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닭 사라진 양계장엔 빚만 가득해

[르포] 조류 인플루엔자 현장... 결국 눈물 흘린 축산 농민

등록 2008.04.23 13:18수정 2008.04.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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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사태가 벌어진 전북에서 22일 오전, 황산면 남산리의 한병숙씨 양계장의 토종닭 살처분 작업이 벌어졌다.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사태가 벌어진 전북에서 22일 오전, 황산면 남산리의 한병숙씨 양계장의 토종닭 살처분 작업이 벌어졌다. ⓒ 이용찬


"우리 닭은 토종닭이라 값이 비싸게 출하되는데……. 한 열흘후면 출하될 예정이었거든요. 우리 양계장만 비켜갈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 속상하네요. 오늘 면에서 살처분을 한다고 하니까 남편은 새벽부터 어디로 나가버리고, 전화도 안 받아요."

10년 째 김제시 황산면 남산리에서 양계업을 해오고 있는 한병숙(48)씨의 한숨섞인 넋두리다.

황산면 남산리의 한씨 양계장 현지를 방문한 22일 오전, 현장에는 살처분을 위해 자원봉사에 투입된 전북도교육청 살처분 조의 닭 매몰 작업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장은 새벽부터 양계장의 토종닭을 살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속상한 마음에 출타해버린 한씨의 남편 A씨를 찾아 수소문하는 전화통화 소리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닭들을 매몰하며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설명하는 김제시청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씨는 남편 A씨가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자신의 양계장을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역에 힘써왔다며 자신의 양계장 16개 동에 현재까지 남아있다 매몰되는 토종닭 1만여 수를 지켜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을 밝혔다.

양계동과 조금 떨어진 살림채 한편에서 살처분 현장을 힐끗힐끗 넘겨보던 한씨는 힘들게 참아내던 눈물을 끝내 참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한씨는 이틀 전에 황산면으로부터 한씨 양계장의 토종닭들을 살처분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씨의 농장이 위치한 황산면은 조류인플루엔자(AI)가 최초로 발생된 용지면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하지만 한씨의 양계장은 오래 전부터 일반 육계가 아닌 토종닭을 사육해 모든 닭들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차 발생지역인 인근 용지면으로부터 위험지역(3km) 범위 안에서 또 다시 2차 발생이 확인되면서 농림산업식품부의 방역 범위 확대와 살처분 확대가 실시되며 한씨의 농장에도 지난 20일 살아있는 모든 토종닭들을 살처분한다는 통보가 떨어졌다.


이로 인해 한씨의 농장에서 살아있던 약 1만여 수의 토종닭들도 살처분을 피하지 못하고  21일 밤 1차 안락사 된 후, 22일 오전부터 매몰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한씨의 토종닭 양계장은 모두 16개 동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는 토종닭 약 3만수를 사육해 키우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3일부터 AI가 번지기 시작하자 토종닭 병아리를 사육장에 넣지 못하고 현재는 5개 동에 각각 4000수, 6000수씩 모두 1만수가 사육되다 21밤 모두 안락사 처리됐다.

한씨는 "재작년에 그러더니 지난해 또 그러고 올해까지 이런 일이 발생해서 지금까지 사료 값 빚진 것만 모두 5700만 원이나 되거든요, 재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지만 아마 올해도 면에서 주는 건 쥐꼬리만 할 것 같아요"라며 현실성 없는 정부보상을 꼬집었다.

현재까지 AI가 발생한 김제와 정읍 등 주요 피해지역에 대한 생계지원 대책 등 정부의 긴급 자금 투입 소식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한씨의 표정에선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는 듯 했다.

"여기 양계장 땅이 저희 것이 아니거든요. 계속 10년 째 임대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까 빚만 늘어가고 있어요. 거기다 아이까지 아파서 매주 투석을 해줘야 하는데…….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눈물을 찍어내며 한씨가 밝힌 말이다.

최근 정부는 육계를 전문으로 사육하는 양계농가의 보상기준을 산란계 한 마리가 알을 낳는데까지 소용되는 경비로 1만2000원을 책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농가가 접하는 현실과는 차이가 많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살처분 이후 닭이 재입식되기까지 최소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고, 출하까지 또 3개월여를 기다려야 비로소 소득이 창출되기 때문에 정부가 최소 3개월 동안 생계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3개월 동안은 손가락만 빨아야 할 판이다.

한씨는 "사료를 한 번에 5톤 정도씩 사서 쓰는데 한 번 부를 때마다 222만원이 들어간다"며 최근 매년 되풀이되어 쌓여가는 부채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벼락처럼 불어닥친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이제는 생활고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망연자실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북도 일간지 전일신문에도 송고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북도 일간지 전일신문에도 송고 했습니다.
#AI #조류인플루엔자 #이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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