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체험한 시골 결혼식의 맛

[늘근백수의 객적은 길 떠나보기 28] 미국 결혼식 참관기

등록 2007.09.07 13:24수정 2007.09.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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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는  미국 여행 중에 잠깐 눈을 돌려 그곳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결혼식이라는 게 인간의 통과의례 중 가장 큰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어느 나라 사람이고 간에 그 의미를 가벼히 여기기가 어려운데, 근래 우리의 결혼 예식이 너무 졸속하고, 형식적이고, '금전 수수적'인 냄새가 강하다고 느끼던 터라, 쾌히 그들의 결혼식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말이 그들이지 결혼의 한쪽 당사자는 내 막내조카의 딸이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내 여행기간중에 그들의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던 거였다.

처음 초대 받은 미국 결혼식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결혼식의 첫단추는 청첩장 발송이다. 청첩장의 문안이나 형태는 우리 것과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다만 발송 대상이 우리는 옷깃만 스친 사람에게도 보내는 경향인데 반하여, 이곳에서는 그 인원을 제한하여 가까운 사람(이번 경우는 신랑 신부측 합쳐서 130명만 초청하였다 한다)에게만 보내고, 청첩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참석여부를 회신하여 주어야 하는 점이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청첩장은 대개 6개월 전에 보낸다고 한다.

 청첩장과 결혼예식 순서지
청첩장과 결혼예식 순서지제정길


결혼식 전에 양가의 부모들은 몇 번 회합이 있었겠으나, 범위를 넓힌 양가의 상견례 자리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마련됐다. 보통은 이런 모임을 잘 안한다고 하는데 양가간 인종이 달라서 그런지(신랑은 이태리계 미국인이고 신부는 한인 2세 미국인이다) 사전에 한번 모여 친목을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만든 모양이었다. 모임은 신부가 사는 도시인 새크라멘토의 식당 일부를 빌려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미국에서 결혼식 참석은 처음인 데다 공식적인 사돈과의 대면이라 내심 긴장이 되었다.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입고 가야하는 복장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흔히 말하는 '드레스 코드'다. 밥벌이 다닐 시절,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드레스 코드였다. 어떤 이는 요트에 초대 받았는데 멋 모르고 정장을 입고 가서 추위에 벌벌 떨고 망신스러웠다는 얘기나, 그 반대 얘기를 하도 들은 바가 많아 외국인과의 모임에는 복장이 신경 쓰였다. 조카 말로는 그냥 캐쥬얼이라 한다. 캐쥬얼이 어디 쉬운 복장인가.

축의금 대신 선물 목록


축의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궁금하였다. 초청을 받았으면 가야 하고 가려면 부조를 해야 할 텐데, 그것을 걱정하였더니, 큰 조카는 어느 날 날더러 백화점에 가보자고 차를 끌고 나선다. 메이시 백화점 매장에 가서 컴퓨터에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쳐 넣으니 물품 리스트가 쭈욱 나왔다.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받고 싶어하는 선물 목록이란다. 어떤 물품은 다른 사람이 먼저 샀다고 표시도 되어있다.

남아 있는 물품 가운데 나는 주전자를, 큰조카는 진공청소기와 쟁반을 골랐다. 쟁반은 양가 모이는 날, 진공청소기는 결혼식날 쓸 거란다. 돈을 얼마 더 내면 백화점에서 결혼식장까지 배달하여 준다고 하나 사양하고 집으로 가져와서 포장도 하고 카드도 썼다.


양가 모임 날의 내 캐쥬얼은 참석한 남자 복장의 평균보다는 조금 '오버'였다. 신랑 부친은 청바지에 색깔있는 셔츠, 신랑은 면바지에 흰 셔츠, 신랑 동생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나는 색깔이 다른 콤비 상하의에 흰 셔츠의 노타이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자리라 조금 포멀 쪽으로 기울게 한 것이 패착이었던 모양이다. 허기사 신부의 외할아버지는 정장에 넥타이까지 하고 나오셨으니 나보다 한발 더 간 셈이었지만. 여자들은 대개 정장 차림이었다.

