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일본 침공,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서평] 무라카미 류 <반도에서 나가라>

등록 2007.02.01 20:13수정 2007.02.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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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표지 ⓒ 스튜디오 본프리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류, 그가 최근에 내놓았던 작품 <반도에서 나가라>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반도가 바로 우리의 터전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누구보고 나가라구?

간략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머지않은 미래, 일본은 경기침체로 인해 예금동결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쓰게 되고, 거리는 부랑자들로 넘쳐난다. 국제 주도권을 어느 정도 상실한 미국은 이용가치 없는 일본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호전되고 바야흐로 한민족은 통일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러나 통일을 앞에 둔 북한 정부의 고민이 한가지 있었으니, 바로 통일 이후에 한반도에 상주하게 될 미군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라는 것과 당내 과격파 장군들.

그래서 생각해 낸 계획이 바로 '반도에서 나가라' 작전. 먼저 일단의 북한군이 후쿠오카에서 인질을 잡고, 자칭 북한에 대한 '반란군'이라고 선언한다. 인질이 잡힌 동안 수송기로 500여 명의 추가 병력이 도착하여 후쿠오카를 통제하며, 이후 대량 선박 이동으로 12만의 군대가 후쿠오카에 진군, 후쿠오카를 반란군이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로 만든다.

미국과 중국의 경계를 한반도가 아닌 큐슈로 바꾸려는 원대한 계획인 것이다. 이런 흐름을 보면 '반도에서 나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이런 반미 의식은 철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500명의 추가 병력 이동까지 무난하게 전개된다. 막강한 자위대가 있으면서도 전전긍긍 제자리만 지키는 일본정부의 대응으로, 후쿠오카 시민들마저 겉으로 보기에 일본 정부보다는 반란군을 친밀하게 여기며 복종하게 된다. 이에 작전 성공은 목전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여기에 대항하는 세력이 있으니 바로 부랑자 집단이다. 각기 끔찍이도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일군의 부랑자들이 별다른 목적의식은 없지만 북한 반란군, 즉 고려원정군에 대항하고 나서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BRI@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 이 책은 무라카미 류가 10년을 넘게 몰두한 작품이라고 한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한 핏줄인 북한군이 후쿠오카를 점령하고, 이에 꼼짝도 못하는 일본 정부를 볼 때 내심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설정으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썩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전투의식이 약화한 일본인들을 꼬집는다. 처음 9명이 후쿠오카 돔의 인질을 사로잡았을 때, 소수의 피해로 더 큰 피해를 막지 못한 일본 정부의 무능함. 단지 500명에 의해 제압되어 순순히 서비스와 복종을 제공하는 일본 시민의 의식. 직접적은 아니지만 작가는 이런 일본에 심한 불만을 나타낸다.

반면에 북한군을 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마치 소림승처럼 모래통으로 손끝을 단련하여 그 손끝으로 연약한 육체를 찔러 버릴 수 있고, 완벽한 복종과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로 구성된 완전한 전쟁집단이다.

작가의 처음 시각은 이런 전쟁에 적합한 집단에 대한 동경과 현재 그렇지 못한 일본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의 목적은 다름 아닌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강한 일본은 어디 갔느냐?

그래서 일본의 히어로는?

이쯤에서 작가의 딜레마가 엿보인다. 일본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설정은 그렇게 해 놓았지만, 일본정부도 무능하고, 일본인도 무능하다면, 과연 누가 고려원정군을 처치해줄 것인가? 그렇다고 경각심을 주자고 써 놓은 책을 북한의 후쿠오카 점령으로 끝내 버리고 말 것인가?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경제폭락으로 인해 발생한 부랑자 집단이다. 이 집단에는 무기 전문가, 독약 전문가, 경제 전문가, 살인 전문가 등 마치 특수부대처럼 모든 인원이 갖추어져 있다.

독충을 키우는 취미를 가진 소년, 12세 때 일본도로 사람을 살해한 소년, 외국인 노동자를 취미처럼 죽이던 아버지를 닮은 소년, 고성능 폭약 전문가, 사제총으로 사람을 살해하고 부랑자 집단에 흘러들어온 소년, 13세 때 같은 학교 여학생을 토막살인한 소년, 무장 게릴라 집단을 떠돌다 체력 미달로 귀국한 중년 남, 그리고 이들의 지도자 이시하라.

일본을 구할 집단이 상상도 못할 엽기적인 반사회적인 행위를 일삼는 패륜아들이라니…. 딜레마에 몰린 작가가 생각해 낸 것치고는 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잠시 드는 생각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SM의 대가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 <교코> 등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느 작품 후기에 "SM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무라카미 류"라고 한 것처럼 그는 SM과 꽤 친한 사람이다. 거기다 그는 밀리터리 마니아이기도 하다.

