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할퀴간 예배당 내부 보일러실에서 누전으로 인해 발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길은 삽시간에 교실과 복도 천정을 태웠다.
김백석
지난 주 목요일, 아내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있는 성가대 연습에 참석하러 나간 지 30분도 안되어 돌아왔다. "여보! 예배당에 불이 났어요! 예배당 진입로에 차량을 통제하고 있고 소방차도 많아..." 어차피 지금 가도 출입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 시간쯤 있다가 우리가 뭔가 해야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저녁 9시 다 되어서 예배당으로 향했다. 차량통제는 해제되었고 주차장에 들어서니 소방서 차량 두 대와 교인들 차량 몇 대만 있는 것으로 이미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본당 쪽은 괜찮고 복도와 교실과 사무실 쪽 천장이 많이 탔다고 했다. 보일러실 쪽에서 누전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화재로 인해 유리창 몇 곳이 깨져있었는데 그곳을 임시로 합판으로 견고하게 덮어 씌워주는 회사에 연락해놓고 기다리며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교인들도 소방관도 이러한 상황에서 여유로운 모습이 내게는 생소했다. 한국인들이었다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 하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앞두고..." 자책성 내지는 누군가를 지목하는 듯한 말이 나올 수도 있었을지 않았을까? 물론 보험회사에도 연락을 취해 놓았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고 돌아왔다.
당장 주일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하며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는 어떻게 해야될까? 근처에 스데반 성공회 교회(St. Stephen's Episcopal Church) 에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사용하도록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이웃교회의 도움을 받아 별 불편없이 한 주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수리하는 기간이 한 달 정도 소요 될 것이라고 했는데 화재현장의 24곳을 샘플로 수거하여 검사한 결과 19곳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어서 그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두 달이 족히 걸리겠다고 알려왔다.
발암물질이라... 건축한 지 40년 넘은 건물이니 단열재로 석면이 들어있는 내장재가 있었을 테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것에서도 발암물질이 노출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서재의 책들, 성가대 연습실의 가운들, 방송 음향실의 기자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끄름만 약간 있어서 그것만 닦아내면 될 것 같은데 이 또한 지금 검사중으로 여기에서도 만약 발암물질이 발견되면 모두 폐기하고 새로 구입해야 된다는 것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물론 보험회사에서 모든 비용을 받게 된다. 화재 뒤 처리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검사하고 만에 하나라도 건강상 피해를 받지 않도록 챙겨주는 행정기관이나 보험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지금까지 화재 후 처리가 진행되는 동안에 공교롭게도 한국의 석면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본의 아니게 비교가 되었다. 처음엔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 몇 종 정도로 발표하더니 오늘은 제약회사 120업체에서 제조된 1,220개의 항목이 발표된 것을 보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참담하기까지 했다. 이미 한국에도 20여 년 전부터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한 교수들도 있었던데...
기능상으로 아무 문제없는 물품에 대해서도 발암물질이 발견되면 폐기해야 한다는 미국식 처리방식과 사람이 치료를 위해 먹는 약품에 1급 발암물질이 있는 재료를 넣어서 제조한는 한국의 방식이 21세기 같은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툭하면 선진국은 어떻고 미국은 어떠니 우리도 이렇게 한다는 논리를 곧잘 펴던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언제쯤이나 정착 될 수 있을까?
목사인 내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예배당이 불 탄 것보다 조국의 어이없는 소식들을 듣는 마음이 더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꿈꾸는 조국의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기대를 갖는다는 것이 정녕 무리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엔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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