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노후가 멍들어가고 있다

거대 국민연금기금은 어디로

등록 2007.05.31 18:39수정 2007.05.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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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는 별난 일이 벌어졌다. 국민연금 개혁법안과 기초노령연금법이 동시에 상정되었는데 본 법인 국민연금법은 부결되고 보충적 법안인 기초노령연금법은 통과된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간주하고 끝내버릴 일이 아닌 매우 슬픈 현실로 보인다.

우리 국민의 유일한 노후소득보장책, 국민연금

1973년 개발시대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되었으나 제 1, 2차 오일파동이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무기 연기되었다가 15년이 지난 1988년 ‘국민연금법’으로 개칭하여 1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1999년 4월까지 11년에 걸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하여 온 국민연금법이 우리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중핵이다. 그 전부터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교직원의 경우 별도로 연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기에 특수직역연금이란 별도 영역으로 분류된다.

제도의 주목적은 고령화 사회의 노후소득보장이고 그 외 불가측의 위험성이 많은 산업사회에 필요한 장애ㆍ유족연금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있다. 제도의 확대과정에서 숱한 고비가 많았음을 기억한다. 특히 1999년 전 국민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할 당시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후 지금까지도 가입이나 납부거부, 제도폐지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미 평생연금 수급자가 200만 명을 넘어서고 기금도 200조원을 돌파하여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국면이다. 사업장종사자의 경우 본의든 아니든 간에 1988년도부터 가입한 사람은 이미 20년의 가입기간을 축적하고 있어 주요한 노후소득원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농어업, 일용, 자영업종사자의 경우 신고소득수준도 낮고 가입과 납부예외 기간이 반복되며 소득활동 중에도 체납기간이 잦아 연금이 소액에 불과하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인구구조의 변화나 생활양식의 변모에 따라 과거의 가족부양 방식은 기대할 수 없고 노인들의 주요 소득원이 연금이 되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국민연금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보장제의 뿌리를 흔드는 하나의 사건

연금제도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말하자면 가입은 되었으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제도의 국외자(Outsider) 문제인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금번 통과된 기초노령연금법은 수급대상을 국민연금 가입과 관계없이 65세 이상 노령층 중 자산 정도에 따라 하위 60%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연금액은 국민연금지급액 산식의 전체가입자 평균소득월액(A)의 5%로 하고 지급대상의 선정, 관리 등 업무수행은 자치단체에서 취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많다.


첫째, 기초노령연금이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이나 경로연금의 다른 명칭인지, 국민연금의 하위 1층 보장인지 성격이 불분명하다. 법 통과 이후 개정 논의과정을 보면 공적 부조 성격에서 1층 보장의 성격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급대상을 60%에서 70%로 확대하고 지급액을 2008년 A값의 5%에서 2028년 10%까지 상향조정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공적 부조 성격이라면 대상이나 금액을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고 기초보장이라면 점차 범위를 확대하고 금액도 상향시켜 국민연금과 연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맞다.

둘째, 기초노령연금이 기존의 국민연금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담 없이 최소한의 보장을 받을 것이냐, 20년 내외의 장기간 보험료를 부담하고 좀 더 나은 보장을 받을 것이냐는 문제를 국민들은 고민할 것이고 우선적으로 편한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거부나 납부거부가 더욱 광범위해지면 국민연금은 사업장종사자 중심으로만 구성되는 기존의 직역연금과 유사한 형태로 변질될 것이다. 반대로 기초연금 수급자는 대폭 늘어나 재정부담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이에 따라 세금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셋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초노령연금이 국민연금의 하위 1층 보장 성격으로 변질된다면 업무 관할을 당연히 국민연금공단으로 일원화해야 함에도 자치단체로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소득보장 관할 이원화에 따른 민원불편은 제쳐두고라도 수급대상자 선정기준을 적용함에 있어 자치단체는 지역연고를 통한 다양한 형태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에 따라 노인층의 불신과 갈등은 지역사회의 화합을 해칠 우려가 크다. 현행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보호자 선정의 부적절한 사례가 자주 드러나고 있음이 그 한 예가 된다. 또한 재정자립도에 따라 자치단체별로 차별적 기준이 적용될 수 있어 예기치 못한 문제들, 즉 불필요한 노인 인구 이동이나 국고보조의 불평등성 문제를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다.

