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초의 나치 집단 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자료 사진).
권기봉
엽기적인 개인의 사생활로도 치부될 수 있었던 'F1 대부'의 비디오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진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무관치 않다. 모슬리 회장은 1930년대 유럽을 뒤덮었던 과거 군국주의 세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모슬리는 당시 영국 파시스트 연합회장을 지낸 오스왈드 모슬리의 넷째 아들이다.
당초 영국 보수당 정치인이었던 오스왈드 모슬리는 1932년 당시 유럽을 휩쓸던 군국주의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흉내낸 극우파 정치조직인 영국 파시스트 연합을 만들어 활동한 바 있다. 오스왈드 모슬리가 나치 독일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의 베를린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 당시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참석했었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영국 또는 유럽 내 파시스트 운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막스 모슬리 역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가 투옥되고, 부모 석방 이후에도 영국 내에서 초등학교 입학이 거절되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는 영국에 살지 못하고 프랑스와 아일랜드 등을 떠도는 방랑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모두 부모가 파시스트였다는 '주홍 글씨' 때문이었다.
집안 내력이 이러한 만큼 모슬리 회장의 '나치 섹스비디오'는 단순히 유명인사의 사생활이 공개된 해프닝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지하실에서 나치 복장을 한 여성들과 집단 섹스 행각을 벌이면서 독일어로 무언가 계속 명령하는 장면은 영국인들에게 나치의 망령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자동차경주 스타부터 관련 업체까지 퇴진 압박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사마란치 위원장에 비견될 만큼 자동차 경주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임에도, 이 테이프의 일부가 공개된 후 모슬리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15년 동안 모슬리 회장이 이끌어온 FIA측은 그의 사임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F1을 주름잡았던 스타급 카레이서들이 나서 모슬리 회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모슬리 회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린 사람은 'F1의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레이싱의 영웅 재키 스튜어트였다. 잇달아서 독일, 미국 등 카레이싱계를 주도하는 주요 회원국들의 관련단체들로부터도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반응이 잇달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슬리 회장과 FIA측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F1은 물론 주요 자동차 경주 대회의 스폰서인 완성차 업체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BMW와 벤츠 등 독일 차 업체들과 혼다, 도요타 등 일본 차 업계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모슬리 회장의 전력과 비디오에 등장한 '나치 흉내 내기' 등이 2차 대전 패전국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완성차 업체들은 '망신스런 일'이라거나 'F1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모슬리 회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황색 언론의 폭로 공세에 의해 졸지에 모터 스포츠계의 대부에서 추잡한 늙은이로 전락한 모슬리 회장 측은 일단 '사생활과 관계된 문제로 사퇴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회장의 사생활에 대해 몰래 카메라를 찍어 유출한 데 대해 FIA에서 정식으로 논의해 법적 대응 방안을 내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모슬리 회장 측의 대응 전략은 '물타기'와 '버티기'로 요약된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저질언론의 폭로 공세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나치 관련 부분과 관련해서는 조작 가능성을 내비치는 전략이 '물타기'라면, 즉각 대응을 자제하고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FIA 이사회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자세로 우회 돌파를 시도하는 것은 '버티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모슬리 회장은 200개가 넘는 개별 회원국의 자동차 경주 단체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이로 인해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