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했던 나, 언소주 운동에 함께하련다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은 '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 살리기'

등록 2009.06.12 14:52수정 2009.06.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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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해 6월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해 6월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남소연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해 6월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지난해 이맘때 나는 광장의 촛불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왜 촛불을 들었냐"고 물어온다면, '단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싫어서였다'고 대답할 정도로 내가 원한 건 한 가지였다. 하지만 광장에 서기 전까지 난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한지 전혀 몰랐던 무지한 주부였다. 신문을 읽는 일도, 뉴스를 듣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광우병 소가 좀 위험한가보다'하는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온라인상에서 '언니', '동생'하며 지내던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광우병 소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설명했고 나는 순간 '이 아줌마가 돌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동생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면 안 사먹으면 된다', '조류독감처럼 끓여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동생과 전화를 끊고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 탓에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나는 채 하루가 되기 전에 공포에 휩싸였고, 기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던 한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러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를 대하는 <조선> <중앙> <동아>(이하 조중동), 이 세 언론의 목소리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툭하면 써대던 조중동이 2008년 4월을 기해 완전히 태도를 바꾼 것 아닌가. 보통의 관념을 가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조중동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약어)처럼 다가왔다.

 

무지했던 내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던 이유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6월24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고시강행 반대! 사교육비 폭등정책반대! 아이들을 지켜내자’ 주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요구하며 촛불산성을 만들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6월24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고시강행 반대! 사교육비 폭등정책반대! 아이들을 지켜내자’ 주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요구하며 촛불산성을 만들고 있다.유성호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6월24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고시강행 반대! 사교육비 폭등정책반대! 아이들을 지켜내자’ 주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요구하며 촛불산성을 만들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조중동 기사를 보면서 현실에 눈을 뜨게 됐고 이 말 같지 않은 그들의 말장난을 더 이상 눈 뜨고 봐 줄 수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만 분을 삭이고 있던 중 언론소비자주권연대(이하 언소주)가 공개한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이란 글을 만났다. 난 그 명단을 보자마자 주부로서 또 소비자로서 적극적인 내 목소리를 기업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내가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나 가입한 보험사가 일차적으로 공략해야 할 대상이었다.

 

난 형편이 어려움에도 한 달에 40만원이 넘는 돈을 보험회사에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 내가 돈을 내고 있는 보험회사가 날마다 조중동에 광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에 먼저 전화를 했다. 난 일차적으로 "내가 내는 보험료로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것이 고객으로서 매우 불쾌하니, 광고를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들은 나 같은 소비자가 꽤 됐음에도 계속 광고를 했다.

 

나는 한 달 동안 끊임없이 그 기업에 전화를 해 소비자로서 의견을 이야기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결국 나는 1년 가까이 부어온 보험 3건을 해약했다. 손해 본 금액만 400만원이 넘는다. 평범한 샐러리맨을 남편으로 둔 주부에게 그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못 입고 못 먹으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나의 작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손해 본 돈보다 변하지 않는 기업들의 태도에 더 절망했다. 

 

그 일로 언소주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고초를 겪었다. 출국금지, 구속수사, 벌금형 등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인 그들이 겪기에 법이란 게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때 난 법이 참 무서웠다. 아니, 법보다 권력이 더 무서웠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권력 아래 기생하는 법을 보면서 분노했지만, 정작 그 법이 나를 노려본다는 생각이 들 때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난 용기를 내어 몇 번 전화를 했지만, 적극적으로 전화를 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을 보고 내 집에도 경찰이 찾아와 나를 심문할까봐 겁이 났다. 결국 나는 두 달 만에 두려움 때문에 불매운동을 그만뒀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조중동에 집중 광고를 싣고 있는 기업들을 선정해 불매운동을 해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기업제품은 사지 않는다. 소심한 복수였던 셈이다.

 

조중동 광고 기업에 대한 '소심한 복수'

 

'지난해 촛불의 성과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한다. 민주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명박 정부는 촛불을 무서워하기보다 더 많이, 그리고 세게 밟아주는 것으로 국민에게 화답했다. 그런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행 행보에 가속 페달을 달아주고 미친 듯이 내달릴 수 있게 한 데는 조중동의 역할도 컸다.

 

최근, 절망이 깊어질 즈음, 언소주 운동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이번에는 큰 기대조차도 없었다. 지난해 언소주 운동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긴 했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언소주 운동은 조중동을 살짝 겁준, 그야말로 겁을 주었던 조그만 사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언소주 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는 기업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중동이 바른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조중동이 사실만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길 바라고, 이 땅에 언론이라는 막강한 또 다른 권력이 국민을 속이지 않고, 조롱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나의 예상 또는 기대와는 다른 언소주의 행보에 조금 놀라웠다. 나는 첫 타깃이 조중동에 끊임없이 광고를 싣고 있는 몇몇 대기업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대기업에 비해 너무 작은 한 제약회사가 불매운동의 타깃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소식을 접하고 우려도 많이 했다. '정말 언소주 운동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조그만 제약회사를 상대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소주의 두 번째 운동을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닌 묵인자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언소주의 운동이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소주는 바로 타깃기업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철회했다. 불매운동을 선포한 지 3시간 만에 광동제약으로부터 진보매체에 같은 비율로 광고를 내겠다는 답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언소주의 운동을 기업 죽이기로 이해하고 반감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이 일은 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도 사회의 일부라는 것, 기업도 사회적 고민과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업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것 말이다.

 

언소주 운동=기업 살리기 운동, 나도 동참하련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권우성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 권우성

 

나는 이번 언소주의 행보를 지난해보다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광고주를 압박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맞는 것이라면, 소비자의 보이콧 운동도 역시 합법적인 소비생활이라는 점을 여러 사람이 알아주길 간절히 바란다.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 소비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소비자를 천대하지 않는 기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순히 장사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파장을 이해하고 스스로 바른 사회를 지향하는 기업을 원한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하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소비자가 없는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에게 홍보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광고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자와 원활히 소통하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자랐고,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고, 내 아이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집과 많은 돈 등 물질적 풍족함보다는 상식이 파괴되지 않고 진실이 왜곡되지 않은 정당하고 가치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본인이 노력하는 것에 정당한 대가(代價)를 받고,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잠시 주춤했던 '언소주 운동 시즌2'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 그것이 이 땅의 바른 언론과 바른 가치관, 대다수의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첫 단추라면, 능동적인 이 땅의 소비자로서 나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인 11일 오후, 언소주에서 2호 불매운동 기업을 선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상은 대기업 중의 대기업 '삼성(5개 계열사)'. 언소주는 "삼성은 조·중·동에게만 집중적으로 광고하고 있다"며 집중광고 철회를 요구했다고 한다. 또 "불매운동 처음부터 삼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던 것이 사실"이라고도 했단다.

 

언소주 말대로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나와 같은 능동적 소비자가 한 명, 두 명 모이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009.06.12 14:52ⓒ 2009 OhmyNews
#언소주 #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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