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일화와 다당제 의회를 상상한다

[칼럼] 정동영-이회창, 문국현으로 합친다면?

등록 2007.12.14 16:07수정 2007.12.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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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제는 각 방송사가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여러 각도에서 의심되고 있지만, 제한적이나마 여론을 읽을 수 있는 자료로 참고할 만한 것임은 분명하다.

 

여론조사의 결과로만 본다면, 현재의 판세에서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다. 정동영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호남도 이미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 '텃밭'인 호남에서조차 이런 형세라는 것은 이번 대선이 지난 5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

 

'깜짝 후보' 이회창 후보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갑작스레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는 정치세력을 결집하는데도, '보수다운' 정책을 내놓는데도 실패했다. BBK 사건에 대해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무혐의 판정을 내리면서, 부실한 후보를 대신하겠다는 출마의 명분도 사라졌다. 현재의 판세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쏠린 보수표를 돌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진보적 성향을 띠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보수적 성향을 띠는 이회창 후보진영은 공약과 추구하는 가치에서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부패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민의 편인 것처럼 광고를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재벌과 대기업, 건설기업을 위하는 정책공약, '능력있는 CEO'를 내세우지만 문제가 많은 과장된 경력, 자녀 위장전입문제부터 선거법 위반, 의원직 박탈에 이르는 심각한 도덕성. 이런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反 이명박' 진영 후보와 지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아름다운 협약'과 문국현 '대통령'

 

항간에는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두 후보의 단일화는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자들에게 가장 큰 적은 '좌파정권'이고, 이 대표가 바로 정동영 후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동영 후보 지지자들에게 이회창 후보는 '극복대상'이자 '과거세력'의 수장이다. 두 진영은 합치려야 합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다.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문국현 후보를 활용한 '아름다운 협약'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후보가 공동 협약을 맺고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 후 사퇴한다. 대신 창조한국당,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신당이 의회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을 약속하고, 정책 결정차원에서 각 정당의 가치관에 기초해 경쟁과 협력을 할 것을 약속한다. 이른바 양당 구도의 '싸움판 정치'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경쟁과 협력이 있는 정치'를 하자는 '아름다운 협약'이다.

 

다소 황당한 시나리오로 들릴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왜 지지율 4위의 군소후보 문국현으로 단일화해야 하는가?
2) 왜 대선에서 의회권력의 분점을 약속하는가?

 

왜 문국현 대통령인가?

 

문국현 후보는 비록 국회의원 1석만을 가진, 정치세력이 전혀 없는 후보다. 지지율도 현재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4위를 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문국현 후보는 사실상 '군소후보'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친 정치적 지향과 가치를 얘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경제, 교육, 사회 정책에서 진보적 성향을 띠며, 이 점에서 정동영 후보의 지지층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회창 후보가 중시하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방법론은 다르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완전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정동영 후보 진영과 이회창 후보 진영 모두에게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는 '명분'이 있는 단일화가 되는 셈이다. 여러 가지 단일화 방안 중 문국현으로의 단일화는 지지층 이탈이 가장 적은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층을 잠식당한 보수 후보라는 측면에서 지지율 상승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는 뚜렷한 지역기반, 정치기반 없이 1%도 되지 않는 지지율을 10% 근방까지 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문국현 현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자발적인 지지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보수 언론이 문국현 후보를 철저히 홀대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정치 혁명'이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 중에는 '인물은 좋은데 세력이 없어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현재 문국현 후보의 지지층이 대부분 정치적 무관심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에서 20%에 달하는 부동층의 표도 문국현 후보에게 쏠릴 가능성이 크다.

 

왜 '아름다운 협약'인가?

 

현재 상당수 정치전문가는 '대선이 끝났다'며 남은 후보들의 전략을 '총선용'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대통합민주신당의 검찰 탄핵소추안과 BBK 특검안 제출, 이회창 후보의 신당 창당 선언은 대선보다는 총선을 노린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참혹한 성적을 거둘 경우 당이 공중분해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설사 세력을 유지하더라도 현재의 지지율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거대여당의 출현 속에 '꼬마 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이들 세력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국현 후보의 당선은 그 의미가 다르다. 문국현이라는 인물이 가진 영향력에 비해 창조한국당은 아직 정치세력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황이다. 문국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창조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그만큼 대통합민주신당이나 이회창 신당의 입지가 넓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름다운 협약'이란 아이디어는 이 점에서 출발한다.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사퇴하며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각각 정당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해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당'인 창조한국당과 함께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는 '정책 중심의 상호협력, 상호경쟁'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협약은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지지층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불식시키고, 무리한 정책 연합, 세력 연합을 통해 각자의 색깔을 잃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개혁세력을 무리하게 결집하며 탄생한 '열린우리당'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방지하고, 국민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세력을 지지할 수 있게끔 다원화된 국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현실은 항상 여당과 야당으로 재편되는 '양당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창조한국당의 등장과 '비판적 파트너'로서의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신당의 도약은 한국 정치가 진정한 다당제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를 통해 다원화된 한국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성이 제대로 보장되는 국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공학적' 단일화 대신 '아름다운' 단일화를

 

'단일화'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경선을 통해, 지지선언을 통해 몇몇 단일화가 일어났다. 경선을 통해 박근혜-이명박 연대가 생겨났고, 손학규-이해찬-정동영도 경선을 통해 뭉쳤다. 대선 후보 중에는 심대평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정치공학적' 단일화는 국민의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지지율 상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지지층은 이명박 후보에게 흡수되는 듯하다 다시 이회창 후보로 발길을 돌렸고, 심대평-이회창 연대는 거의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손학규-이해찬-정동영 연대는 '지지율 블랙홀'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부진한 결과를 냈다.

 

더 이상 단일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단일화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문국현으로의 단일화는 '부정부패'의 온상인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막는 동시에, 양당제 성격의 국회를 개혁할 수 있는 정치 선진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정권 탈취를 위한 야합이 아닌 명분 있는 '협약'은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지지층의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대선 D-5. '아름다운' 협약과 '멋진' 단일화가 우울한 정국을 바꾸기를 기대해본다.

2007.12.14 16:07ⓒ 2007 OhmyNews
#문국현 #이회창 #정동영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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