열강에 점령된 일본열도에서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바이러스 전쟁>에 등장하는 지하 일본군에 대해 동경과 애정 어린 시각을 보여주었던 무라카미 류이다. 그리고 <바이러스 전쟁>에 등장하는 지하 일본군과 <반도에서 나가라>에 등장하는 북한군은 너무도 닮아있다.

그렇다면 이번 <반도에서 나가라>는 밀러터리 매니아의 SM 근성이 약간 삐뚤어진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영웅적인(?) 부랑자 집단이 아닐까.

여전히 일본은 강하다

하지만 그의 북한군에 대한 시각이 과연 <바이러스 전쟁>에서의 지하 일본군에 대한 시각과 같을까? 그렇지 않다.

총 한 번 쏴본 적이 없어 실수로 동료를 죽이는 부랑자들이, 앞부분에서 그토록 정밀한 전쟁기계로 묘사되던 북한군과 대등하게, 아니 더 우세하게 전투를 치러낸다. 경비도 철저하지 못했던 고려 원정군은 말 그대로 제대로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천사의 날개' 아래 괴멸되고 만다.

"언젠가는 틀림없이 고려원정군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과 중국을 끌어들여 규슈는 전쟁터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부랑자 집단이 해결하는 것이다.

"자위대 호위함과 전투기의 장비는 세계에서 손꼽을 수준으로 난민선 같은 북조선 배는 일본이 보유한 이지스함 한 척만 있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침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일본이 왜 이렇고 있는 것인가? 왜 일반인도 무관심하고 정부도 대응하지 않는가? 이런 작가의 메시지가 곳곳에서 들려 오는 듯한 것은 너무 삐딱하게 읽었음일까?

'일본 순시선에 비하면 난민선과 같은 400대에 실려 내려오는 12만의 병력'은 말 그대로 난민이다. 항상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 발생할 난민을 걱정하는 것이 일본 아니었던가. 수년 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의 역사적인 배경에도 한반도 전쟁과 이후 일본으로 유입된 난민이 상정되어 있다. 그리고 무라카미 류의 시선도 북한은 언젠가 난민을 대량 발생시킬 경제적 기생충으로 보는 것일까?

그들의 역사 인식은?

또 하나 흥미로운 인물이 바로 세자키이다. 고려 원정군의 처형을 막으려 열정적으로 달려가던 노의사는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 소년병으로 참전했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태연하게 소년병 시절 군의관이 올바르게 자위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실제로 군의관은 올바르게 정신대 여성을 대하는 법을 가르쳤을 법한데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당신네 나라에 대해 나쁜 짓만 한 것 아니지만 좋은 일만 한 것도 아냐. 도로나 댐이나 철도나 공장을 짓기도 했고 관개 공사나 간척도 했지만 못된 짓도 많이 했지"

이 문구는 국내의 식민지 근대설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식민지 근대설의 당위성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위의 문구는 이렇게 쓰여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좋은 일도 했(을지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이러한 저러한 그리고 또 이러한 못된 짓도 많이 했지'라고.

결국 세자키는 자신은 극악무도했기보다는 무지했다고 자신을 평한다. 15세의 소년병이 무엇을 알았겠느냐 하고 공감할 수도 있지만, 극악무도한 행위를 무지로 덮기에는 역사의 간격이 너무나 크다. 이런 세아키를 고려 원정군의 김향목이 자상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역사 인식이 심히 의심스럽기도 하며, 결국 타민족이라는 입장 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마저 느낀다.

또 한가지, 비록 작가는 고려원정군에게 복종하는 일본인들에게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저 복종하는 일본인들이야말로 더욱 무서운 존재이다. 상위 권력에 자발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시키는 데로 처한 상황에 따라 묵묵히 순종하는 일본인. 또 한 번 강해진 일본이 다가올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의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묵묵히 복종하는 바로 그 일본인들일 것이다.

과연 극우소설인가?

이런 몇 군데의 맥락을 확대 해석해 볼 때, 그리고 두 권으로 구성된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신랄해지는 작가의 북한군에 대한 시각을 볼 때, 이 책의 진의는 결국 '강한 일본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극우'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허나 작가는 작품 후기에서 진정한 동기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변화하든 간에, 정부나 국민에게 있어서' 타인에 대해 '신중하고 끈기 있는 교섭·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 되리라는 예감'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런 맥락을 받아들이고 볼 때, 이 책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생각으로 상대를 바라볼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고민으로 충실한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반도에서 나가라>는 한민족과 일본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배제한다면, 한 편의 박진감 넘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단순히 작가의 동기에 무턱대고 동감하기에는 어려운 것도 사실인 소설임에도 틀림없다.

무라카미 류 본인의 의지로 이 작품은 국내의 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영화로 거듭나는 이 작품이 어떤 시각과 관점에서 만들어져,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게 될지 기대된다. 그리고 한민족과 일본민족이 이 작품에 기반한 영화를 각기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기대된다.

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스튜디오본프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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