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재검토 논란, 정부 불신감만 키웠다

[주장] '조변석개' 정부정책에 국민들만 피곤

등록 2008.04.17 16:26수정 2008.04.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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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하는 일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뒤집어지고 말 것인가?

 

며칠 사이 혁신도시 사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15일에는 "혁신도시의 경제적 효과가 부풀려졌다"며 사업 자체를 재검토할 것처럼 하더니 오늘(17일)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혁신도시 재검토는 없다"며 다시 논의를 원점으로 돌렸다.

 

며칠 사이에 막대한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국가사업이 널뛰듯 왔다 갔다 했다. 김천, 진주, 나주 울산, 진천, 원주, 제주 등 혁신도시 건설 예정지 10곳 중 이미 5곳이 건설에 들어갔고, 토지 보상도 70%(면적대비 보상율 74.4%) 이상 진행된 시점에서 말이다. 

 

혁신도시는 여야가 합의해 진행한 사업

 

a  혁신도시 사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한 사업이다. 사진은 2007년 진주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혁신도시 사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한 사업이다. 사진은 2007년 진주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 경남도청

혁신도시 사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한 사업이다. 사진은 2007년 진주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 경남도청

'혁신도시'는 수도권의 인구 밀집을 억제하고, 낙후된 지방경제를 되살린다는 취지로 국토 균형 발전을 내걸고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다. 그리고 공개적인 절차를 밟아 여·야 합의로 입법화된 법률에 근거해서 추진됐다. 더구나 이 사업은 경제적 효과만을 내세운 정책이 아니고 지방의 균형발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사업이 단지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뒤집어질 수 있는 걸일까?

 

지금 정부와 여당이 긴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혁신도시가 애초의 취지를 살려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와 혁신도시로 대표되는 '국토의 균형발전'은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 관계에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혁신도시의 총 토지보상비는 3조 1028억원이며 지난 11일까지 2조 269억원이 지급됐다. 면적 대비 보상률은 74.4%에 달한다. '혁신도시 재검토설'에 대해 각 지자체들은 "정부가 바뀌었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 총선이 끝나자마자 혁신도시를 축소 또는 폐지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온 것에 대해서도 '비겁한 술수'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행정상의 오류나 현실적인 여건에 따라 부분 수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혁신도시 사업을 전면축소하거나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것은 안 된다.

 

문제가 됐던 국토연구원의 보고서 '국토정책의 목표 수정에 관한 제언'은 혁신도시 등 노무현 정부의 국토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과거 정부가 지나치게 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으로 자원의 비효율적 이용을 초래했고, ▲ 다른 지역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과당경쟁으로 지역 간 갈등이 초래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균형발전을 강조했다'고 했는데 균형발전을 강조한 것이 잘못인가? 그럼 혁신도시 건설이 백지화되고 다시 수도권 집중으로 돌아갔을 때 발생하는 지역갈등은 중요하지 않은가? 

 

조석변개하는 정부 정책, 국민 불신만 키운다

 

이번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부 조직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난다. 국토연구원은 참여 정부 당시엔 가만히 있다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혁신도시가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민들 눈에는 정권이 바뀌니 고자질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책사업의 일관성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조석변개(朝夕變改)'다. 한번 통과시킨 법률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리겠다고 하고, 다시 말을 번복하면서 파생되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어디 가서 보상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정권이 바뀔 적마다 다시 원위치되는 사업이라면 이 나라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할까. 또 현장에서 실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은 어떻게 소신껏 일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켰던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기 보장도 뒤집었고 이제는 혁신도시 사업도 재검토라는 도마 위에 올렸다. 또 총선 공약이었던 '뉴타운 건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뉴타운 개발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말에 없던 것이 되어 버렸다.

 

과거 농민들이 정부가 심으라는 작물을 따라 너도나도 심었다가 가격 폭락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때 "정부가 하라는 것의 반대로 하면 최소한 망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나타낸 말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다시금 생겨나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 혁신도시, 양립방안 내놔야

 

a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투어단이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투어단이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장재완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투어단이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장재완

어쨌든 정부는 혁신도시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는 것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섰다. 아마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정부답게 혁신도시 재검토의 근거로 '경제적 효과 미비'를 내놓았다. 그럼 경제적 효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한반도 대운하를 은근슬쩍 추진하려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국토연구원과 정부는 여기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 '수도권 규제 완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어떻게 함께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조변석개하는 정부 정책에 국민들이 놀랄 일이 없었으면 한다.

2008.04.17 16:26ⓒ 2008 OhmyNews
#혁신도시 #국가균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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