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후예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해외리포트] 카레이싱 대부 막스 모슬리, 엽기 성매매 비디오 논란

등록 2008.04.17 12:44수정 2008.04.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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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슬리 회장의 엽기 성 매매 비디오 파문을 보도한 <뉴스 오브 더 월드>.
모슬리 회장의 엽기 성 매매 비디오 파문을 보도한 <뉴스 오브 더 월드>.<뉴스 오브 더 월드>


금요일 오전 런던 시내의 한 주택가. 노년의 한 신사가 서두르듯이 주택가 건물의 지하로 들어선다. 중세 유럽풍의 지하 감옥으로 꾸며진 이 건물 지하에는 금발의 젊은 여성 4~5명이 이 노신사를 기다리고 있다. 각자 역할에 따라 독일군 장교 복장, 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죄수 복장을 한 모습이다. 그리고 곧이어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하는 엽기적인 섹스 행각이 벌어진다. 

"옷 벗어!" 노신사가 머뭇거리자 금발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날아온다. "옷 벗으라고!" 주춤거리며 옷을 벗고 의자에 앉혀진 노신사가 치러야 하는 첫 번째 통과절차는 머리카락 검사다. "다른 수용소에서 얼마나 청결하게 생활했는지 검사하겠다. 고개 숙여!"

머릿속에 이가 있는지 점검을 마친 노신사는 곧바로 옆에 놓인 고문시설로 옮겨진다. 그리고 독일군 복장을 한 금발 여인의 채찍질이 시작된다. 발가벗겨진 노신사는 양발에 쇠사슬이 묶인 채 엉덩이에 피가 날 때까지 모진 채찍질을 당한다. 3월말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을 통해 공개된 이 엽기적 비디오는 이렇게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여기까지는 5시간짜리 섹스 비디오의 1막1장에 불과하다.

비디오 속에서 채찍을 든 금발 여성은 런던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직업여성'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섹스 비디오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등장하는 노신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는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는 유명인사이다. 흔히 'F1'이라고 불리는, 포뮬라 원(Formula one) 자동차 경주를 주관하는 세계자동차연맹(FIA)의 막스 모슬리 회장(67)이 그 주인공이다.

막스 모슬리 회장은 지난 1993년부터 15년째 지금까지 FIA를 이끌어오고 있는 카레이싱 분야의 대부이다. 벌써 4번째 FIA 회장을 연임하고 있으며 이미 2009년 10월까지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변호사 출신이자 세계 자동차 업계를 쥐락펴락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슬리 회장이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찍힌 비디오 한 편 때문에 한순간에 변태 성욕자로 전락한 것이다.
  
수용소 연상시키는 엽기 성매매... 주연-나치 후예, 연출-머독 소유 황색지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한 영국 신문은 언론황제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오브 더 월드>라는 타블로이드지이다. 평소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폭로기사를 즐겨 다루는 신문답게 모슬리 회장의 섹스 스캔들 보도에서도 이 신문은 3류 포르노 수준의 섹스 비디오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등 철저한 상업주의 색채를 보여줬다.


이 신문은 모슬리 회장이 나체로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채찍질을 당해가며 마조히즘을 즐기는 장면이나, 이어지는 2막에서 나치 사디스트로 변신해 독일어로 지껄여대는 그의 엽기적 행동마저도 '최소한의' 편집을 거쳐 그대로 폭로하는 선정성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섹스비디오가 폭로된 후 모슬리 회장이 '나치 복장'이나 '독일어' 부분이 조작된 것이라는 변명을 내놓자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현장에 있었던 여성들을 인터뷰해 모슬리 회장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혀내는 등 집요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세계 자동차업계 거물의 섹스 파트너였던 이 여성들은 모슬리 회장이 나치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섹스 도중 자신들에게 독일어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그의 엽기 행각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증언함으로써 이 '단골 고객'을 아예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독일 최초의 나치 집단 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자료 사진).
독일 최초의 나치 집단 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자료 사진).권기봉

엽기적인 개인의 사생활로도 치부될 수 있었던 'F1 대부'의 비디오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진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무관치 않다. 모슬리 회장은 1930년대 유럽을 뒤덮었던 과거 군국주의 세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모슬리는 당시 영국 파시스트 연합회장을 지낸 오스왈드 모슬리의 넷째 아들이다.

당초 영국 보수당 정치인이었던 오스왈드 모슬리는 1932년 당시 유럽을 휩쓸던 군국주의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흉내낸 극우파 정치조직인 영국 파시스트 연합을 만들어 활동한 바 있다. 오스왈드 모슬리가 나치 독일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의 베를린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 당시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참석했었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영국 또는 유럽 내 파시스트 운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막스 모슬리 역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가 투옥되고, 부모 석방 이후에도 영국 내에서 초등학교 입학이 거절되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는 영국에 살지 못하고 프랑스와 아일랜드 등을 떠도는 방랑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모두 부모가 파시스트였다는 '주홍 글씨' 때문이었다.

