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PD와 RPG게임 그리고 <이산>

RPG 게임 이야기 구조와 닮았네

등록 2007.12.23 11:52수정 2007.12.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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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병훈 PD를 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가 현 최고의 사극 PD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대장금>, <허준> 등을 비롯해서 최근의 <이산>까지 그의 대박은 계속되고 있다.


이병훈 PD의 드라마는 젊은 시청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오히려 중장년층보다 젊은이들이 더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일반 사극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작품에 젊은이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20~30대의 젊은 시청자들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지낸 기억을 가지고 있다. 90년대는 이들이 즐긴 컴퓨터게임은 RPG게임이었다. <어스토니아스토리>, <이스II 스페셜> 등을 즐기던 이들은 RPG게임의 이야기 구조에 익숙하고 재미있어한다.

 

RPG게임의 이야기구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주인공은 초기에 혹독한 시련으로 혼자 남겨지게 된다. 둘째, 주인공은 혼자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친구들이 주인공 주변으로 모이고,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주인공은 ‘절대악’인 라이벌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퀘스트(Quest)'를 수행하게 되고 '레벨업(level-up)'을 하게 된다. 넷째, ‘절대선’인 주인공은 ‘절대악’인 거대한 라이벌과의 다툼에서 힘겨운 승리를 한다. 이처럼 0에서 시작한 인물이 100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RPG게임의 이야기 구조이다.

 

이병훈 PD의 사극은 RPG게임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산>에서도 그런 특징이 잘 들어나고 있다.

드라마 초기 이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정치적인 모함(역모)으로 귀주에 가두어 죽어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것이 이산의 첫 번째, 시련의 시작이다. 어린 이산은 그 시련을 영조와의 직접 대면을 통해서 해결하고, 세자로 책봉되지만, 궁에서의 이산은 혼자이다.

 

혼자서 시작한 이산이지만,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릴 시절 동무로 이산을 지켜주는 박대수와 책사로 뛰어난 활약을 하는 홍국영, 어린 시절 동무이자, 그림실력으로 이산을 도운 적이 있는 성송현 등 수많은 사람이 이산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이렇게 이산은 혼자 시작하지만, 서서히 친구를 가지게 된다. 친구들은 이산이 위험할 때마다 도움을 준다.

이산의 라이벌 세력은 사도세자를 역모로 몰아서 죽인 노론 벽파들이다. 전면에서 이산과 대결을 하는 인물은 정후겸, 하지만 그 뒤에는 영조의 왕비인 정순왕후가 있다. ‘절대선’으로 그려지는 주인공 이산에 비해서 이들은 ‘절대악’으로 그려진다. 그 효과를 위해서 정순왕후가 평소의 모습을 바꾸고 그 독한 모습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어두운 조명과 무거운 음성으로 영상이 표현된다.

 

이들은 이산에게 꾸준하게 퀘스트를 제공한다. 라이벌들은 이산이 어린 시절에 조총을 이용한 역모사건을 조작했고, 최근에는 왕실행사에 이산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 퀘스트는 이산의 ‘레벨업’에 도움을 주었다. 즉 고비마다 퀘스트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이산은 왕실에서 세손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나가는 ‘레벨업’을 한 것이다.

아직 이산이 끝나지 않았지만, 마지막을 모두 알고 있다. 이산은 정후겸과 정순왕후 등의 라이벌과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하고 정조대왕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산은 아버지를 잃고 0에서 시작해서 대왕이 되어 100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확히도 RPG게임의 이야기 구조와 맞아 떨어진다. RPG드라마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드라마의 성공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그런데 사극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을 연출해야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특히 20~30대들은 감정이입이 쉽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20~30대에게 익숙한 RPG게임의 이야기 구조 도입은 그들에게 자신이 즐겼던 게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쉽게 드라마에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90년대 RPG게임은 대량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지금 RPG게임은 찾기 힘들어졌다.(온라인상의 MMORPG가 존재하지만, 이것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게이머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다.) 최근 비슷한 드라마를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이병훈 PD는 이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똑같은 것은 지루한 것이다.

2007.12.23 11:52ⓒ 2007 OhmyNews
#이병훈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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