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영상관DMZ 도보관람로를 거쳐 제3땅굴들을 둘러보고 나오면, 맞은 편에는 DMZ 영상관이 자리잡고 있다.
임호형
낡은 흑백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끊어진 철길, 무명용사의 무덤, 녹슨 철모. 시간이 멈춘 그곳에는 겹겹의 철조망 너머 철새가 날아다니고, 잡초 수풀 깊숙이 지뢰를 품은 평원 위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DMZ가 준 첫 인상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란 특수한 상황 탓일까. 하루 평균 5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DMZ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특히 외국인 VIP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외국인 바이어, VIP 의전관광 전문 코스모진 여행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한 방한 외국인 30%(1440명)가 이 DMZ를 우리나라 최고 관광지로 꼽았다).
외국인들은 자동차로 1시간, 서울에서 고작 4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북 군인들이 대치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란다. 철저한 안보 상황이나 잘 보전된 주변 생태 환경 등을 둘러보며 또 한번 놀란다고 한다. 자칫 냉전 아이콘으로 곡해될 수 있는 이곳 DMZ를 유럽에서 온 우리회사 외국인 바이어들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결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외신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분단상황은 방한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 투자를 결심하는 외국기업들에게까지 분명 위협 요소다. 하지만 위협 요소라고 해서 숨기기보다는 관광명소로써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보안상황을 확인시키면 오히려 이 특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도라산 역으로 가는 길DMZ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바로 도라산 역을 오가는 전용버스로 갈아타는 일이다. 버스를 타고 통일대교 앞 검문소를 지날 쯤, 무장한 군인들로부터 주민등록증(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하고 한 사람씩 대조 검문을 받으며 새삼 이곳이 아주 독특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깨닫게 된다. 길게 뻗은 경계선과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어떤 개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세계 유일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외국인들은 마치 미지의 나라에 온 것마냥 들떠 있다.
바로 그 때였다. 보초를 서던 군인 중 한 명이 뒷자석에 앉은 우리 일행 중 한 명을 지목한다. 검문검색 광경이 꽤나 신기했던 이 외국인 바이어는 당초 민간인통제소인 이곳에서 사진촬영 금지 경고를 무시한 채, 몰래 촬영을 한 모양이다. 버스 안에서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대조 검문하던 헌병은 이내 그 외국인 바이어의 디지털 카메라를 압수해 관련 사진을 삭제한 후, 버스에서 내렸다.
디지털 카메라를 압수당한 외국인 바이어는 "DMZ가 그래도 엄연히 관광지인데, 사진 촬영조차 이토록 엄격히 제한하는 곳인지 몰랐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일행을 가이드 해주신 외국인 VIP 의전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의 윤종혁씨(우리 회사 바이어 의전관광을 많이 해주신 베테랑이다)에 따르면 "DMZ 투어의 경우 관광지 이전에 남과 북, 두 나라의 군사대치 현장이므로, 사진 촬영 등 제약이 많은 곳"이라며 "사전 예약 시스템은 물론 현장에서 가이드의 인솔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멈춰버린 철마는 달리고 싶다
마주보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남북이 갈라진 철책선을 둘러보다 건너편 동네로 시선을 돌릴 쯤, 어느새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자유관람 시간은 15분. 도라산역. 이름도 아름다운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북쪽으로 향하는 첫 번째 역으로, 여느 기차역 못지않은 세련된 자태를 갖추고 있지만 기차역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유명무실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지난 2002년 2월,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 방한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연설 및 철도침목 서명행사를 가져 한반도 통일 염원의 상징이 된 도라산역. 내부엔 굳게 닫힌 '평양' 게이트와 그 앞을 지키는 헌병들, 그리고 창 밖 우두커니 멈춰선 철마의 모습만 애처롭다. 이제 더 이상 북으로 달리지 못하는, 끊어진 철도를 바라보는 외국인 바이어들의 표정은 여느 한국인 못지않게 사뭇 진지하다.
DMZ, 뜨거운 감자