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휘바춤'은 추지 마세요

[해외리포트] 핀란드에서 본 자일리톨 '괴담'... 껌은 식후에, 자기 전엔 양치질

등록 2008.08.29 10:06수정 2008.08.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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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치과에서 추천하는 자일리톨 함량이 높은 어린이 전용 자일리톨껌과 사탕(Fennobon Oy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www.fennobon.fi


'괴담'이라는 용어가 요새 자주 등장하고 있다.

광우병 괴담 외에도 독도 포기설, 수도 민영화, 정도전의 숭례문 화재 예언설, 국민건강보험 민영화, 인터넷 종량제 등등. 안타깝게도 이번 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국민 사이에 이런 괴담이 퍼지는 데 정부 스스로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보다 파급력은 좀 약하지만, 핀란드와 관련된 한 괴담도 인터넷 한쪽 구석 음지에서 잡초처럼 자라나 요즘의 괴담 열풍에 일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iN을 보면 '핀란드에 사실은 자일리톨껌이 없다'라는 대답이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다. 누가 처음 유포한 말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믿는 사람들도 뜻밖에 다수인 듯하다.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내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핀란드에 자일리톨껌은 단연코 '있다!' 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자일리톨껌은 핀란드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필수 소지품의 하나다.

왜 슐리톨만 있고 자일리톨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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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자일리톨껌 제품으로 통 속에 껌을 싸서 버릴 수 있는 종이가 함께 들어있음. ⓒ www.flickr.com(photo by Marjut Mutanen)

그런데 왜 이런 얼토당토 않은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핀란드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 잠시 회자되었던 한 자일리톨 관련 이야기가 '자일리톨 괴담'의 근원지가 아닌가 싶다.

전해들은 얘기여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의 한 언론기관 취재팀이 핀란드에 왔는데 그 중 한 명이 개인적으로 원조 자일리톨껌을 사고 싶어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그토록 원했던 자일리톨껌은 사지 못하고 핀란드를 떠났다는 것이다. 핀란드에 그토록 널리고 널린 자일리톨껌을 그가 사지 못했던 이유는 핀란드 점원에게 말 그대로 '자일리톨껌'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라는데….

외국인이 '자일리톨껌'이 있느냐고 물을 경우, 대부분의 핀란드 점원이 할 수 있는 대답은 'No'밖에 없다.

핀란드에는 '자일리톨'은 없고 '슐리톨(Ksylitol)'만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일본에서는 자일리톨을 핀란드 원래 발음과 가까운 키슈리토루 キシリト―ル라고 한다). 이 두 가지 발음이 엔간히 비슷하다면 자일리톨껌을 구입할 확률이 올라가겠지만, 불행히도 하나의 제품을 지칭하는 두 단어는 서로 많이 다르다.

물론 이런 발음 차이에도 핀란드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핀란드산 원조 자일리톨을 사는 데 성공한다. 핀란드 자일리톨껌 겉포장에는 자국어인 ksylitol과 함께 영어인 xylitol이 병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가게에서 점원의 말에만 의지하고 스스로 껌의 겉포장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사람은 '핀란드에 가니 자일리톨껌이 없더라'라는 자일리톨 괴담의 주인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자일리톨 원료, 중국산 많아

사실 자일리톨껌에 대해서 파헤치다보면 '핀란드에 있다, 혹은 없다'라는 존재론적인 의심 외에도 여러 다양한 오해가 우리 사이에 퍼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오해를 하나씩 풀어보면,

첫째, 핀란드 사람들(아이들 포함)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지 않는다. 핀란드에서 자일리톨껌은 식사 후 씹는 것이 관례다. 핀란드 사람들도 자기 전에 그 어느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물론 양치질을 한다. 

둘째, 자일리톨 원료가 다 핀란드에서 수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ㄹ사'만 핀란드에서 수입하고 있고, 나머지 회사는 중국에서 주로 자일리톨 원료를 수입하고 있다. 자일리톨은 자작나무에서만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채소에서도 추출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자일리톨은 자작나무보다는 채소에서 추출한 자일리톨이 대부분이다.

셋째, 핀란드는 자일리톨껌 원료 수출로 생각보다 큰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1999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일리톨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핀란드 회사 Cultor가 덴마크 회사인 Danisco에 매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장은 핀란드에 있지만, 대부분 수익은 덴마크 회사에 돌아간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넘기고 나중에 후회한 것처럼 핀란드인들도 지금 땅을 치면서 회사 매각을 후회하고 있다는데 그 중심에는 핀란드에서 자일리톨의 치의학적 효과를 처음으로 발견했던 '자일리톨의 대부'(한국의 자일리톨껌 TV 광고에도 출연) 핀란드 투르크 대학의 까우코 마키넨 교수가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자일리톨껌은 핀란드와 몇몇 나라에는 알려졌지만 세계적인 상품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동아시아 3개국(일본·한국·중국)에서 차례로 자일리톨껌 열풍이 불면서 자일리톨 원료 수출도 날개를 달기 시작했고 이제는 공급보다 수요가 앞서는 원료 품귀현상까지 빚을 정도다.

자신이 발견해 낸 자일리톨의 치과적 효력으로 조국 핀란드가 아닌 엉뚱한 나라 덴마크가 이익을 챙기게 되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봐야만 했던 '자일리톨껌의 아버지' 마키넨 교수의 속이 좋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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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시판되는 자일리톨껌 중 가장 자일리톨 함량이 많은(77%) 제품(Fennobon Oy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www.fennobon.fi

넷째, 자일리톨껌을 씹으면 분명 충치 예방 효과가 있지만, 단 자일리톨껌의 자일리톨 성분 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핀란드 치과에서는 통상적으로 자일리톨 성분이 적어도 50% 이상 되는 껌을 한 번에 2개씩 씹도록 조언해준다. 핀란드에서 지금까지 내가 본 껌 중 가장 높은 자일리톨 함량은 77%였다. 자일리톨 함량이 높을수록 효과가 좋다고 하니 껌을 구입하기 전, 겉면의 성분함량 표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루 세 번 식사 후 껌을 씹게 되면 자일리톨의 하루 권장 복용량인 5∼7g에 근접하게 되고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수 있다. 단, 하루 60g 이상 과다 섭취하면 설사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고 견공의 경우는 소량의 자일리톨 성분도 치명적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애완견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껌을 보관해야 하겠다.

'휘바휘바' 춤을 추면 핀란드인 당황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핀란드 사람들을 만날 경우 '휘바휘바'라고 외치며 선전에서 보았던 춤을 추지는 말 것을 부탁드린다. 핀란드 한 여성이 "lost in translation"이란 제목으로 그가 한국에서 직접 경험했던 '휘바휘바'와 그 일련의 춤에 대해서 블로그에 적어 놓은 글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단 '휘바'는 조금 잘못된 발음으로 '휴바'로 발음해야 핀란드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 '휴바'는 영어의 'good'에 해당하며 '좋다'는 뜻이다. 두 번 말해서 강조를 해도 좋고 한 번만 얘기해도 좋다. 그리고 선전에서 보여주었던 춤은 어느 나라 춤인지는 모르지만, 핀란드 춤은 아닌 것이 확실하니 핀란드 사람들 앞에서 추는 것은 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다.

핀란드를 한국에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일리톨껌이 그 특유의 점성으로 앞으로도 두 나라를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일리톨 #휘바 #충치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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