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당보다 배지가 우선인 정동영 출마 선언

등록 2009.03.17 15:06수정 2009.03.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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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四川)성에는 재미있는 원숭이 사냥법이 있다. 숲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을 것을 넣은 커다란 항아리에 겨우 손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뚫어 놓고 기다리면 된다.

배가 고픈 원숭이는 냄새를 맡고 항아리 속에 손을 넣어 물건을 꺼내려 하지만, 물건을 잡은 손은 '빈손'이 아니라서 꺼낼 수 없다. 항아리의 구멍은 원숭이의 빈손으로는 들어갈 수 있지만 주먹을 쥐거나 무언가를 잡으면 결코 항아리의 구멍에서 손을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숭이는 사냥꾼이 와서 자기를 잡아 갈 때까지 손에서 먹을 것을 놓지 않는단다.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그저 '그냥 놓아 버리면' 되는 쉬운 결단을 하지 못한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잘 표현해주는 이야기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빈손이 된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자기정화와 냉철함이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 

정동영 고문의 출마 선언, 개인의 집착이다

얼마 전 정동영 민주당고문이 4.29 전주 덕진구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치인이 국민과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는 그의 표현대로 고독한 결정을 한 것처럼 보인다.  

정치는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정동영씨는 열린우리당의 당의장, 통일부장관, 17대 대선 후보로 이러저러한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 정치인이다. 참으로 머리 좋은 그는 자신의 이름이 충분히 언론에 오르내리게 한 뒤 이틀간의 칩거를 거쳐 지난 '13일의 금요일'에 전격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나는 정동영씨의 이러한 결정을 보면서 사천성의 원숭이가 생각났다. 그의 결정을 자기희생의 결단으로 보기엔 너무도 정치적이었고, 당보다 배지에 대한 개인의 집착 그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독해 보이는 결정에서 일점돌파의 의지나 비운의 정치인의 몸을 던지는 각오는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어려웠기에 감동은커녕 답답하기만 했다.


더욱이 그는 "낙천(당에서의)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며 이제 루비콘강을 건넜으니 공천을 줄지 말지는 당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민주당에 공을 떠넘겼다. 이러한 행보를 보면 그가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치인인가 하는 의심스럽고, 이런 행태는 오만함을 넘어 민주당의 지도부를 협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숫자로 세력으로 한참이나 약한 정당이고, 그 한계는 지난 2.3월 입법투쟁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 정당의 내부에 힘센(?) 정치인이 공천을 요구하면 지도부는 그 계륵(鷄肋)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의 출마가 언론에 오르내리던 한두 달 전부터 민주당은 한바탕 내홍을 겪었는데 출마를 선언했으니 지금은 물어 무엇 하겠는가.


동작구에 뼈를 묻겠다는 말은 거짓이었나

그는 당의 의장으로, 후보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참으로 많은 선거를 치렀고, 책임도 졌다.  지난 대선에 출마한 그는 민주진영 후보로는 최대의 표차인 540만 표의 차로 참패했다. 민주당지지자들을 폐족(廢族)처럼 고개 떨구게 했다. 작년 총선에선 동작을에서 정몽준씨에게 패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지만 그는 동작구에 뼈를 묻겠다는 말을 수십 번이나 했었고, 지금 동작을 민주당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다.

이제 그가 지역구를 다시 바꿔 편안한 전주 덕진에서 배지를 달려고 출마를 선언했는데, 그에게서 한때 동교동계의 쇄신을 외치면서 벌였던 정풍운동, 몽골기병 운운하며 '현장 속으로'를 외쳤던 호방한 모습을 찾기에는 그의 이번 행보는 명분이 없어 보인다. 아니 동도서말(東塗西抹)식의 이러저러한 그의 출마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마선언은 그 자체로 배지에 대한 원숭이의 집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정치판은 참 쉽게 성공했지만 속절없이 사라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렵게 도전해서 아름답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인은 결과에 감사해야 한다.

정동영씨가 빈손으로 마음을 비우고 대중의 바다에서 민심의 누리에서 진아(眞我)을 찾아 가기를 바래본다. 그 길이 원숭이의 길이 아닌 호모사피엔스 호모폴리티쿠스의 길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정동영 #전주 덕진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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