집안 내력이 이러한 만큼 모슬리 회장의 '나치 섹스비디오'는 단순히 유명인사의 사생활이 공개된 해프닝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지하실에서 나치 복장을 한 여성들과 집단 섹스 행각을 벌이면서 독일어로 무언가 계속 명령하는 장면은 영국인들에게 나치의 망령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자동차경주 스타부터 관련 업체까지 퇴진 압박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사마란치 위원장에 비견될 만큼 자동차 경주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임에도, 이 테이프의 일부가 공개된 후 모슬리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15년 동안 모슬리 회장이 이끌어온 FIA측은 그의 사임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F1을 주름잡았던 스타급 카레이서들이 나서 모슬리 회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모슬리 회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린 사람은 'F1의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레이싱의 영웅 재키 스튜어트였다. 잇달아서 독일, 미국 등 카레이싱계를 주도하는 주요 회원국들의 관련단체들로부터도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반응이 잇달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슬리 회장과 FIA측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F1은 물론 주요 자동차 경주 대회의 스폰서인 완성차 업체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BMW와 벤츠 등 독일 차 업체들과 혼다, 도요타 등 일본 차 업계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모슬리 회장의 전력과 비디오에 등장한 '나치 흉내 내기' 등이 2차 대전 패전국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완성차 업체들은 '망신스런 일'이라거나 'F1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모슬리 회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황색 언론의 폭로 공세에 의해 졸지에 모터 스포츠계의 대부에서 추잡한 늙은이로 전락한 모슬리 회장 측은 일단 '사생활과 관계된 문제로 사퇴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회장의 사생활에 대해 몰래 카메라를 찍어 유출한 데 대해 FIA에서 정식으로 논의해 법적 대응 방안을 내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모슬리 회장 측의 대응 전략은 '물타기'와 '버티기'로 요약된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저질언론의 폭로 공세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나치 관련 부분과 관련해서는 조작 가능성을 내비치는 전략이 '물타기'라면, 즉각 대응을 자제하고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FIA 이사회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자세로 우회 돌파를 시도하는 것은 '버티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모슬리 회장은 200개가 넘는 개별 회원국의 자동차 경주 단체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이로 인해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F1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카레이싱의 영웅 재키 스튜어트는 '즉각 물러나라'고 막스 모슬리 회장을 압박했다.
'F1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카레이싱의 영웅 재키 스튜어트는 '즉각 물러나라'고 막스 모슬리 회장을 압박했다.<뉴스 오브 더 월드>


신바람 난 상업 언론, 곤혹스런 카레이싱 대부

그러나 모슬리 회장 측의 '물타기'도, '버티기'도 그리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 모슬리 회장 측이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상대로, 이 신문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2분짜리 비디오 편집본의 삭제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영국 법원은 모슬리 회장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며칠 동안 자취를 감췄던 섹스 비디오 편집본은 법원이 신문사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다시 이 회사 홈페이지에 게재됐고 현재도 조회 수를 올리며 절찬 상영 중이다.

또 사태의 여파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4월 1일부터 바레인에서 열린 그랑프리 경주에 정작 주빈격인 모슬리 회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대회를 주관하는 바레인 왕실 측으로부터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슬리 회장에게 전달된 바레인 왕실 측의 편지가 언론을 통해 뒤늦게 공개됨으로써 모슬리 회장은 또 한 번 수모를 당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모슬리 회장 측이 이번 일에 어떤 형태로 책임을 지겠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자신에 대한 신임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FIA 이사회에 특별 총회 개최를 요청하고 이 총회의 개최일자도 오는 6월로 멀찌감치 잡아둠으로써 장기전에 들어가겠다는 의중을 드러냈을 뿐이다. 

이에 맞서 <뉴스 오브 더 월드> 측은 다섯 시간짜리 비디오 증거물을 FIA 이사회에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분 정도 분량으로 편집 후 공개된 동영상을 놓고 모슬리 회장이 '나치 부분 조작'을 주장하는 데 대해 '다섯 시간짜리 비디오를 돌려보고 난 뒤 판단하라'며 정면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황이 통치하는 바티칸 공화국 역시 FIA 회원국인 만큼 모슬리에 대한 신임 투표에 교황이 참석할지도 모르겠다며 모슬리 회장에 대한 '조롱성' 압력을 높이고 있다.

결국 F1경주보다 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F1 대부의 나치 섹스 스캔들은 올 여름까지도 영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릴 전망이다. 섹스, 사디즘/마조히즘, 비디오, 나치 등 영국 상업언론들의 구미를 끌어당길 만한 요소를 모두 갖춘 '모슬리 드라마'가 결말을 예고하기는커녕 이제 겨우 2막으로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치 #섹스 비디오 #막스 모슬리 #세계자동차연맹 #카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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