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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행인으로 있는 미주교육신문이 주최한 디베이트 컴피티션이 한창이던 10월 27일, 제 신경은 자꾸 동부 코네티컷의 한 고등학교로 쏠렸습니다. 딸아이 선생님들과의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아내가 그 학교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단순 방문'이라면 저녁에 통화를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제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아내가 다친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부행 비행기를 탔던 목요일 새벽, 아내는 늦게까지 짐을 꾸리다 그만 집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습니다. 처음 넘어졌을 때는 30분 정도 꼼짝을 못할 정도였고, 그날 오후 3시까지 앉지도, 서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심하게 다친 것이었습니다.
오전에 병원에 가서 X-Ray 사진을 찍어보니 다행히 뼈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하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우선 얼굴부터 찡그리는 아내 모습에 저는 ‘오늘 저녁 비행기 타는 것은 불가능할 것같은데…’라며 내심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결론은 ‘그래도 간다’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딸이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면, 엄마에게 전화 걸어 ‘엄마 미안해, 다음에 갈께’라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로서 딸을 만나러 가는 거다.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를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다”로 말입니다.
“물론 지금 쉬면 좀더 빨리 회복하겠지만, 좀더 오랫동안 고생하더라도 가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아내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공항에 갔습니다. 공항에서는 휠체어를 빌려서 다행히 동행했던 한 학부모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대여섯 시간의 비행기 여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밤 비행기였는데도 좌석이 꽉 차서 누울 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몸으로 2박 3일의 일정을 강행했고, 그 바람에 저는 그 기간 동안 내내 신경이 동부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딸아이는, 한편으로 안타까와하면서도, 아주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아내는 전화에서 “거봐, 오길 잘 했지?”라고 했습니다. 3일이 지난 일요일 밤 10시 30분 아내는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도착 후에도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아 걱정했더니 저 멀리 엘리베이터에서 항공사 직원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조금 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완전히 퍼져 버렸습니다.’
사실 아내의 몸은 몇 가지 불편한 곳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출산하면서 ‘자연분만이 아이에게 좋다’는 말 한마디에 ‘무리를 해서까지’ 자연분만을 한 덕분에 지금도 몸 한구석에는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런 ‘무리한 자연분만’을 통해 태어난 두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구요.
재작년인가요, 그 때는 제 아들이 장난을 친다고 2층 침대에서 아내에게 뛰어들었습니다. 아내에게는 큰 호박만한 돌덩이가 다가오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아들 녀석의 안전이 걱정된 아내는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지 않고 막아섰고, 결국에는 허리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도 몇 주 동안 병원을 다니고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제 아들 녀석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보며 ‘어머니들의 불편한 몸에는 자식을 키운 역사가 담겨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멀쩡하던 아내의 몸이 벌써 크게 3번이나 충격을 받아 어딘가 부실하니까요. 자연스레 한국에 계신 저희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키운 흔적이 어디에 남아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창 때 저희 어머니는 4남매의 도시락을 매일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희 형님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저녁 도시락까지 해서 모두 5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지요. 그러다니보니 매일 4시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했습니다. 그 전날 12시에 자건, 새벽 2시에 자건 자명종 시계가 없어도 늘 제 시간에 일어나 따뜻한 밥에 따뜻한 국을 준비해주셨지요.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러다보니 저희 어머니는 지금도 잠을 잘 못 주무십니다. 늘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했고, 그 결과 신경이 예민해진 것입니다. 해서 지금도 가끔 저희 집에 다니러 와서 지내실 때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시죠. "잠이라도 편하게 자면 좀 훨씬 몸이 편할텐데…."
제가 제 일에 바빠 어머니의 이런 사정을 늘 잊고 사는 것처럼, 제 아이들도 나중에 크면 엄마가 이렇게 몸을 다치면서까지 자기들을 돌봤다는 것을 잘 모르겠지요. 그저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가 쑤시는 것이라고 이해하겠지요.
이번 겨울에 뭐라도 좀 잘 해줘서 회복이 되어야 할텐데 여전히 바쁘기만 하고 할 일은 잔뜩 쌓여있기만 하네요. 덧붙이는 글 | * 필자는 미국 LA에서 미주교육신문(www.USAeduNews.com)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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