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니네 나라에서 뭐 타고 여기에 왔니?"
"니 하오?"
8년 전 이 행사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당시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이 조선 초급학교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인 아이들에게서 한국어(조선어)로 "안녕하세요?", "맛있어요!"가 꽤 유창한 발음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 2월 23일 일본 교토의 붓쿄대학에서는 의미 있는 교류회가 열렸다. 올해로 9년째를 맞은 조선 초급학교 학생과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 간의 정기 교류회인 '유아이스퀘어'가 일본학교 6개교, 조선학교 3개교 총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붓쿄대학의 도우미 대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까지 합치면 600여명에 달했다.
아이들의 싸움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행사
'유아이스퀘어'란 '너와 나는 동등하다'는 뜻으로 같은 곳에 살면서도 서로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일본학교 학생과 조선학교 학생들 간의 교류와 우정, 동등함을 상징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학교(일본학교) 아이들하고 근처의 조선학교 아이들이 싸우곤 했는데, 이게 계기가 됐죠. 서로에 대해 모르니깐 편견을 가지게 되고 이게 싸움으로 이어진 거죠. 그래서 교류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교류회에 참가한 킨가크 초등학교의 교사 고바야카와씨는 교류회가 시작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초등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이런 뜻이 일본 사회에서의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인 교류를 주장해왔던 조선학교 측과 맞아떨어지면서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험난한 북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한 것이다.
이 행사를 처음 추진했던 오성원(2000년 당시 조선 제2초급학교 교장)씨는 "이러한 교류는 인권적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처음에는 학교 간의 자그마한 교류로 시작했지만 이젠 이렇게 지역 전체로 확대 발전하게 됐지요. 이런 행사는 현재 여기 교토 밖에 없는데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어야 합니다"라며 행사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
'아직은 이르다'며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교토시 교육위원회
행사는 일본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조선어)로 동물이름 맞추기'에서부터 상대방의 전통놀이·악기 배우기, 체육대회, 집단 댄스 등 벽을 허물고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다.
일본학교·조선학교 교사들과 함께 붓쿄대학 교육학부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행사가 준비되었는데, 특히 '아직 시기가 이르다'며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교토시 교육위원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행사를 지원한 붓쿄대학이 인상적이었다.
이 대학 교육학부 고토우 준교수는 "앞으로 교육을 직업으로 할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행사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부에서는 매년 진행되는 이 행사를 아예 정규 과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라며 행사 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 아이들에게 한국(조선)악기와 음식이 큰 인기
교류회의 취지와 배경은 그렇다 치고, 행사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처음 개막식 때는 아이들이 학교별로 나누어져 있어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팀별로 나뉘어 서로 뒤섞이다보니 학교와 국적은 아이들을 구분하는 벽이 될 수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어느덧 장난꾸러기 초급학교 4학년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일본 전통놀이를 해본다는 재룡이. 능숙한 솜씨로 주변의 일본인 친구들을 놀래킨다. "이 놀이 이름이 뭔 줄 알아?"라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한편, 일본인 아이들은 한국(조선)의 전통적인 악기에 흥미진진. 부끄러워하면서도 좀체 악기를 손에서 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일본인 아이의 어머니인 오가와상은 "놀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자는 이 행사의 취지에 너무도 공감해요. 요즘 일본에서 조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지만 저는 특별히 거부감은 없어요. 오히려, 이와 같은 교류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라며 행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금강산도 식후경. 놀이도 좋고 악기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이들한테는 먹는 것이 최고다. 이날 점심은 조선학교 어머니회가 중심이 되어 일본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떡국과 부침개, 김치를 준비했다. 뒤에서는 조선학교 어머니들이 지지고 볶고, 앞에서는 일본학교 어머니들이 열심히 나눠준다. 일본인 한 학부모는 어깨너머로 배운 덕분에 부침개를 혼자 만들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편, 교실에서 열심히 떡국을 먹는 아이들이 있어 맛있느냐고 말을 걸어보자, 한 일본인 아이는 "맛있어요. 학교에서 급식 때 이거 먹어본 적 있는데 아주 좋아해요"라며 국물까지 다 해치워 버렸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관계정상화'
어느덧 예정된 프로그램을 다 마치고 행사가 끝나갈 무렵, 모두가 강당에 모여 손에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바탕 즐거운 집단 댄스로 아쉬움을 달랬다.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무지는 상대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낳는다'는 한 일본인 교사의 말은 북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행사가 더욱 소중함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하교길에 서로 싸우던 아이들이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 속에, 북일 관계도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08.02.26 10:1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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