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젖"도 못 먹고 자란 내동생

등록 2007.09.15 14:51수정 2007.09.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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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13일 오후 2시 유성 관광호텔에서 열린 '제8회 건강한 모유수유아 선발대회'에서 진동규 대전 유성구청장이 인사말을 하면서 "대학때 데모를 한, 소위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유가 아닌 분유를 먹었다는 통계가 있다"며 "사람이 사람 것을 먹지 않고 소젖을 먹으면 그렇게 된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뭡니까. 모유에 대한 권장과 찬성을 넘어 결국은 민주화운동세력을 모독하고 우유를 먹고 자란 사람을 모독하는 발언 아닙니까!

 

진동규 유성구청장님의 발언은 사석에서도 받아 들이기 힘든 그런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사석이 아닌 공석에서, 공인으로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공인의 적정성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아무리 발언 취지가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고 장점을 알려내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이 발언은 타방에 대한 인권모독의 극을 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민주화운동세력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낍니다.


저는 진동규 구청장이 발언한 그 세대에 소위 "대학 때 데모를 한"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은 민주화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진척된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치열한 투쟁과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그 중심에는 "대학때 데모를 한, 소위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역사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참여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동규 구청장의 발언은 민주화 세력 전체를 적절치 않은 비유를 통해 비하하는 역사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동규 구청장은 시대상황 역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발언 속에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과거가 떠오릅니다. 저는 60년대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도 저의 어머님은 상당한 연령대였기에 두살 터울인 제 동생을 가졌을 때는 어머님께서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으셨고, 그런속에서 막내를 낳았습니다. 아마도 현재처럼 의술(?)이 발달했다면 동생은 아마도 이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늦게 낳은 동생은 고령의 어머님탓에 젖을 변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동생이 좀 잘못하는게 있으면 젖을 제대로 못먹여서 그렇다고 자책하시는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렇듯 제 동생은 "소젖"도 제대로 못먹고 자랐습니다.

 

진 구청장님은 "80년대 중반 대학 조교시절과 2000년 초경까지의 대학교수 당시 각각 운동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결과자료를 본 적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 세대라면 제 동생과 같은 세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당시의 평범한 농가에서 모유 대신 "소젖"을 먹일 만큼 경제적 조건이 갖춰진 가정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소젖"이 그렇게 대중화 되지도 않은 시대였습니다. "소젖"이라도 맘껏 먹일 수 있었다면 저의 어머님 가슴에 그렇게 한이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동생은 "소젖"도 제대로 못먹고, 안나오는 젖을 짜내며 한탄하고 그나마 미음을 끓여서 어린 목숨을 연명해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 동생은 건강히 자라줬고 지금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 구청장님이 말씀하신 비유처럼 제 동생도 독재시절 시대상황을 고민하며 독재와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대학때 데모를 한, 소위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소젖"도 제대로 못 먹은 주제에 말입니다. 동생은 여전히 약자의 편에 서서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고향을 지키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진 구청장님이 사회의 양지에 있을 때 그늘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는 서로 존중하는 세상입니다. "분유를 먹으면 데모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세상을 억지로 갈라놓는 것이며, 사회역사 인식이 심각히 결여된 발언입니다.


"소젖"마저 제대로 먹여 보지 못하고 키운 것에 대한 평생의 가슴 아픔을 간직하고 돌아 가신 저의 어머님이 만약 이 얘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한번 생각해 보시죠. 또 민주화 운동세력을 비하하고 싶다면 다른 식의 표현을 생각해보시죠.


전 개인적으로 진동규 구청장님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한나라당이라는 것 말고도. 본인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비난하고 싶을때는 좀더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을 쓰셔야 합니다. 그것이 공인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2007.09.15 14:51ⓒ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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