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가 눈앞에 보이는 지브롤터는 스페인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지만 영국령이다. 반대편인 아프리카 대륙에 붙어 있는 세우타는 모로코의 최북단에 있지만 스페인령이다. 이것만 봐도 이 지역의 국제상황이 얼마나 복잡한 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옆 모로코의 북서해안에 위치한 탕헤르는 영국령이었다가 모로코에 반환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이번에 여수시와 세계박람회 개최를 경쟁하다가 졌기에 지금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시에 가기 전에 서로 마주 보고 연습해 본다.
“곤니찌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니 하오.”
“시팔노마?(중국어로 식사하셨나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시차가 우리보다 9시간 느리다. 아프리카 대륙이 빤히 보이는 스페인의 남쪽 끝 타리파 항에서 오후 5시에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하면 색다른 풍경보다 또 다시 오후 5시라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이것은 모로코가 스페인보다 시차가 1시간 느린 데다 배 항해 시간 역시 1시간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우리나라 시간과 현지 시간의 차이 때문에 시간을 맞추다 혼란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차가 빠르다거나, 느리다고 하면 시계를 맞출 때 시간을 더해야 할지, 빼야 할지?
나도 오랜 혼란과 경험 끝에 얻은 방법인데 이렇게 계산하면 간단하다. 동쪽으로 가면 더하고, 서쪽으로 가면 빼준다. 빠르다고 하면 플라스(+)이고 느리다고 하면 마이너스(-). 미국 쪽으로 가면 +, 유럽 쪽으로 가면 -이다. 모두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혼란스럽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그러므로 해 질 무렵인 오후 6시에 비행기가 타고 해지는 방향인 서쪽으로, 해지는 속도로 날아간다면 해는 항상 지는 중이고 현지 시간은 항상 오후 6시이다.
해지는 시각에 비행기가 홍콩에 와 있다면 중국은 우리보다 시차가 1시간 늦으므로 중국시간은 오후 6시이고 한국시간은 저녁 7시이다. 그러므로 한국시간에서 1시간 빼면 중국 시간이 된다.
비행기가 태국의 방콕에 와 있다면 태국의 시차는 2시간 늦으므로 방콕시간은 오후 6시이지만 한국시간은 저녁 8시이다. 2시간 빼주면 태국시간이다.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에 와 있다면 프랑크푸르트 역시 해가 지려하니 오후 6시요, 독일과의 시차는 8시간이므로 한국시간은 새벽 2시이다.
이 이야기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도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나는 해질 무렵을 좋아해. 해지는 걸 보러 가…."
"기다려야지…."
"뭘 기다리지?"
"해가 지길 기다려야지."
너는 처음에는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곧 자기 말이 우스운 듯 웃음을 터뜨렸지.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지.
"아직도 집에 있는 것만 같거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 알고 있듯이 미국에서 정오일 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프랑스로 단숨에 달려갈 수만 있다면 해가 지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래서 언제나 원할 때면 너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지….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는 해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지…."
"마흔 세 번 본 날 그럼 너는 그렇게도 슬펐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비행기 안의 좁은 창으로 총총한 하늘의 별을 보고, 1만m 아래의 아득한 땅의 불빛을 보며 소혹성 B612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를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도 해보고 저런 생각도 해보다 보면 생각이 와인에 섞이고, 와인이 생각에 섞여 잠결인지 꿈결인지 나 역시 혼란스럽다.
정신이 맑은 때면 글을 적어보고 실제 계산도 해본다. 지구의 자전속도는 초당 500m 정도다. 우리가 타고 가던 비행기는 시속 1000Km 정도의 속도로 달리니 초당 278m 정도에 해당한다. 지구 자전 속도의 반보다 빨리 날아간다. 동물 중 가장 빠른 치타가 초속 20m 정도이니 대단히 빠른 속도다.
부산 다대포는 해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영상에 담으려고 많이들 온다. 우리도 가끔 이 해지는 모습을 보려고, 해지는 모습을 보라고 지어 놓은 정자 ‘노을정’에 가기도 하는데 재빨리 지는 해에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곤 한다.
하지만 태양이 지는 서쪽으로 마구 달리는 비행기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비행기가 시베리아의 우르쿠츠크 상공쯤 오니 해가 지려고 하더니만 가도 가도 계속 해는 지는 중이다. 몇 시간을 지나 독일 상공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도 석양이 비친다.
현대문명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한 번도 쉼이 없이, 이 거대한 지구가 도는 속도에 경주하듯 12시간을 날아가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하여 오전 10시에 리스본에 도착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시차가 9시간 느리다고 했다. 그러므로 9시간 빼야 한다.
그냥 숫자를 헤아려 시계 바늘을 돌리면 재미가 없다. 바늘을 한 바퀴 돌리면 각도로 360도이다. 9시간이면 270도에 해당한다. 이것은 반대방향으로 90도에 해당하므로 시침을 오른쪽으로 90도만 돌리자. 그러면 새벽 한 시가 된다. 그리하여 리스본의 밤이 깊어진 것이다.
2008.01.24 18: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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