모임은 스스럼없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20여명의 모인 사람 모두 퍼스트 네임을 기억하고 또 불렀다. 신랑 부친과 신부 부친은 자주 어깨동무를 하였고 신랑 모친까지도 술마시는 것을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즐겁게(?) 놀았다. 한국에서 보는 사돈 관계가 아니라 친구끼리 만난 모임 같았다. 신랑도 신랑 부친도 직업이 치과의사라 격의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LA 근교의 한 골프클럽에서 치러졌다. 새크라멘토에서 LA까지는 차로 6시간 남짓한 거리. 예식은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이라 우리는 아침에 새크라멘토를 출발하였다. 큰 조카와 조카의 두 딸과 아들(조카사위는 외국에 출장 중이라서 불참했다) 그리고 지난 번 메이시에서 산 선물까지 실은 SUV는 양껏 달렸으나 생각보다 길이 밀려서인지 5시가 거의 되어 골프장 근처의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5시 30분, 근근히 시간에 맞출 수가 있었다.

 신부 입장과 신부 신랑 들러리들
신부 입장과 신부 신랑 들러리들제정길


결혼식의 옷차림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입을 수 있는 최상의 옷들을 걸치고 나타난 것 같았다. 나도 이번에는 한껏 포멀하게 옷을 차려입느라고, 상하 회색 정장에 검정 드레스 셔츠를 받쳐 입고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검정구두를 신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복장은 결혼식용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고 크루즈 여행의 포멀 드레스 저녁 식사 때 입을 양으로 서울에서 가져온 것이다. 봄에 입을 요량이었던 탓으로 조금 철 늦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야외 결혼식이고 날씨가 선선하여 그런대로 괜찮았다.

 신부의 입장
신부의 입장제정길


결혼식장은 클럽 하우스 옆 잔디밭에 조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푸른 잔디위에 하얀 나무 걸상, 그리고 주례석 앞의 아치형 덩굴나무이 식장의 전부였다. 우리가 도착했을때 대부분 하객들은 먼저 와 의자에 앉아 있었고, 6명의 신랑 들러리들도 열을 지어 앞에 도열해 분위기를 잡았다. 그들은 검정색 정장을 맞춘듯이 똑같이 입고 있었다. 어찌된 셈인지 신랑도 이미 입장을 완료한 상태였다.

신부 들러리들은 우리가 온 후에 입장하였다. 6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가슴을 깊게 판 연분홍 드레스를 똑같이 입고 손에는 부케를 들고 들어오니 식장이 갑자기 환해지는 듯 했다. 음악은 파헬벨의 'Canon in D Major'가 잔잔히 흘렀다. 뒤이어 신랑 부모, 신부 모친이 들어오고, 신부가 화동을 앞세우고 부친의 팔을 끼고 들어왔다. 음악은 어느새 바그너의 'Bridal Chorus'로 바뀌었다.(실토하건데 내가 음악을 좀 알아서 듣고 곡명을 척척 맞추는 게 아니고 순서지에 그렇게 써 있어 그런 곡인가 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조촐한 야외에서의 결혼식
조촐한 야외에서의 결혼식제정길


예식은 목사가 집전하였다. 짧은 성경 봉독이 있고, 긴 결혼 언약이 뒤따랐다. 우리처럼 신랑신부가 주례의 물음에 '네' 한마디로 대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목사가 하는 전 구절을 일일이 따라 말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관습인 모양이다.

언약을 하는 동안 신랑은 신부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그의 얼굴을 그윽히 쳐다보며 말하였고, 신부는 잡히지 않은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하였다. 기쁨의 절정에서 나오는 눈물이리라. 사랑이란 것을 어떤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저런 모양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끝나고는 반지 교환과 입맞춤이 뒤미쳐 왔다.

 사랑의 언약식
사랑의 언약식제정길

멘델스존의 'Wedding March'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신랑신부가 퇴장하고, 그들 뒤이어 들러리들이 각각 짝을 지어 퇴장하는 것으로 1부 예식은 끝이 났다. 그런 다음에 사진을 찍을 사람은 사진을 찍고 나머지 사람들은 야외에 마련된 간이 바에서 칵테일 등을 마시며 휴식과 담소를 즐기었다.

해는 골프장 너머 산등성이로 뉘엿뉘엿 지는데 기온은 알맞게 선선하고 미풍은 이따금 높이 선 야자나무 잎끝을 간질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결혼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좋은 장소, 좋은 시간이었다.

