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에 밀린 농업인의 날, 한숨만 나온다

- 농업인의 날 단상

등록 2008.11.11 20:32수정 2008.11.1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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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 1996년 부산 영남지역 여중생들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뜻에서 친구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과자 화사의 상혼이 살짝 엿보이지만 애교스럽다. '넥타이 데이'. 넥타이 4개를 세로로 늘어놓은 모양이란다. 한술 더떠 11월 8일은 '브라자 데이'라고 한다. 11자를 눕혀 놓으면 브라자 끈처럼 보인다는 것. 조금 억지스럽다. 불황에서 살아남자는 패션 업계의 안간힘이 안쓰럽다.

 

11월 11일은 '가래떡 데이'라고도 한다. 2003년, 상업적 색채가 강한 빼빼로 대신 우리 전통 음식인 가래떡을 즐기자며 사내 이벤트를 만든 안철수 연구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농림식품수산부는 2년전 11월 11일을 '가래떡 데이'로 공식 지정하기도 했다. 농협과 지자체들은 가래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행사를 앞다투어 열고 있다. '가래떡 데이'는 순우리말과 영어가 부자연스럽게 결합된 단어라서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쌀 소비 촉진, 농촌 살리기 운동과 맞물리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11월 11일은 공식적으로는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이 국민 경제의 근간임을 인식시켜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고 노고를 위로할 목적으로 1996년 제정됐다고 한다.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흙토(土)자가 되풀이되는 토월토일(土月土日)인 11월 11일을 기념일로 정하였다. 흙토(土)자를 파자(破字)하면 <十一>이 되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농업인의 날이 11월 11일로 지정된 것. 이때는 모든 농사일을 마치고 풍년제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현실은 어떤가. 올해 벼농사와 과일농사가 전반적으로 풍작인데도 농민들 한숨은 깊어만 간다. 비료값과 자재대, 농기계 임차료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것. 중간 상인들의 횡포는 여전하다. 농협은 농민들 편이 아니다. 피땀 흘려 수확한 큼지막한 배를 경운기로 갈아엎고 산더미 같은 배추를 폐기하고 도청 군청 앞에 나락 포대를 쌓아 올리는 농민들 마음이 어떨까. 두주 뒤 11월 25일에는 전국농민이 상경 투쟁에 나선단다. 정부가 이렇다 할 농민 보호 대책을 세웠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시위 진압 계획은 세우겠지.

 

뉴스를 보니 쌀 직불금을 부정하게 받은 사람들 명단이 없어서 국회가 이틀째 겉돌고 있단다. 농민들에게 돌아갈 돈을 가로채고 양도소득세 감면받아 이중으로 돈을 챙긴 뻔뻔한 부자들이 농민들 가슴을 멍들게 한다. 서로 믿고 아끼고 나눠먹는 미풍양속이 발붙일 틈이 없다. 민란이라도 일어나야 정신을 차릴 건가.  

 

여당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태세다. 오바마의 미국과 마찰을 자초할 어리석은 짓이다. 오바마가 미국 자동차 업계와 노동조합의 이익을 위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이를 기회로 우리 농민의 이익을 챙겨야 마땅하다. 그게 제 정신 있는 정부가 할 일이다. 자동차 문제는 한미 사이의 갈등보다 일본과의 경쟁이 더 시급하지 않은가.

 

이명박은 자신이 오바마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말해서 여러 사람 웃겼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교언영색, 아양 떠는 말이 아니길 바란다. 거울을 보면 모든 것이 제 모습과 똑같다. 다만 왼쪽과 오른쪽이 정반대일 뿐이다. 자국민 이익을 챙기는 것부터 닮아야 할 것이다. 5% 부자 말고 95% 중산층과 서민 챙기는 것부터 닮아야 할 것이다. 허공을 향해 소통하지 말고 농민과 먼저 소통하라.

덧붙이는 글 | 이채훈 기자는 MBC PD입니다. 

2008.11.11 20:3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채훈 기자는 MBC PD입니다. 
#직불금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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