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부활하는 민주주의

등록 2009.05.30 12:11수정 2009.05.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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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 광장이 노란 물결로 가득 찼다. 경찰 추산 15~8만명, 주최측 추산 4~50만명. 월드컵 이후 사상 초유 집결이었다. 그러나 환희와 열정의 붉은 물결과는 다른, 슬픔과 애통함으로 가득 찬 노란 물결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경복궁에서 거행된 후, 서울광장과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거행하였다. 시민들은 노란 종이비행기로, 노란 풍선으로, 눈물과 소리침으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다.

서울광장에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서를 지키고, 엄숙한 분위기로 고인의 마지막을 기렸다. 광장 앞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서는 너도나도 줄을 서서 묵념을 하고 참배를 했다. 말도 탈도 많았던 5년간의 대선 기간이었다.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눈물지으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바보 노무현'. 나는 사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게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정치는 나와 무관한 것이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소유물이라 생각했었다. 암울한 사회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정작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정책을 벌이는가는 관심 갖지 않았다. 탄핵되었을 때도 '어련히 그랬을만 하려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퍼져 나갔을 때도 '참 형편없는 대통령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나의 무지함이 그를 죽인 것만 같아 죄스럽고, 뒤늦게 알아 또 한 번 죄스럽다.

그의 성공신화(그는 실패라고 했지만)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한 맥락을 함께 한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힘썼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언제나 삐뚤게 나가는 그를 한국 사회는 좋아하지 않았다. 국민 경선에 의해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면서 동시에 탄핵을 당한 최초의 대통령 수식을 얻었다. 그의 삶 자체는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던 것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게 다가간 그의 삶은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대통령 감이 아닌 사람'. 몇몇 사람들은 노무현을 이렇게 평가한다. '대통령 감'은 무엇일까. 경제 성장? 냉철한 지도력? 뛰어난 리더쉽?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 '인간성'이라는 덕목을 추가하고 싶다. 탈권위, 탈권력,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서민 대통령. 그가 떠난 뒤에야 우리는 그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왜 알지 못했을까. 왜 관심 가지지 않았을까. 왜 그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권력에 대항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모습.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두렁을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모습... 생각해 보니, 이제와 보니, 떠나고 보니 알게 된다.


우리는 한 사람이 짊어지기에 너무나 큰 짐을 지워준 것은 아닐까. '대통령 감'이 아닌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감'이 아닌 우리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뻔뻔하지 못한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정의를 외치고 타협을 용납하지 않던 당당한 그 모습과 달리, 정작 자신의 잘못은 당당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린 그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잘못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사람은 잘못이 잘못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그에게 있어 그의 치부는 더욱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애통하고 서러운 마음이 든다.

5월 23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죽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란 물결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할 차례다. 후회하지 않게, 또 다른 희생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서울광장 추모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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