재정자립도의 차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극과 극이다. 다음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현황(단위 : %)이다.

서울특별시 95.0. 광역시 중 최고인 대구 72.6, 최저인 광주 54.6, 광역시 평균 67.5. 도 중 최고인 경기 70.3, 최저 전남 11.9, 도 평균 36.6. 시 중 최고인 성남 70.2, 최저인 남원 12.8, 시 평균 40.6. 군 중 최고인 울주 51.9, 최저인 무안 6.9, 군 평균 16.5. 자치구 중 최고인 서울 서초 92.6, 최저인 부산 서구 17.7, 평균 44.3.

연금공단과 거대 기금은 어디로

기초노령연금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하고 소득보장 업무수행주체를 연금공단과 자치단체로 양분하여 나타날 수 있는 효과는 우선 소득보장체계의 혼란으로 인한 연금공단의 신뢰 약화다. 부담 없이도 기초적인 보장은 받을 수 있는데, 생애 평균소득대체율이 기존 60%에서 1/3로 격감하는 40% 수준의 연금을 받기 위해 10년 이상 보험료를 부담하라고 설득할 명분이 약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특히 저소득층 이탈은 심대할 것이다. 더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통합징수공단 설립이 가시화하면 연금공단은 형해화(形骸化)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연금제도에 대한 안티세력의 주장인데 공교롭게도 정부가 바라는 결과와 일치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현재 200조원에 달하는 연금기금의 관리주체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정부는 진작부터 특수법인을 설립해 연금기금의 독립성과 효율적 운용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연금공단과 분리를 시도하고 있는데 신뢰가 떨어지고 역량도 부족한 연금공단이라면 그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며 어느 기관도 나서서 반대논리를 펴지 않을 것이다. 거대 기금을 분리하고 현행처럼 시민ㆍ사회단체를 참여시켜 위원회를 운용하는 방식을 취하겠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민간기구가 감시ㆍ통제력을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집권정부는 현재보다 훨씬 더 적법하고 직접적으로 기금운용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단기적인 성과를 가시화하는 데 골몰하게 될 것이 뻔하다.

혼돈으로 몰아넣지 마라

기초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차이를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합징수공단이 이미 20년 전에 제기된 사회보험청의 변종임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며, 효율과 편의를 추구한다는 목적과 달리 또 다른 공룡조직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일한 소득보장제를 각기 다른 기관으로 관할을 쪼개어 제도의 한 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불합리와, 재정자립도가 높은 몇몇 자치단체 외에는 기초연금이든 기초노령연금이든 전액 국고로 지출될 수밖에 없어 고스란히 추가적인 세금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조직 이기주의의 전성시대다. 민간이든 공조직이든 조직의 생존을 두고 벌이는 이면의 합종연횡은 말할 수 없이 치열하다. 이것을 조정하고 정돈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정부기관도 같이 덤벼들어 이전투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아닐 수 없다. 백년대계를 지향해야하는 교육이나 노후 소득 보장 정책은 당이나 정부가 협상으로 밀고 당기고 할 사안이 아니다. 현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로 면면히 이어져 국가발전 방향과 우리의 생활양식을 규정지을 중대한 사안들이기에 전문가들의 연구검토와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혼돈으로 몰아넣어 집권 후반기에 ‘한 건’ 하자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덧붙이는 글 | 4월 25일 통과된 기초노령연금법은 이후 개정 논란이 진행 중인데 기초연금으로 변질되고 있고 그것이 국민연금제도에 미치는 영향, 더 나아가 200조원 기금의 향방이 문제시 될 소지가 많아서 썼습니다.

김용태 기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4월 25일 통과된 기초노령연금법은 이후 개정 논란이 진행 중인데 기초연금으로 변질되고 있고 그것이 국민연금제도에 미치는 영향, 더 나아가 200조원 기금의 향방이 문제시 될 소지가 많아서 썼습니다.

김용태 기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초노령연금 #기초연금 #국민연금 #연금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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