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과 결혼예식 순서지
제정길
결혼식 전에 양가의 부모들은 몇 번 회합이 있었겠으나, 범위를 넓힌 양가의 상견례 자리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마련됐다. 보통은 이런 모임을 잘 안한다고 하는데 양가간 인종이 달라서 그런지(신랑은 이태리계 미국인이고 신부는 한인 2세 미국인이다) 사전에 한번 모여 친목을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만든 모양이었다. 모임은 신부가 사는 도시인 새크라멘토의 식당 일부를 빌려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미국에서 결혼식 참석은 처음인 데다 공식적인 사돈과의 대면이라 내심 긴장이 되었다.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입고 가야하는 복장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흔히 말하는 '드레스 코드'다. 밥벌이 다닐 시절,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드레스 코드였다. 어떤 이는 요트에 초대 받았는데 멋 모르고 정장을 입고 가서 추위에 벌벌 떨고 망신스러웠다는 얘기나, 그 반대 얘기를 하도 들은 바가 많아 외국인과의 모임에는 복장이 신경 쓰였다. 조카 말로는 그냥 캐쥬얼이라 한다. 캐쥬얼이 어디 쉬운 복장인가.
축의금 대신 선물 목록 축의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궁금하였다. 초청을 받았으면 가야 하고 가려면 부조를 해야 할 텐데, 그것을 걱정하였더니, 큰 조카는 어느 날 날더러 백화점에 가보자고 차를 끌고 나선다. 메이시 백화점 매장에 가서 컴퓨터에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쳐 넣으니 물품 리스트가 쭈욱 나왔다.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받고 싶어하는 선물 목록이란다. 어떤 물품은 다른 사람이 먼저 샀다고 표시도 되어있다.
남아 있는 물품 가운데 나는 주전자를, 큰조카는 진공청소기와 쟁반을 골랐다. 쟁반은 양가 모이는 날, 진공청소기는 결혼식날 쓸 거란다. 돈을 얼마 더 내면 백화점에서 결혼식장까지 배달하여 준다고 하나 사양하고 집으로 가져와서 포장도 하고 카드도 썼다.
양가 모임 날의 내 캐쥬얼은 참석한 남자 복장의 평균보다는 조금 '오버'였다. 신랑 부친은 청바지에 색깔있는 셔츠, 신랑은 면바지에 흰 셔츠, 신랑 동생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나는 색깔이 다른 콤비 상하의에 흰 셔츠의 노타이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자리라 조금 포멀 쪽으로 기울게 한 것이 패착이었던 모양이다. 허기사 신부의 외할아버지는 정장에 넥타이까지 하고 나오셨으니 나보다 한발 더 간 셈이었지만. 여자들은 대개 정장 차림이었다.
모임은 스스럼없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20여명의 모인 사람 모두 퍼스트 네임을 기억하고 또 불렀다. 신랑 부친과 신부 부친은 자주 어깨동무를 하였고 신랑 모친까지도 술마시는 것을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즐겁게(?) 놀았다. 한국에서 보는 사돈 관계가 아니라 친구끼리 만난 모임 같았다. 신랑도 신랑 부친도 직업이 치과의사라 격의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LA 근교의 한 골프클럽에서 치러졌다. 새크라멘토에서 LA까지는 차로 6시간 남짓한 거리. 예식은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이라 우리는 아침에 새크라멘토를 출발하였다. 큰 조카와 조카의 두 딸과 아들(조카사위는 외국에 출장 중이라서 불참했다) 그리고 지난 번 메이시에서 산 선물까지 실은 SUV는 양껏 달렸으나 생각보다 길이 밀려서인지 5시가 거의 되어 골프장 근처의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5시 30분, 근근히 시간에 맞출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