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은 왔으나 아직 봄을 맞지 못한 우리네 이웃들이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힘든 나라가 또 있을까?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노동3권으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몰지각한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은평 유일의 종합병원임을 자랑하는 청구성심병원도 이런 곳 가운데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똥물에 식칼테러, 조합원 집단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 산재 판정, 전 지부장의 죽음, 한 간호사의 자살시도…. 병원 노조탄압의 대명사 '청구성심병원'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최근 병원 리모델링으로 겉모양새는 좋아졌다지만 속조차 좋아진 건 아니다. 노동조합과 노조원에 대한 탄압은 10년여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도 병원은 조리장에 대한 해고와 노조원에 대한 전환배치를 하고 있다. 호시탐탐 노동조합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병원 측의 상식 이하의 행동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청구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지난 19일 토요일 오후 연신내 청구성심병원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국민은행 앞에서 캠페인이 벌어졌다. '청구성심병원 정상화를 위한 의료지원'. 은평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간호사들이 혈압과 혈당 등 건강체크를 무료로 해주고 있었다.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무료도 그렇거니와 간호사들이 직접 나와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의 표정도 봄 햇살만큼이나 밝아 보였다. 역시 간호사는 간호사일 때 빛을 발한다. 무슨 말인가? 이날 캠페인에 나온 두 명의 수 간호사는 더 이상 환자들을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폭언과 노조탄압이 일상화 된 하얀거탑
이은혜(45·가명)씨는 수간호사다. 84년부터 간호사 일을 시작했으니, 25년의 긴 세월이다. 능력도 인정받고 많은 직원들에게 신망도 두터웠다. 그런데 이런 간호사가 지난 3월 1일부터 병동이 아닌 고객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다. 수간호사를 업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발령을 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은혜씨는 간호사란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한 때 결혼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3교대의 고된 일임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환자들을 돌보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존심이 한 순간에 어긋난 것은 청구성심병원과의 인연이었다. 99년이었다.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희생과 봉사가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불온해 보였고,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고도 생각했다.
수간호사로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탄압하는데 앞장 섰다. 아니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위치가 그러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표를 쓸 각오를 해야 했다.
"누구누구 내보내라. 못하면 선생이 나가야 한다."
"당신은 일 안해도 좋으니 노무관리 해라."
압박은 심했다. 노조에 가입한 비슷한 연배의 수간호사를 병원 한 켠에 감금하고 사표를 종용하기도 했다. 조합원은 회식에서 배제했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조합원에게는 인사고과를 주지 않았다. 노조가 병원을 말아먹는 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회의가 또아리를 틀었다. 욕설은 기본이고, 거짓 진술에 폭력까지 사주하는 병원 측의 행태가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옆에 있던 동료 수간호사 김지영(가명)씨가 말을 거들었다. 같은 이유로 고객지원팀으로 전환배치를 받은 터였다.
"폭언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몰라요."
여러 간호사들의 폭언 증언과 비슷한 이야기들이었다. 노조에 가입된 수간호사에게 빈혈로 쓰러져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임신한 간호사에게 미숙아나 낳으라고 폭언을 일삼았다.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정미 전 지부장에게도 폭언이 많았다. "재발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횡단보도에서 덤프트럭에 받쳐 죽었으면 좋겠다"고.
'멍텅구리, 하빠리, 삿대질에 쌍 시옷 욕이 예사인 병원. 목주름을 다리미로 펴야겠다, 노조원들은 피부를 포를 떠 죽어가는 걸 보고 싶다, 윤간을 시키고 싶으니 집을 알아보라'고 하는 등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병원은 처음이었고 윗사람을 존경하래야 존경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조합원 돌잔치나 경조사에 마음 놓고 갈 수도 없고, 회식자리도 지정된 곳에 앉아야 했다.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약간의 항변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답은 가관이었다.
"00씨, 오래 일하고 싶죠. 그럼 말 들으시죠."
환자 곁에 있어야 할 간호사들, 그들은 지금
다시 이 간호사의 이야기다. 2006년 4월 은혜씨는 내과에서 중환자실로 발령을 받았다. 환자한테 폐결핵이 옮아 치료가 필요한 은혜씨였다. 안 가면 그만두라는 식이었다. 누구도 잘 가려하지 않는 힘든 곳엘 회사에 누구보다 충성한(?) 자기를 보낸 것이었다. 토사구팽이라 했던가. 조합원이 10여 명으로 줄어들자 병원은 더 이상 수간호사가 필요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를 일이다.
은혜씨는 억울하고 답답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병원 측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쳐졌다. 하소연할 곳을 찾다가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전화하세요."
차 한 잔을 건네며 던지는 살가운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이런 사람들한테 몹쓸 짓을 했구나."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도 자신이 불이익을 줬던 동료 간호사였기에 더욱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혜씨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반복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다 포용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노조가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장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조합원들에게서는 병원 측의 탄압이 힘겹지만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 정이 느껴졌다. "이런 곳인데, 우리가 그렇게 했구나." 회한 속에 비조합원들을 설득해 노조에 가입을 시켰다. 숫자는 빨리 불어났다.
그런데도 병원 측의 이간질에 놀아나는 불쌍한 노동자들은 있었다. 이제는 비조합원들이 미워졌다. 그럴 때 기존에 있던 조합원들은 놀라운 인내력과 인간성을 보여줬다. "선생님이 이해하세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포용의 마음이 차고 넘쳤다.
병원 측은 '청구가 망하면 너희들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일은 고되었고,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조그만 실수도 비조합원은 무마되지만, 조합원에게는 경고가 내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잘 참고 버텼다. 은혜씨를 믿고 따르는 간호사들이 하나둘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병원 측은 다시 발령을 내 고객지원팀으로 보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환자들의 사후상담을 하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친절조회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예전 같으면 친절조회에 빠지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을 판이었다. 23~24년 간호사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환자와 더불어 살아온 간호사들에게 모욕적인 전환배치였다.
"집에 가도 의욕이 없고, 우울해요. 집안일도 하기 싫어 널브러지기 일쑤에요."
김 간호사가 말을 받았다.
"요즘은 잠도 안 오고 견디기 힘들어요. 후배 간호사들 보기도 민망하고, 빨리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이러다가 정신병을 얻고 황폐화될까 봐 그만둘까도 생각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는 그들. 무엇이 이들을 숱한 언론 인터뷰에서조차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가명을 써야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나?
병원 측의 탄압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못했던 긴 시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동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도, 퇴사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려는 후배들을 떠나보내는 마음도 아려온다. 언제쯤 이 참담한 시간은 끝이 날까.
가족중심 병원을 강조하는 청구성심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직원이 행복한 병원이 치료받는 환자도 행복한 병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27 11: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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