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와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은 '연애 공화국'이기도 하다. 이 땅 민주주의는 때를 잘못 만난 탓인지, 사람을 잘못 만난 탓인지 여러 사람들의 개탄 속에서도 빛을 잃어가는 판국이지만, 이 땅의 '연애주의'는 그러한 걱정에서 자유롭다.
요즘 이 사회에는 그야말로 연애가 넘쳐흐른다. 비혼(非婚)인 이들에게는 그들의 나이, 상황, 여타 다른 조건들은 아무 고려 없이 연애가 권해진다. 심지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이들에게 '사귀는 친구 없냐?'고 묻는 것마저 어색하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20대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의 사람들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2말3초(2학년 말에서 3학년 초 사이까지 '솔로'면, 영영 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속설)란 말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 전까지 누군가와 '커플'이 되기 위해 많은 대학생들이 기를 쓰고 노력한다. 또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 흔히들 '결혼 적령기'라고 부르는 -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얘기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주변인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다소 비꼬아 표현하자면, 모든 이들이 '연애교(戀愛敎)'라는 신흥종교에 경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 지경이다.
연애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연애 자체를 폄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연애는 인간이 살아가며 만들어나가는 여러 가지 사회 관계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 자체로 살아가는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연애를 하는 중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처럼 연애가 넘치다 못해 홍수를 이루며 세상을 휩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말하기 힘들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을 '연애를 쉰다'고 표현하며, '26년간 연애를 하지 못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 따위의 우스개가 방송을 통해 소개되곤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20대 초반 이모씨는 "주위에서 왜 연애를 못하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당사자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연애를 하는 상황이 당연하게 '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땅의 '연애주의'는 연애하지 않는 자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연애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무엇이 많은 청년들을 연애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부문에 가장 많은 역할을 한 것은 미디어일 것이다. 현재도, 공중파와 케이블을 망라한 수많은 TV채널에서 연애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결혼을 소재로 한 리얼 연애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며, 얼마 전부터 실제 커플을 방송에 투입시킴으로써 연애라는 소재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또한, SBS의 <골드미스다이어리> 같은 경우에도 출연자들의 맞선(소개팅)과 그에 이어지는 연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연애는 주요한 소재이자, 극의 목표 자체인 경우가 많다. 특히,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작품에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연애를 하고 있거나 연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극중에서 연애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를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는 케이블까지 포함해, 수많은 연애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었거나 방송 중에 있다. 가히, 연애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 포위되어 살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빈말이 아닐 정도다. 이처럼, 리모콘을 돌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연애가 우리를 휘감아 돌다보니, 연애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종의 생활양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는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는 무엇인가가 모자란 사람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결핍 상태로 여겨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연애는 누군가에게 희망이며 삶의 의미가 될 수도 있는 소중한 관계 맺기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애 중일 필요는 없으며, 그럴 가능성도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쌍방향의 관계로 발전하고, 그것이 연애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지만, 현재 사회를 지배하는 연애 강박이 만들어내는 연애는 그러한 순리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연애 중이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사람과도 애인 관계가 되고, 별다르게 느낄 이유가 없는 외로움을 단지 연애 중이지 않기 때문에 느끼게 된다. 지금의 우리들을, 이 시대의 청년 솔로들을 사로잡고 있는 외로움은 '연애주의'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모른다.
외로움. 연애 강박의 또 다른 이름
자유로워져야할 필요가 있다. 아니,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더 이상 연애라는 절대 기준에 휘둘려 존재하지도 않은 자신의 결핍을 찾아 헤매이며, 존재하지도 않을 외로움을 달래야할 필요가 없다. 연애는 우리에게 선택이어야 한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연애라는 환상에 이 시대의 청년들이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자유롭게 연애하고, 자유롭게 연애하지 말아야 한다. 그 연애는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충족하면 족할 것이며, 타인의 기준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연애 공화국'의 주민이어서는 안 된다. 이 시대가 연애 강박으로부터 독립하는 그날, 민주주의의 재림만큼이나 절실한 그날을 조용히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bachooya.tistory.com)에도 포스팅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10 10:3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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