 이 분야 전문가였다.)

2. 당부 한 마디!
계속 그렇게 환하게 웃길. 그리고 언제 어느 길을 걷더라도 지금처럼 동행자들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3. 고마웠던 일?
상대방 어색하지 않게 먼저 자신의 속옷을 빨래 건조대에 넌 센스! 썰렁한 농담에도 폭소를 터뜨려 주는 여유. 전복죽을 덜어주는 넉넉함. 낯선 남자를 믿어준 태도.

4. 미안했던 일?
220km를 달리는 동안 대부분 김남희가 앞에 있었다. 그러나 약 20km 정도는 내가 앞에서 달렸다. 그 20km가 참 미안하다. 그 때도 그녀의 뒤에 있어야 했는데.

5. 여행의 유산?
이 여자 김남희와 더 친해졌다는 것. 그래서 이젠 어색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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