 1부 결혼예식과 2부 결혼파티 사이의 간이 야외파티
1부 결혼예식과 2부 결혼파티 사이의 간이 야외파티제정길


흥겨운 웨딩파티

예식의 2부인 웨딩파티는 실내로 옮겨 시작되었다. 넓다란 홀에 하객들이 먼저 들어와 있자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들러리들이 뒤를 이어 들어오고 맨 마지막으로 신랑신부가 박수 속에 입장하였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감미로운 음악이 꿈결처럼 홀 안을 채우더니 신랑신부는 결혼식의 첫 춤을 꿈결처럼 감미롭게 추어갔다. 춤은 세련되지는 못하였으나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그들의 춤속에서 자기들의 사랑을 더듬어보는듯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인생을 시작하는 첫춤을 추는 신랑신부
그들의 인생을 시작하는 첫춤을 추는 신랑신부제정길


춤이 끝나고는 옆방인 만찬장으로 이동하였다. 만찬장 입구에는 하객 개개의 명찰이 놓여져있고, 명찰 귀퉁이에는 6개월 전 청첩장 회신을 할 때 우리가 선택한 메뉴의 음식이 색깔로 표시되어 있어, 들어가면서 자기의 명찰을 집어다 자기가 앉는 좌석의 테이블위에 놓으면, 우리가 원하는 음식을 서비스받게끔 되어 있었다.

내 앞에는 스테이크 미디움이 나왔다. 일률적으로 한가지만 제공되는 우리나라 결혼식의 피로연에 비해 음식이 다양해서 좋았다. 술은 기본적으로 샴페인과 와인이 제공되고 그외 술은 원하면 바로 옆의 바에서 갖다 주었다.

 만찬
만찬제정길


음식이 끝날 무렵 다시 사회자의 안내가 있고, 신부의 부친이 나와서 인사말을 하였다. 그는 인사말의 말미에

"제가 사랑하는 딸과 마지막으로 춤을 한번 추겠습니다"

하고 말하더니 신부를 데리고 인접한 홀로 나갔다. 음악은 다시 울러퍼지고 신부의 아버지는 그의 딸과 함께 춤을 추었다. 그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초등학교 때 낯선 나라에 이민을 와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워 이제 그중 하나를 보내는 그의 마음이 어떠할까?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 신랑과 신랑 어머니의 춤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 신랑과 신랑 어머니의 춤제정길


춤은 신랑과 신랑의 모친이 추는 순서로 이어졌다. 신부 아버지와 신부, 신랑 어머니와 신랑이 추는 춤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대의 효도이자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최고의 사랑처럼 내 눈에는 비쳤다.

곡이 바뀌자 하객들도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큰 조카와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었다. 홀짝 홀짝 마신 술이 은근히 올라 춤추기에 좋을만큼 고흥되어 있었다. 하객들의 춤 솜씨는 크게 기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그 멋드러진 제비같이 날렵한 춤들이 아니라 노래방에서 흔히 보는 장삼이사의 춤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기사 그보다는 좀 더 젊잖게 추긴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음악은 빨라지고, 바에서 공급되는 술잔의 속도도 빨라지며, 대부분의 하객들이 플로어에 나와 춤을 추었다. 나는 이번에는 큰 조카의 '둘째'와 플로어에 내려섰다. 구민회관에서 2년이나 배운 스포츠 댄스 실력이 있긴 하지만 그까짓 것 다 잊어버리고 막춤에다 전매특허인 '불타는 오징어'춤을 흔들어 대었다.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주며 박수를 쳐 주었다. 뭐, 미국 춤도 별 거 아니구만. 취한 속에 세상도 춤처럼 흔들거렸다.

 홀안의 하객들과 쌓아둔 답례품
홀안의 하객들과 쌓아둔 답례품제정길


파티는 자정이 넘어서 끝났다. 신랑신부의 사진과 인사말이 라벨로 붙어있는 와인 한 병씩을 답례품으로 받아들고 우리들은 호텔로 돌아왔다. 차는 고3이라서 음주를 하지 않은 막내 손주가 몰았다.

결혼식은 예상했던 것보다 흥겨웠다.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하던 결혼식이 생각났다. 그때는 술 한동이, 또는 떡 한짝 해가지고 혼사집에 가면 하루이틀을 그집에서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며 즐기었다. 이제 그것들이 사라져버린 지금 여기 미국땅에 와서 그 비슷한 맛을 보다니 세상은 돌고 도는 모양이었다.

호텔의 스위트 룸 소파에 몸을 누이니 호텔의 천정 또한 돌고 돌았다.
#미국 결혼식 #피로연 #웨딩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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