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만 있는 '뉴스 비평'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방송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편성되는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이다. 방송사마다 그런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지만 보도 분야에 대한 옴부즈맨의 비평은 SBS가 유일하다. 매주 토요일 점심때 방송되지만 그래도 눈에 띈다. <SBS>에서 뉴스비평을 하고 있는 성한표 옴부즈맨은 최근 자사의 총선 관련 보도에 대해 "SBS 보도가 2%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했고, 이것이 미디어 전문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쓴소리'는 5년 째 이어지고 있다.
"SBS에서 뉴스비평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고 겁 없이 하겠다고 했지요. 이제 5년이 지났는데,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이긴 하지만 방송뉴스를 전문적 안목으로 비평을 할 만큼 그렇게 눈여겨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는 1975년에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뒤 한겨레신문 창간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편집국장, 논설주간, 부사장을 지냈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신문과 방송이 다를 리 없지만, 휙 지나가는 영상매체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비평을 하려고 <SBS> 8시뉴스를 봤더니 처음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KBS>나 <MBC>를 비교해 봐도 그게 그거였다. 무슨 트집을 잡아야 하나 싶어 한때 시간대마다 뉴스를 보기도 했지만, 마침 동영상과 텍스트를 함께 제공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용하면서 '트집거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선에서 한 발 떨어져 바둑에서 훈수 두듯' 뉴스비평을 하고 있단다.
성 옴부즈맨은 5월 2일 금요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저널리즘 특강>에서 뉴스를 똑바로 보는 방법과 비평의 '비법'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새벽에 토요일 방송될 원고를 쓰고 오전에 탄현 <SBS>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마친 뒤 제천 세명대까지 3시간 반을 직접 운전해온 그는 오후 4시 반쯤 도착하자마자 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토론회와 뒤풀이까지 포함해 밤9시까지 진행된 특강에서 그는 엄정한 언론인의 자세를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언론계 '예비후배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했고, 학생들은 뉴스를 해부하는 그의 시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비평해서는 안 됩니다"
옴부즈맨 제도는 스웨덴에서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자 고안된 행정통제 제도가 그 시초다. 이후 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활동을 통칭하게 되었고, 세계의 유수 언론사들도 옴부즈맨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언론의 권력화를 경계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언론에서는 옴부즈맨 제도 자체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연고주의와 온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 동료를 비판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강의에서 <SBS> 사례를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사실 민영방송인 <SBS>가 저 같은 성향의 사람을 옴부즈맨으로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영진과 편집진의 상당한 결단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매우 불편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뉴스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옴부즈맨은 시청자와 매체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꾀해야지, 시청자들을 쫓아버리는 효과를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그가 생각하는 언론 옴부즈맨의 역할론이다.
"저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뉴스비평을 할 때 내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논조를 비판하는 것은 가급적 삼가고 있습니다. 대중의 판단과 가치관, 대중의 생각과 현저하게 벗어나는 사안에 대해 비판합니다. 제 생각과 다르다고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신문방송 비평의 네 가지 틀
이어서 그는 자신이 신문/방송비평을 할 때 염두에 두는 네 가지 틀을 공개했다. 즉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발견하고 △뉴스의 객관성과 가치판단의 문제를 짚어보고 △뉴스의 관점이 올바른지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건전한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보도를 모니터링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해 뉴타운과 관련한 뉴스보도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SBS>는 지난 4월 27일 '뉴타운 청문회 공방'을 통해 민주당이 뉴타운 청문회를 요구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민주당의 요구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여야 합의로 만든 법을 청문회 하자는 것은, (한나라당의)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정치도의에도 반하는 정치공세"라며 말을 받았다.
"민주당이 청문회 하자는 건 <도시재정비촉진법>이 아니잖아요. 오세훈 시장과 한나라당 후보들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뉴타운 지정) 약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두고 청문회를 하자는 것이죠. 이렇게 넘어가면 시청자는 민주당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는 홍준표 의원이 한 발언은 사실이지만, 기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진실에까지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말을 했다고 보도하는 것은 사실보도입니다. 그러나 뉴스는 사실보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진실이냐’까지 따져봐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할 때, 그 거짓말이 정치인 입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이 진실이냐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 곱씹어 봐야합니다."
그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는 방향으로 뉴스를 보는 것이 자신이 뉴스를 비평하는 첫 번째 틀이라고 설명했다.
객관주의 보도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언론은 늘 정치적 중립성 또는 객관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뉴스는 정말 객관적일까?
"뉴스는 사람마다 가치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주관이 완전히 배제된 객관적 뉴스는 없으며, 객관주의에 매몰되면 의미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방송사가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는 객관주의가 기자의 의견 배제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 있는 판단을 배제하는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좋다', '나쁘다'가 의견이라면, '옳다', '그르다'는 판단입니다. 의견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해서 판단까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관점 없는 뉴스는 초점 안 맞는 사진"
"뉴스가 설명해야 하는 것은 표면의 파도가 아니라 그 밑의 흐름, 즉 조류입니다. 관점을 가져야 해설도 가능하고, 심층취재도 가능합니다."
성 옴부즈맨은 이야기를 하려면 관점이 있어야 하고, 관점이 없는 뉴스는 초점이 안 맞는 사진과 같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관점을 자신의 고정관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정관념을 관점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고정관념에 맞춰서 사실들을 취사선택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고정관념에 빠지면 이념적으로 경직된 비판을 하게 되는데, 언론인들은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 옴부즈맨은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최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친구'라는<국민일보> 편집국장 사이에서 발생한 기사 누락 건을 강하게 비판했다.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둘 사이는 너무 가까우면 유착이 일어나고, 너무 멀면 취재가 잘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겨레신문> 정치부장으로 있을 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시절 저하고 아주 친한 친구가 와서 '연말도 됐으니 부원들하고 회식하라'며 봉투를 전하려는 거예요. 내가 왜 그런 걸 받느냐고 했죠. 그는 '친구사이에'라며 계면쩍어 했지만, 언론과 권력이 '프렌들리' 해서는 안 됩니다. 권력은 언론의 감시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밝은 뉴스와 처음부터 환한 곳에만 서 있는 이들의 화려한 뉴스는 엄연히 다른 것임을 강조했다. 또 기자가 시청자의 동정심(sympathy)을 유발하는 것에만 그치면 힘이 빠지고 에너지가 분출되지 않는다며, 공감(empathy)을 이끌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의시간 내내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뉴스를 해부한 성 옴부즈맨은 예비언론인들에게 "그래도 용기와 신념을 갖고 기사를 쓰라"고 당부했다.
"기자들은 자신이 정직하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안일한 일상에서 깨어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득권층의 이익에 부응하는 기사를 쓰기는 쉽습니다. 기득권층에 위배되는 보도를 하려 할 때 엄청나게 많은 증거가 요구되는데 성실성으로 그것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촘스키가 미국사회를 향해 외롭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 사례를 들면서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역동적인 사회이니 여러분이 기죽지 말라"고 당부했다.
"판에 박힌 생각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창조적으로 자신을 키워나가십시오."
밤 9시, 이제 다시 차를 몰고 서울로 가면 자정 무렵에나 댁에 도착하려나? 그는 예순여섯의 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영원한 현역언론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에 게시돼 있습니다.
2008.05.04 12:2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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